그거 아니? 한국에는 모든 초짜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사춘기의 예고편이라고도 불리는, 미운 세 살이란 말이 있어.
네가 태어나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만 나이로 나이를 세기에 미국판 미운 세 살은 “Terrible twos”라는 좀 다른 이름을 갖고 있지.
마냥 순둥이일 것만 같았던 너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Terrible twos의 세계에 발을 들였어.
구글에 검색해보니 terrible twos란 부모에게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과 새롭게 싹트는 독립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아주 정상적인 유아의 발달단계라고 정의되어있더라.
이 말이 나에겐 묘하게 위로가 되었어.
누가 보면 단 한 번도 안아주지 않는 애처럼, “안아주세요 안아주세요.” 징징징 노래를 부르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 나가도 돼.”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너를 보면서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가 많았거든.
그래 이렇게 갈팡질팡 하는 것이 정상이라니, 내도록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단다.
처음 네 안의 Miss Independent를 만난 때는 첫 돌이 막 지난 어느 여름날 산책길이었던 것 같아. 우리는 호수를 따라 빙 둘러진 예쁜 산책길을 함께 걷고 있었어.
엄마는 막 걷기 시작한 네가 아장아장 잘도 걷는 게 너무 신기해서 주로 한 두 걸음 떨어져 네가 걷는 걸 감상하다가 위기상황에만 나서곤 했는데 그날은 바로 옆에 물이 있어서인지 그냥 뒷짐 지고 너를 따라갈 수가 없었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한 살 인생 최고의 속도를 만끽하며 냅다 앞으로 돌진하는 네가 혹여나 물에 빠질까, 흙길에 넘어질까 걱정으로 가득해진 나는 몇 번이고 네 손을 잡고 걸으려고 시도했지만 결과는 매번 야멸찬 뿌리 침이었어.
우리 둘의 모습을 뒤에서 보던 아빠가 큭큭거리며 이렇게 얘기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
“Miss Independent가 나타났다! 위용 위용”
한 살 무렵의 네가 걸음마를 통해 신체적인 자유를 찾아가고 부모의 품에서 물리적으로 독립하던 시기였다면, 두 살 무렵의 너는 하나인 줄만 알았던 엄마와 네가 완전히 분리된 존재임을 인식하고 너만의 독특한 자아를 최초로 발견해나가는 정서적인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것 같아.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건 너뿐만은 아니었어. 내 뱃속에서 열 달을 품어내고 내 품 안에서 젖을 먹이고 언제 어디든지 나와 꼭 붙어있어야만 하던 네가 서서히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 속에서 “아 드디어 나에게도 거동의 자유가 생기는구나!”라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다가도 어느 순간 사회적 거리 따위는 무시한 채 언제나 밀착된 상태로 네 냄새를 킁킁거리던 그 충만한 기쁨들이 이제 서서히 멀어져 가는구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거든.
혼란의 시기 테러블 투를 지나고 나라는 독립적인 존재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난 뒤, 현재 세 살의 너는 그렇게 막 창조된 너만의 왕국을 건설하느라 바빠 보여.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면 주인공 라일리의 마음속에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건들과 기억들로 메인 아일랜드가 지어지고, 그 아일랜드들이 모여 라일리라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그와 같은 과정이 네 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엄마는 설레기도 하고, 종종 막중한 책임감에 눌리기도 해.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내가 부모로서 무언가를 놓쳐서, 혹은 무언가 잘못해서 네가 평생 가져갈 너의 아일랜드를 짓는 일에 치명적인 차질이 생길까 봐 말이야.
그럴 때면 나는 한 살 때 그 호숫가를 떠올려. 넘어질까 걱정하며 내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씩씩히 한걸음 한걸음 내딛던 네 모습을 말이야. 그 과정에서 엄마가 할 일은 네 손을 꼭 붙들고 내가 원하는 안전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언제든 네가 돌아보면 보이는 거리에서 웃으며 너의 걸음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건 지금도 엄마의 인생 과제야. 혼자의 삶을 찾아가는 너를 놓아주는 연습 말이야.
실제로 인사이드 아웃의 결말을 보면, 아빠의 이직으로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뒤 라일리의 아일랜드는 모두 무너지지만, 결국에는 그 자리에 새로운 아일랜드가 지어져. 그렇게 라일리는 아이의 세상을 허물고 소녀의 세계로 점프하며 어른의 나라를 향해 순항하고 있는 거야.
아주 까마득한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만, 언젠가 오게 될 진정한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를 거쳐 네가 정말 어른이 되어 내 품을 떠날 날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그날이 언제일까 생각해.
요시모토 바나나의 <어른이 된다는 건>에서 말하길, 부모나 형제자매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다면 그제야 진정한 ‘자립’을 한 것이라고 해.
지금은 아침에 오렌지 주스 대신 카프리선을 먹어도 되는지까지 나에게 묻는 네가, 어떠한 상의 없이도 네 앞에 주어진 일의 대부분을 헤쳐나가는 그때가 온다면 아마 그날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갔던 “Miss independent” 최종판이지 않을까?
나는 그때를 목 빠지게 기다리지도, 목놓아 서운해하지도 않을 수 있도록, 엄마의 자리에서 너를 하나하나 놓아주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