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춘천
아침 이슬이 아직 풀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농부는 집을 나섰다. 딱히 일이 없어도 매일 나서는 길이다. 본인의 논을 향해 걷던 농부는 발길에 무언가 걸려 자칫 넘어질 뻔했다. 또 누군가 장난으로 풀을 묶어 고리를 만들어놓았나보다 하고 지나치려 했다. 농로의 무성한 풀을 묶는 것은 아이들의 좀스러운 장난 중에 하나다. 풀을 묶어 고리 모양을 만들어놓으면 행인이 발에 걸려 넘어지곤 하는데, 아이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킥킥대곤 했다.
하지만 농부의 발에 걸린 것은 풀로 묶은 고리가 아니었다. 작고 예쁜 분홍색 슬리퍼였다. 버려졌다고 보기엔 너무나 멀쩡해 보였다. 게다가 한 짝이 아니라 두 짝이 모두 있었다. 기분이 찜찜했지만, 농부는 슬리퍼를 집어 들지 않았다. 찾아줄 수도 없거니와 너무나 작고 예쁜 분홍 슬리퍼는 농부에게 무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갈 길을 가던 농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농부의 눈에 보인 건 그 슬리퍼 사이즈에 딱 어울릴 것 같은 작고 예쁜 바지였다. 뒤집어 벗겨진 것 같은 작은 바지를 보고 농부는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1989년
목사님이 거주하는 사택에는 방이 두 개 있었다. 두 개의 방에는 각각 외부로 통하는 출입문이 있었다. 그중에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에 만화방이 만들어졌다. 목사님은 며칠 동안 뚝딱뚝딱 못질을 하더니 나무판자로 훌륭한 책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만화책으로 책장을 가득 채웠다. 대부분 코믹 챔프, 월간 소년 점프, 아이큐 점프 같은 만화잡지였다. 동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야말로 만화'방'에 들락거렸다. 나 역시 단골이었다. 이제 막 재단한 목재 냄새, 바니시와 페인트 냄새, 그리고 이제막 인쇄된 종이와 잉크 냄새로 가득 채워진 그 방에 들어갈 때의 기분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