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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이야기(1)

by GQ

1988년 장수

보름달이 유난히 환하게 비추던 날 밤이었다. 가로등이 없던 시골 골목마다 달빛은 구석구석 비추고 있었다. 우리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님은 달보다 더 동그란 얼굴형에 달빛보다 조금 덜 빛나는 민머리를 하고 있었다. 실례인 걸 알면서도 자꾸 머리에 눈이 갔다. 나보다 한 살이 어렸던 옆집 여자아이는 아직 실례인 걸 몰랐는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왜 대머리예요?"

아니, 왜 대머리냐니.

대머리에게도 이유가 있는단 말인가? 머리가 빠지게 된 생물학적인 이유를 물어본 건가? 아니면 대머리를 일종의 자기 선택이라고 생각해서 그 이유를 물어본 건가? 일순간의 정적이 있었지만, 곧 목사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옆집 여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린이의 순진무구함은 종종 어른에겐 무자비하다.

1972년 춘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A양은 하교 후 친구들에게 만화방에 들르겠다며 말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A양은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틀 후, A양은 농로에서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성폭행을 당한 후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A양은 춘천경찰서 역전파출소장의 딸이었다. 경찰 간부의 어린 딸이 이런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언론은 연일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민심이 흉흉해지나 박 대통령은 '10일 안에 범인을 잡으라'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고 정확히 10일째 되는 날 만화방 주인(당시 38세)이 범인으로 체포되었다.


1987년

만화방 주인은 15년을 복역하다 모범수로 풀려났다. 만화방 주인은 원래 춘천의 개척교회 목사였고 열악한 교회 재정을 메워보고자 만화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옥살이가 끝난 만화방 주인은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가장 멀고 외딴 시골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짐작한 연도로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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