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e Pinakothek] 친밀하고 비밀스러운 만남.
푸른색이 일렁이는 하얀 하늘과 대비되는 상큼한 초록이 깃든 거리 카페테라스에 앉아, 부드러운 카페라떼에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향유하는 동시에, 이 세상 속에 있게 만드는 듯한 친밀감이 넘치는 묘한 분위기도 느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장엄하면서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은 황홀경에 빠질 테니까...
노이에 피나코테크의 전시실은 크게 2개의 (거의)정육면체 공간이 연결된 형태로, 총 22관, 32개의 전시실[hall]로 구성되어 있다. 넓고도 넓은 이 전시공간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강인한 체력과 편안한 복장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물밀듯이 밀려오는 수많은 작품수에 정신이 아찔해질 때에는, 언제 어디서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의자가 마련되어 있어, 균일하게 빛이 비치는, 특히 유리 너머 소리 없이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며 부드럽고 편안한 시간을 맛보는 것도 좋다.
아니면, 미술관(박물관) 특유의 탄소 향이 희미하게 감도는 메마르고 탈이온화된 향에 정신이 혼미해 질 때에는 - 부식성이 강한 이산화탄소를 제거하기 위해 작동되고 있는 활성화 필터가 장착된 산업용 습기제거기 때문이지만 -, 햇빛이 내리쬐는 즐겁고 상쾌한 푸른 잔디밭에 누워, 잠시 싱그러운 초록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부산스러운 1층을 지나, 빌헤름 폰 카울바흐[Wilhelm Von kaulbach]의 작품들로 구성된 루드비히 1세 및 노이에 피나코테크의 역사화가 있는 전시실 A [Hall A]를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풍요롭고 느긋한 시간을 즐기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예술적 낙원
18C까지 오직 시인들만이 누렸던 개인적인 환상의 세계를 종이 위에 펼쳐 놓는 자유를 얻게 된 화가들은, 구태의연한 주제를 내팽개치고 붓과 물감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 주제 선택의 자유를 새로이 누리며, 동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나타기 위해 각자 나름의 독특한 신화를 창조하였다. 이러한 이성(理性)의 시대를 맞이한 대가들의 작품들이, 전시실 1에서부터 시작하여 18, 19, 20, 21에서 절정을 이루어 전시실 22에서 막을 내린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독일(뮌헨), 영국, 프랑스 등의 신고전주의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실 1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신고전주의라는 미술사적 형식보다는 많은 이들에게 "말을 탄 나폴레옹 1세"의 작품으로 더 유명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앤 마리 루이스 백작부인[Anne-Marie-Louise Thélusson]"의 초상화와, "옷을 입은 마하"와 "나체의 마하"를 그린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의 "털뜯긴 칠면조[Plucked Turkey]"가 노이에 피나코테크를 시작하는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비드의 작품은 쉽사리 품위 있고 웅장한 그림이 되지는 않을 듯한 초상화에 불과하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조각을 연상케 하는 고상함과 아름다움을 통해, 잡다한 색체도 복잡한 단축법도 없이 단순한 엄숙함이 내제 되어 있는, 명실공히 신고전주의 양식의 지도자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관람자들을 응시하고 있다.
또한, 고야가 그린 초상화는 그저 시와 같은 하나의 환상을 종이 위에 옮겨놓은 듯, 고전주의적인 장려함을 위해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여 당시 귀족 남녀들의 허영과 추악함, 탐욕, 그리고 공허함을 폭로라도 하는 것처럼, 잰 체하는 고상함을 조롱하는 듯하다. 원래 고야의 작품들은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전시되고 있었지만,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재 개관될 당시 이관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라이프치히에서 활동한 요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티슈바인[Johann Friedrich August Tischbein]의 "정원의 니콜라스[Nicolas Chatelain in the garden]"라던가, 프랑스 로코코 시대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화[Portrait of Madame de Pompadour]"도 다비드와 고야의 사이에서 신중함을 발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즐거움과 상상력을 고양시키는 것은 전시실 2A와 3에 전시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벨기에 북서부의 항구도시를 그린 "오스텐데[Ostende]"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이스트버골트에서 바라 본 데덤계곡의 전경 [View of Dedham Vale from East Bergholt]"을 시작하여 전시실 5와 6에 걸친 풍경화들이다.
비단 여기서는 컨스터블과 터너만이 존재하는 것은 이니다. 뮌헨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18세기와 19세기 영국 회화 컬렉션을 자국인 영국보다, 그리고 그 이외의 나라들보다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나,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데이비드 윌키[David Wilkie], 조지 롬니[George Romney] 등의 작품에서, 자연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경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전까지 풍경화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분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주제의 자유성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풍경화를 품위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정적이고 단순한 조화의 세계가 아닌, 동적이고 화려한 세계를 연출하였다. 그래서 이때부터 부르주아 계급이 좋아하는 미술 장르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터너와 컨스터블을 좋아하는 것은 마치 오페라의 무대 배경을 연상케 하는 그 웅장함에서이다. 터너의 "오스텐데 [Ostende]"는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효과를 그림 속에 잔뜩 동원하여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 자연의 가장 낭만적이고 숭고한 모습인, 빛으로 가득 차고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닌 환상의 세계를 그리려 한 듯하다. 여기에는 세세한 부분을 살펴볼 겨를이 없다. 사람들과 배와 펄럭이는 돛은 하나가 되어 바람을 먹은 맑은 진흙 색으로만 보이고, 금방이라도 돌풍이 휘몰아칠 것 같은 하늘은 눈부신 빛과 싸나운 구름들에 의해 삼켜져 버린다. 실제로 오스텐데의 항구가 이런 지 나는 알 수가 없지만, 낭만주의 시를 읽거나 낭만주의 음악을 들을 때에 내가 상상하게 되는 것은, 영혼을 뒤흔들고 마음을 압도하는 이러한 찰나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터너에게 있어서 자연은, 인간의 감정을 반영하고 표현하는 것이리라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에 부딪치면, 자연의 힘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미술가에게 찬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컨스터블의 그림은 터너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언제나 컨스터블은 스스로의 눈으로 본 것을 그리려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진실함을 담고 있다. 또한 터너처럼 대담한 혁신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 흔적도 보인다. 단순한 전원 풍경으로 마을이 훤히 내다보이는 언덕에서 목동과 소들이 오후의 한 낮을 보내고 있다.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하게 그려진 그림에는 자연보다 더 근사하게 보이도록 묘사하기를 거부하고, 가식적인 포즈나 허세가 전혀 없는 철저한 성실성만이 나타나 있는 듯하다. 따뜻한 진흙빛 언덕에 앉아서 목동들이 바라보는 시원한 오리엔탈 블루의 하늘을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함께 올려다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한편의 서정시가 주는 마력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또 다른 서정시가 전시실 7에서부터 전시실 9에 걸쳐 펼쳐진다. 이곳에서는 주로 독일 낭만주의와 이름도 생소한 나사렛파[Nazarene movement]의 작품들을 만나게 되는데,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이상주의와 개인주의를 존중했던 낭만주의. 하지만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은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였다.
사색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화법으로 자연을 충실히 화폭에 재현한 독일 낭만주의 화가인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실레지아 산악 풍경[Giant mountain with ascending mist]"에서, 슈베르트의 노래를 통해 우리가 보다 친숙하게 알고 있는, 당시 낭만적인 서정시의 분위기를 반영하려 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알프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일까? 황량한 산의 모습은 한국의 산수화를 상기시키기 까지 한다. 우리네의 산수화도 시[詩]의 정신과 비슷한 데가 있으니...
이 외에 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작가들이 눈앞에 놓인 소재들을 성실하게 묘사하며, 끈질기고 정직하게 탐구하려는 그들의 결심을 느낄 수 있다. 뮌헨의 딜리스, 아헨바흐, 슐라이히 리어, 쾨벨 같은 화가들로 인해 부르주아적 장르로 퇴색하려던 풍경화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아마도 이런 작은 결과 때문일 것이리라...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전시실 7에서 요셉 카를 스틸러[Joseph Karl Stieler]의 작품인 독일 낭만주의 대가라고 불리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파우스트"를 연상케 하는 그의 초상은, 내면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엉큼스럽게 미소를 띠우며, 관람자들의 시선에는 아랑곳 않은채 눈에 보이지 않은 대상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요셉 카를 스틸러가 그린 노이에 피나코텍의 최초 설립자인 "루드비히 1세의 대관식[King Ludwig I of Bavaria in his coronation]"의 초상이 전시실 8에 전시되어 있는데, 마치 고상하고 정신적인 세계에 살고 있다는 환상과 지적 허영심을 과시하듯, 또는 세상은 오랫동안 언제나처럼 주변에 존재하지만, 마치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다. 이 시선 앞에서는 모든 꿈들이 사라질 것만 같다.
타협하지 않은 예술적 성실성
전시실 4에서 6까지, 그리고 전시실 11A에는 이름도 생소한 나사렛파와 비더마이어 양식의 작품들이 평화스러운 올리브 색 벽지 위에 전시되어 있다. 프리드리히 오버백[Friedrich Overbeck]의 "이탈리아와 독일[Italia and Germania]"이란 작품은 나사렛파가 추구하고자 한 미의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작품이란 인상을 받는다. 이들의 끊임없는 관심이 결국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전통을 조화롭게 이은 것으로 귀결되어지 않을까?
그리고 노이에 피나코텍을 대표하는 카를 스피츠베그[Carl Spitzweg]의 "가난한 시인[The Poor Poet]"에서는 콜레라가 창궐한 현실에 치인, 소시민의 남루하고 궁색한 삶의 욕구를 고상함과 코믹함으로 배출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볼 수가 있다. 어쩜 이렇게도 소재에 내재된 희극적인 요소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까? 이렇게 비더마이어 풍을 걸출하게 표현해 낸 이 작품처럼, 뜨거운 예술혼과 차가운 현실의 갈등을 유머스러하게 표현한 그림도 없을 것 같다.
나사렛파는 주로 19C초 로마에서 활동한 독일 화가들로, 프리드리히 오버백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순수한 원리로 회기 하는 것을 예술의 목표로 삼아, 지나친 감정과 표현을 거부하고 선명한 윤곽과 색에 기초한 표현 형식을 추구한 양식이다.
비더마이어 양식이라 함은 이성 시대에 접어든 소시민의 정치적 압박에서 해방되려는 욕구, 즉 낭만적인 세계로도 피하려는 경향을 말하는 양식으로 독일의 고전주의와 사실주의 사이에 일어난 운동이다.
전시실 11에서는 19세기 유럽 미술의 중심지가 된 프랑스 파리에서 새로운 미술 이념이 진전된 낭만주의, 바르비종파, 사실주의 양식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낭만주의 회화를 창시한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작품으로, 폭넓고 다양한 감정을 지닌 복잡한 그의 성격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명료한 윤곽선은 사라지고, 빛과 그람자의 색조를 조심스럽게 나누어 입체감 있게 표현한 것도 없다. 오로지 움직임과 낭만성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관람자와 함께 나누도록 만들려는 것뿐이다. 여기서는 이전의 고전주의 대가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가 주장한 것과는 정 반대의, 소묘보다 색채가 훨씬 더 중요하고 지식보다는 상상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그의 개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옆으로 돌아서면 바르비종파의 밀레[Jean-François Millet] 작품 중 "접목하는 농부[Bauer grafting a tree]"를 만날 수 있는데, 그의 그림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이삭 줍기 [The Gleaners]" 만큼이나 인상적이다. 그의 농부들에게는 과거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극적인 사건이란 전혀 없다. 그들은 아름답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그저 천천히 무겁게 움직일 뿐이다. 단지 일에 몰입해 있어, 자연스럽고 보다 그럴 듯한 품위를 띠고 있을 뿐. 이러한 농부의 생활상을 밀레는 있는 그대로, 그리고 그들의 신중한 움직임을 강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 순간만큼은 농부들의 일상이 엄숙한 의의를 가진 장면이 된다.
사실 이러한 운동에 처음으로 '사실주의' 운동이라는 명칭을 부여한 화가는 다름 아닌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이다. 그의 사실주의 운동은 미술에 있어 하나의 혁명을 뜻하는 것으로, 오직 자연의 제자이기를 원한 쿠르베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에는 우아한 포즈도 없고 미끈한 선도 없으며, 인상적인 색채도 없다. 그의 그림들은 분명히 진지하고 성실하다. 소위 "점잖은" 화가들과 널리 인정된 인습에 대한 반기를 들어, 타협하지 않은 예술적 성실성의 가치를 선포하려는 그의 예술적 양심이 전시실 10에 전시된 그의 작품인 "성난 말[Durchgehendes Pferd]"에서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폭풍우 같은 파노라마가 끝나고 나면, 루드비히 1세의 수집품으로 전시관을 채운 잠시의 휴식시간이 제공되다. 루드비히 1세는 동시대 작품들 중 어떤 것보다 지금의 뮌헨 미술 대학인 쿤스트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형성된 뮌헨 화파와 독일 낭만주의 작품을 아끼고 수집했는데, 이런 루드비히 1세의 개인 취향이 진하게 녹아있는 역사화,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 등 다양한 독일 낭만주의 작품 등을 전시실 12, 13, 14, 15에서 엿볼 수 있다.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양탄자를 연상케 하는 붉은 벽 전시실이 특히나 마음에 드는 곳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탓에 상쾌한 바깥공기가 그리워져 잠시 휴식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밭에 누워 쏟아지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껴봐도 좋을 것 같았고, 그리스 로마 시대 작품들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전시실 사이사이 복도에 마련된 조각품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놓칠 수 없는 좋은 휴식시간이 될 것 같았다. 이러한 휴식도 모자란다면, 푸른색이 일렁이는 하얀 하늘과 대비되는 상큼한 초록이 깃든 거리 카페테라스에 앉아, 부드러운 카페라떼에 자신만의 자유 공간을 향유하는 동시에, 이 세상 속에 있게 만드는 듯한 친밀감이 넘치는 묘한 분위기도 느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장엄하면서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황홀경에 빠질 테니까...
10#뮌헨 : 노이에 피나코텍 Part Ⅲ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