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작은 갤러리 -
여행 중에 낯선 것에 빨리 적응하고 친해지는 사람, 또는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은, 결국 삶에서 의미를 찾아낸 사람, 자신의 별을 따라갈 줄 아는 사람과 동일하다. 더 아름다운 곳, 보다 경이로운 동경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죽은 듯 잠들어 있던 도시에서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생기를 느끼며, 세상의 어떤 장소와도 특별히 깊은 정신적 유대를 맺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은 하루 동안의 여행으로도 몇 년 동안이나 여유로운 유람 여행을 다닌 자보다 훨씬 더 충만한 체험을,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일생 동안 기쁨과 깨달음, 충족과 행복감이라는 보석을 지니고 살게 될 것이다.
기억의 어느 부분은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낡아빠진 고서 같다. 하지만 그 낡은 책에서도 조금은 선명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언젠가 책장을 넘기다 무심코 보았던 그림, 정갈하게 차려진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여인에 대한 기억이다.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서글퍼 보이면서도 아주 다정스러워 보여, 그 당시 나를 볼 수 없는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눈을 깜박거렸던 것 같다. 그 그림 속 여인이 나를 어떻게 유혹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로부터 얼마 후, 그렇게 그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런던[London]으로 향했다. 그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 지금도 일반 여행객보다는 미술이나 예술 애호가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곳. 그리고 고흐와 고갱이 서로 마주 보며 편히 쉬고 있는 그곳.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로.
지하철 문이 아슬아슬하게 닫히는 순간, 좁은 문 틈으로 간신히 들어오는 여자가 있다. 또는 그 아슬아슬한 찰나, 지하철 문은 닫히고 이미 닫힌 문 앞에 한동안 말없이 서 있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헬렌. 닫힌 지하철 문에 손을 얹고 아쉬워하는 그곳은 런던 채링 크로스 역[London Charing Cross station]. 회사에서 금방 해고당해 막막하기만 한 그녀의 앞날. 다가올 일들이 어떻게 되는지는 그 지하철을 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바로 그 채링 크로스 역에서…
-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Sliding Doors, 1998] 中 -
그날 아침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부산스럽게 나갈 채비를 했던 것과, 편한 운동화보다는 반짝이는 검정 하이힐을 신었던 것, 그리고 4월의 파란 런던 하늘과 어울리는 잿빛 실크 스카프에 와인 색 숄더백이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나와 반 시간 후에 서 있던 그곳이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에서 주인공 헬렌이 서 있던 바로 그 ‘채링 크로스 역’이라는 기억과, 채링 크로스 역에 정차하여 내린 지하철에서, 닫힌 지하철 문에 손을 얹고 아쉬워하는 헬렌의 모습이 투영되었던 기억. 그리고 상심에 가득 찬 헬렌의 모습보다는 검정 드레스를 입고 테이블 앞에 서 있던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의 짙은 눈동자의 여인을 이제 곧 만날 것이라는 기억. 이것들이 그 날 아침의 기억이다.
동서로는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과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 사이에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는 템즈 강[Thames River]과 나란히 위치해 있는 역. 무엇보다도 “슬라이딩 도어즈”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였던 채링 크로스 역을 나오면, 왼쪽으로는 전 세계인들이 찬미하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노란 해바라기가 잠들어 있는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가 있다. 바로 왼쪽으로 돌아가면 그 해바라기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왼쪽 방향보다는 오른쪽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지가 더 컸던 것 같다. 오른쪽으로 돌아 몇 블록만 더 가면 그곳에 마네의 여인이 있다.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에서, 아니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에서 기다리고 있다.
코톨드 갤러리(서머셋 하우스)로 가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겠지만, 그날은 헬렌이 서 있던 채링 크로스 역에서 시작해 스트랜드[Strand] 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는 길을 택했다. 물론 볕이 따사로워 엠방크먼트 역[Embankment station]에 내려 템즈 강 수면 위에 뿌려진 황금색의 햇빛을 길잡이 삼아,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타워 브리지[Tower Bridge]를 보며, 느긋한 런던의 아침 정취를 느끼면서 워털루 브리지[Waterloo Bridge]까지 걸어가는 것도 좋았겠지만... 아니면 만약, 온통 회색 빛 속에 잠겨 런던의 실루엣만이 겨우 보이는 조용히 비가 오는 날이었다면, 템플 역[Temple station]에 내려 빅토리아 엠방크먼트 공원[Victoria Emabankment Gardens]을 지나서 서머셋 하우스로 곧장 가는 길을 택하였겠지만... 그 날은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St Martin-in-the-Fields]의 종소리와 함께 새로운 하루의 삶이 식작되는 채링 크로스 역에 내려, 촉촉이 젖은 4월의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스트렌드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긴장되고 조급한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 보려 했다.
채링 크로스 역에서 스트랜드 거리로 나오면 영국만의 좁은 4차선 도로가 인도와 맞닿아 있어, 런던의 심장 중의 심장임을 실감 나게 한다. 좁은 도로 위를 여유로이 달리는 붉은색의 2층 버스들과, 인도 위에 간간히 놓인 역시나 붉은색의 전화박스들. 이런 것들은 전혀 인위적이라거나 일부러 그 자리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드문드문 보이는 빅토리아 풍[Victorian style]의 건물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에는 작은 카페들이나 페스트 푸드 식당, 영국 사람들에게는 이국적으로 느껴질 만한 아시안 레스토랑 이라던지, 할인 마트, 약국, 은행, 작은 서점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눈요기 거리가 되어주었고, 그 길가에는 잘 정돈된 아름드리 가로수가 4월의 햇살 속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이 10여분을 걸어 코톨드 갤러리로 가는 짧은 여정 속에 스쳐가는 런던의 일상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들을 엿보며 가다 보면 어느새 육중한 벽돌로 이루어진 서머셋 하우스 앞에 다다르게 된다.
영국의 오르세 미술관
코톨드 갤러리[Courtauld Gallery]
빅토리아 풍이나 튜더 양식[Tudor style]의 건물들이 즐비한 런던 중심가에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나 볼 법한 도리아식[doric style]과 이오니아식[Ionic order] 기둥이 절묘하게 매치된 이 르네상스 양식[Renaissance style]의 코톨드 갤러리를 품고 있는 서머셋 하우스가 다소 의아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역사적 양식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너무나도 영국스러운 분위기로 완벽히 소화해 낸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그곳에 서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미 4세기를 훌쩍 넘은 이 오래되고 색이 바랜 벽돌 건물을 둘러싼 푸른색 철재 난간과 가로등이 지나온 영화를 잘 말해주고 있었으니... 이런 사소한 것들을 뒤로한 채 3개의 큰 아치로 이루어진 서머셋 하우스 입구로 들어서면, 투스칸 양식[Tuscan order]의 큰 기둥으로 이어진 늑재 아래에 오른쪽에는 코톨드 갤러리, 왼쪽에는 코톨드 인스티튜드[Courtault Institute]로 들어가는 푸른색의 아담한 3개의 문이 나타난다. 그리고 코톨드 갤리리로 들어가는 문 옆엔 때로는 마네의 쉬종이, 때로는 붕대를 감고 있는 고흐가, 가끔은 모델리아니[Amedeo Modigliani]의 여인 잔느가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 당시에는 이곳이 과연 미술관인지 아니면 여느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이라거나, 아니면 저 멀리 이국에서 온 사람이라면 전혀 알지 못하는 영국 어느 회사 건물인지, 알 길이 없었던 것 같다. 그 흔한 미술관 혹은 박물관이란 안내판 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런던의 올림픽 이후로 꽤 유명세를 얻어 그리 크지 않은 – 멀리 서는 전혀 찾을 수 없는 – 안내판이 서머셋 하우스 건물 북쪽 측면, 그러니까 스트랜드 거리에 위치한 건물 벽의 양쪽 모퉁이에 설치되어 있어, 코톨드 갤러리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친절한 이정표가 되어 주고 있다.
코톨드 갤러리. 이름마저 생소한 이 작은 갤러리. 런던을 찾는 이들에게는 서머셋 하우스로 더 잘 알려진 가장 영국스러운 갤러리. 영국 조지언[Georgian] 시대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작은 갤러리가 있는 서머셋 하우스는, 런던의 주요한 학술 및 문화시설과 서비스가 제공되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서머셋 하우스에는 코톨드 갤러리뿐만 아니라 엠방크먼트 갤러리[Embankment Gallery]와 코톨드 인스티튜드 오브 아트[Courtault Institute of Art]가 함께 있어 전 세계의 예술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 코톨드라는 이름은 컬렉션의 주요 기증자이자 이 학교를 세운 ‘사무엘 코톨드[Samuel Courtauld]’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영국 산업혁명기에 섬유산업, 특히 실크를 대체한 합성섬유인 레이온 산업으로 큰 부를 얻었던 코톨드 가문을 이어온 사무엘 코톨드는 미술에 굉장히 조예가 깊었는데, 당시 미술사조의 큰 흐름이었던 프랑스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작가들의 명작들을 수집하였다. 코톨드 컬렉션에는 그의 기증품 외에도 동생인 ‘스티븐 코톨드 경[Sir Stephan Courtauld]’과 여러 개인 콜렉터들이 기증한 18세기의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부터 20세기의 ‘로저 프라이[Roger Fry]’ 까지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e]’, ‘미켈란 젤로[Michelangelro]’,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erer]’, ‘大 피테르 브뤼헬[Pieter Brugel the Elder]’ 등의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의 작품들과, ‘루벤스[Peter Paul Rubens]’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의 바로크 작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코톨드 갤러리는 작은 갤러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방대한 작품들이 전 세계 수많은 미술가와 예술인들, 그리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간혹 코톨드 갤러리를 영국의 오르세 미술관[Orsay Museum]이라고 부를 때도 있는데 – 물론 자긍심이 강한 영국인들이 듣기에는 그렇게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이는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 자체, 그러니까 작품 소장 수라던가 규모 면에서라기 보다는,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인상파 작품을 상당수 전시하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빈센트 반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A bar at the Folies – Bergere]”, ‘에드가 드가[Edgar De Gas]’의 “무대 위 두 명의 댄서[Tow Dancers on the Stage]”, ‘폴 세잔[Paul Cézanne]’의 “생 빅투아르 산[Montagne Sainte – Victoire]”, ‘폴 고갱[Paul Gauguin]’의 “네버 모어[Nevermore]” 등의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작들이 이 작은 갤러리를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에 견줄만하게 만든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명화들이 있어,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위해 작은 갤러리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전시보다는 소장된 많은 작품들을 돌아가며 전시한다. 그러니 어느 날엔 모딜리아니의 여인 잔느를 만나다가도, 그다음에 가 보면, 루벤스 대신 램브란트를 만나게 되는 매력적인 갤러리이다. 그래서인지 서머셋 하우스의 북쪽 입구를 중심으로 코톨드 갤러리와 마주 보고 있는 코톨드 인스티튜드도 이러한 소장품에 기인해서, 현대미술보다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후기 인상파까지의 미술사조를 교육의 중심으로 두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작은 갤러리
빛바랜 푸른색의 문을 열고 들어서서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 된 유리문을 지나면, 코톨드 갤러리의 1층 로비가 나타난다. 그곳에는 바깥 풍경이야 어떻든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빛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아늑한 빛이 가득 차 있다. 검은 슈트 차림의 시큐리티 가이의 안내로 2개의 켄타우로스가 지키고 있는 계단을 오르면, 2개의 도리아식 기둥 사이로 또 다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데, 몇 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손길이 스쳤을까? 퇴색되고 빛바랜 푸른빛의 철재 난간과 반질 반질해진 구리 빛 나무 손잡이로 이루어진 나선형의 계단에서 영화로웠던 과거 코톨드 가문의 그림자가 손끝에 잡힐 듯했다.
코톨드 갤러리는 전체 7개의 작은 갤러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명화와 조각, 몇 세기가 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 같은 월넛 가구라던가, 템페라화[Tempera]로 장식된 큰 궤(櫃), 은(銀) 식기와 도자기들이 각 방마다 적절히 배치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하다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감상할 만한 소지를 전혀 남기지 않는다. 물론 코톨드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500여 점이 넘는 명화와 26,000여 점의 드로잉이나 도면 등을 생각한다면, 전시된 작품수가 턱없이 적게 느껴지지만, 적은 작품 수를 생각해 오후에 다른 스케줄을 만들어 놓을 경우, 그 날의 모든 일정들이 어긋날지도 모를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나 브리티시 박물관[British Museum]처럼 전시된 작품수가 방대한 미술관에서는 으레 많은 관람객과 작품 수가 부담이 되어 무엇 하나 제대로 볼 기회를 갖기 힘들지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원하는 만큼 작품을 감상하기에 이 코톨드 갤러리만 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그리고 대가의 작품 앞에서 그 수를 헤아린들 무엇하랴……
1층으로 올라가면 갤러리 2[Gallery II]로 들어가는 입구인 짙은 장미목 빛의 문 옆에 18세기 작품인 두 명의 조각상이 1700년대의 멋들어진 관료 복을 입고, 커다란 횃불 대신 가스등처럼 보이는 조명을 밝히며 문을 등지고 보초를 서고 있다. 한 명은 켄타우로스의 안내를 받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향해, 또 한 명은 로비로 내려가 ‘토마스 갬비어 페리[Thomas Gambier Parry]’ 컬렉션을 안내하며…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우리가 알고 있는 2층이 곧 1층이다. 우리가 1층이라고 하는 것은 지상에서 연결된 의미로 인식하여 지상 층[Ground floor]이라 한다. 간혹 호텔을 예약하거나 고층 빌딩을 방문할 때면 으레 혼동할 수 있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더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1층은 유럽에서는 “R” 이나 “G”로 표기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 표기하는 2층부터가 유럽에서는 1층으로 표기되어 있다.
▶ 갤러리 2[Gallery II]
갤러리 2[Gallery II]에서 갤러리 4[Gallery IV] 까지는 ‘사무엘 코톨드 컬렉션[Samuel Courtauld Collection]’을 전시해 놓은 공간으로, 주로 15세기 말에서 16세기의 르네상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아니면 ‘라파엘로[Raffaello Sanzio]’와 같은 이름만으로도 심장을 멎게 만드는 대가들이 아닌, 그야말로 르네상스 시대를 향유하며 활동한 숨은 천재들이 올리브 색과 회색이 적절히 섞여 있는 곳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15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르네상스라는 운동은 전 유럽에 획기적인 바람을 불러일으켜, 미술은 감동적인 방식으로 성서의 이야기를 설명하는 데만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한 부분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이 16세기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인식으로 발전된 미술, 특히 이탈리아 미술과 예술가들은 16세기에 들어 이탈리아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시대로 만들었다. 단순히 보이는 대로가 아닌 대자연의 신비를 탐색하고, 우주의 감추어진 법칙을 탐구하여 모델을 “이상화” 한 것이다. 천재가 왜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차라리 천재가 존재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 낫다. 그 시대 천재라고 불리는 화가들 중엔 루브르[Musee du Louvre]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천재들도 있지만, 이 곳 코톨드 갤러리에 있는 천재들도 16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이 상상했던 고전이나 신화 세계에 사는 요정을 극적인 “한 순간”으로 만든 천재들임에 분명하다.
언뜻 보면 중세의 정신을 간직한 가운데 자연스러운 인물들의 제스처가 돋보이는 작품처럼 느껴지는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아담과 이브[Adam and Eve]”나, ‘쿠엔티 마시스[Quentin Massys]’의 “천사와 함께 있는 성녀와 성자[The Virgin and Child with Angels]”라던가, 아니면 ‘마크 갬비어 페리[Mark Gambier Parry]’가 기증한 ‘안드레아 베로키오[Andrea Verrocchio]’의 “갬비어 패리의 마돈나[The Gambier Parry Madonna]”라던가...
또는, 극적인 요소나 사람들의 눈을 끌 그 어떤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우연히 된 것도 하나 없는, 모든 것이 완벽히 균형 잡혀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라차로 바스티니[Lazzaro Bastiani]’의 “매와 함께는 남자[Portrait of a Man with a Falcon]”와 ‘로렌조 로또[Lorenzo Lotto]’의 “해골이 있는 남자의 초상[Man with a Skull]” 등의 작품처럼 말이다. 혹은, 우아한 윤곽선을 이룩하기 위해 자연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으로 무한히 부드럽고 섬세한 인상을 높이고자 한 ‘산드로 보티첼리[Alessandro Filipepi Botticelli]’ 의 후기 작품인 “삼위일체[The Trinity with Sainta]” 에서 천재들이 남긴, 놀랄 만큼 다채로운 예술적인 탐구와 업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기에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렇듯 많은 이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루카스 크라나흐’의 “아담과 이브”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나무문이 있고 그 문 너머로 고흐가 보인다. 아니면 ‘라차로 바스티니’의 “매와 함께는 남자”를 등지고 반대편 문 너머로는 루벤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어느 쪽 문으로 가든 상관은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루벤스의 그림자를 쫓아가거나, 혹은 고흐와 대면하거나... 그러나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고흐의 자화상을 지나쳐 루벤스가 있는 갤러리 3[Gallery III]으로 향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먹어야 더욱 맛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 갤러리 3[Gallery III]
‘루벤스’ 가 있는 갤러리 3[Gallery III]으로 이어지는 좁은 문을 넘었다. 세기의 미술관이라고 일컬어지는 루브르 박물관이나 내셔널 갤러리 등을 가더라도 언제나 그렇듯 루벤스 작품만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코톨드 갤러리 전시실 3에서도 대부분 루벤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흰색으로 장식된 벽난로 위에 걸린 “갑옷을 입은 카를 5세[Charles V in Armour]”의 초상을 시작으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성화와 신화적 작품, 초상화, 풍경화가 적절히 배치되어 온통 카드뮴 레드[cadmium red]로 물든 작은 방 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싱그러운 4월, 어느 봄날에 찾아간 루벤스는 붉은 융단을 두르고 있었지만, 눈 내리는 겨울날에 만난 루벤스는 푸른빛이 감도는 부드러운 회색 배일을 감싸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언제인지 그리고 어디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루벤스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 당시 그의 화풍에서 느껴지는 희뿌연 안갯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에 대한 답답함 때문에, 루벤스를 램브란트만큼 좋아하지 않았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을까... 뮌헨[Munich]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에서 직접 만난 루벤스의 작품에서 받은 탁월한 화면 연출력과 뛰어난 구성력, 화려한 색채 감각, 거기다가 역사와 신화, 그리고 사실을 하나로 묶어내어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 낸 그의 천재성에 그만 넋을 잃고 그 앞에 주저앉은 채로, 한 시간이 넘도록 그의 작품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루벤스를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의 작품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반 아이크[Jan van Eyck]와 반 데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을 배출한 플랑드르[Flandre] 출신의 화가, 기질적으로도 언제나 플랑드르인이었고, 그 어떤 화가도 누려 보지 못한 명성과 성공을 누린 화가, ‘페터 파울 루벤스’. 그는 날카로운 관찰력을 갖고 모든 것을 듣고 배우고자 했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어떤 “미술운동”이나 “유파”에 가입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그의 기본적인 신념인, “화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주위의 세계를 그리며 그가 좋아하는 것을 그림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물의 다양하고 생생한 아름다움을 즐겼다.’고 느끼게 해주는 일”이라는 신념은 절대 흔들린 적이 없어 보인다.
그림의 크기에 상관없이 전통적 주제를 루벤스가 얼마나 붓과 물감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지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풍성한 이야기나 다채로운 인물들을 관찰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동적인 움직임과 빛, 공간감이 넘치고, 화면의 중심이 되는 장면에서는 늘 황홀경에 빠질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렇게 모든 요소는 하나로 연결되어 다양한 인물들을 하나의 커다란 집단으로 결합시키고, 그들 모두에게 때론 흥겹게, 때로는 장엄한 분위기를 부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특히나 인물을 묘사한 그의 솜씨에서는 모든 것을 생기 발랄하게 하고, 강렬하고 유쾌하게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가 그린 초상화들은 구도상의 복잡한 기교도 없고, 화려한 의상이나 흘러넘치는 빛도 없다. 하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모두 살아서 숨 쉬고 맥박이 고동치고 있는 듯하다. 루벤스가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생기 발랄한 인상을 이루어냈는지 분석하려 해 보았자 쓸데없는 일이다. 그 인물들에서 느껴지는 생명감에는 미묘한 빛에 의한 활력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풍부한 세부 묘사와 생생한 대조, 빛나는 색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매모호한 추상으로서가 아니라 힘 있는 현실로 생각된다는 점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한 박진감 때문에서인지 그의 그림은 화려한 바로크 풍 실내의 장식으로부터 미술관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옮겨 놓아도 여전히 생명감을 지닌 걸작품으로 남게 되는 것이리라. 사실 루벤스의 작품 하나하나를 얘기하기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인 것 같다. 그 천재성이 농후한 작품들을 내가 가진 그 얄팍한 지식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감동이란 것이 어떤 이유에서 기인하 든 사람들의 관점은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참된 바탕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리라.
▶ 갤러리 4[Gallery IV]
이전의 갤러리 2와 갤러리 3에서 조금은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갤러리 4[Gallery IV]로 접어들 때는 조금 해이해진 심정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가 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곳에서 고야를 만날 줄이야 어디 상상이라도 했을까. 하지만 그곳에 고야가 있었다. 고전주의적인 장려함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다비드와 같은 세대를 살아간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양식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 시대, 프랑스 대혁명의 유산인 이성의 시대인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를 이끌어간 낭만주의 화가들이 이 곳 전시실 4에서 쉬고 있다. 천부의 재능을 모두 갖추었음에도 그 긴 생애를 램브란트와 마찬가지로 밝음과 어둠으로 살아간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돈 프란시스코 데 사베드라[Don Francisco de Saavedra]”초상이 편안하지만 위엄 있는 자세로 앉아 있다. 예전에 기름이 질질 흐르는 성직자의 모습을 그린 고야의 “카프리초[Capricho : ‘별꼴이야’라는 뜻의 스페인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 잔인하고 기생충 같은 대식가의 이미지를 부각하여 신랄하게 풍자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곳에는 고야 외에도 거장들의 수법을 답습하기를 거부한 천재 화가인 ‘토마스 게인즈버러[TomasGainsborough]’의 ‘고상한’ 척하려는 의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초상화들이 관람객의 시선을 천천히 엿보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영국 왕립 미술원[Royal Academy of Art]의 초대 회장이자 18세기 영국의 상류계급의 전문 초상화가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의 신화보다 더 우아하고 미화된 모습으로 그려진 “큐피드와 프시케[Cupid and Psyche]”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들은 이성의 시대에 나타난 전통적인 주제에서 이탈을 시도했던 작가들이다. 이렇듯 코톨드 갤러리는 찾는 이들에게 불시에 나타나는 뜻밖의 묘미를 선사한다. 그러니 다음번에 다시 찾게 된다면 과연 또 누구의 작품으로 설레게 될까?
갤러리 5[Gallery V]로 가기 전에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잠시 쉬어야 할 필요성이 있겠다 였다. 현기증이 났다. 신선한 공기가 문득 보고 싶어 창문으로 다가가 기대었다. 어느새 맑고 파란 하늘은 따뜻한 회색과 흰색으로 변해 있었고, 유리창에는 물방울이 맺혀 눈에 보이는 모든 형체들을 흐릿하게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창문을 두드리는 런던의 봄비는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와 바깥 풍경을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었다. 마치 대도시의 분주함에서 멀리 떨어져 내밀한 순간을 위해서 움직임을 멈춘 시간과도 같았다. 일부러 구석진 곳을 찾으려는 동경을 만족시키듯, 짧은 순간이지만 벽에 걸린 작품들과 하나가 되어 여전히 움직이고 있는 실내 풍경 속에서 모네의 그림을 보듯 런던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바람과 빗물뿐이다. 아래서부터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비단결처럼 나부끼고, 위에서부터 바람이 쓸고 가면 거칠거칠해 보였다.
▶ 갤러리 5 ~ 7[Galleries V ~ VII]
갤러리 5[Gallery V]부터는 전 세계인들의 가장 사랑을 받는 인상파 시대의 작품들, 다시 말해 ‘폴 세잔’, ‘르느와르[Auguste Renoir]’, ‘에드가 드가’,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시대를 초월한 작품들이 코톨드 갤러리를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내가 이 인상파 시대의 작품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이 작은 코톨트 갤러리에서 다름 아닌 폴 세잔의 작품이 방 한 가득 차지한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이 그토록 찬미하던 윌리엄 터너가 아니라 뼈 속까지 프랑스인이었던 폴 세잔을 위한 방이라니. 런던 곳곳에서 보아왔던 문화적, 민족적 자긍심이 이 코톨드 갤러리에서는 소리 없이 중화된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오롯이 세잔을 위한 방이라 호들갑을 떨어도 정작 작품의 수는 6개에 불과하다. 때론 이보다 적을 수도 있고, 때론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에도 말한 것처럼 많은 작품 수에 숨이 막혀버리는 것보다는, 어떤 때에는 한 작품을 오랜 시간 두고두고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코톨드 갤러리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닌가 싶다. 오르세 미술관이나 노이에 피나코텍[Neue Pinakothek]에서처럼 웅장한 연회에 참석하기보다는, 특별히 초대된 비밀스러운 만찬의 주인공이 된 듯. 그리고 이 비밀스러운 만찬에는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오귀스트 르느와르, 피카소[Pablo Picasso], 클로드 모네, 조르쥬 쇠라가 함께 참석한다.
하지만 이 영국식 갤러리에 어울릴 것 같은 화려하고 경쾌한 빛으로 가득 찬 인상파 작품들에서는, 오르세나 노이에 피나코텍과 같은 빛의 마술적 효과를 전혀 느낄 수 없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회색이나 붉은색의 벽으로 인해 오히려 작품들에게서 발산되는 모든 빛이 묻혀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세잔의 사과는 먹고 싶은 사과여야만 한다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색채의 밝음을 희생시키지 않고서 깊이의 느낌을 이룩하기 위해 선택한 그의 왜곡은, 바라는 바의 효과를 얻는 데 도움을 줄 수만 있으면 사소한 디테일에 있어서는 허용된 왜곡이었지만, 여기서 만난 세잔의 사과는 자신이 추구한 질서와 균형을 찾겠다는 그의 강한 고집만이 느껴지는 사과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았는지 모른다. 햇빛과 공기 속에 융해되어 윤곽마저 흐릿하게 만들어 버리는 빛 보다, 세잔이 말한 확실한 빨간색으로 만들어낸 명료함이나 질서, 조화와 균형을 찾을 수 있으니.
그런 면에서는 마네가 죽기 1년 전에 그린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도 마찬가지다. 우울이 배어 있는 검은 드레스의 그녀와 어렴풋이 암시만 되어 있는 군중은, 마네가 만들어낸 실내의 충만한 빛 속에서 색의 조화에 관한 전통적인 규칙들을 무시한 채, 화면 전채를 가로지르며 어둠과의 대조를 즐기고 있는 검은색으로 느껴야 한다. 하지만, 마네가 목격했고 그가 그 순간에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면을 기록한 하나의 빛 속에서 정적과 소란의 인상만을 실감 나게 전해 준다. 이 또한 마네가 탐색하고자 한 것이며, 의도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고갱과 고흐가 만들어낸 빛은 어떠할까? 코톨드 갤러리에서는 고흐와 고갱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자신의 격양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표현된 고흐의 붓 자국은, 원주민의 정신 속에서 발견한 솔직함과 단순함을 향한 고갱의 열의와 한데 어우러져, 자칫 시각적 인상으로만 바라보게 만드는 우매한 태도를 고쳐준다. 여타의 미술관에서 느껴보지 못한 것, 즉 어느 한 사람에게만 치우치지 않고 그 두 사람이 추구한 강렬한 정열을 통해서, 예술가는 자신이 추구하는 감정을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야 한다는 그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이 코톨드 갤러리에서 고흐와 고갱이 말하고 있다.
그들의 고된 삶과 헌신은 결코 무가치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들이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는 각자의 고독 너머에, 인류 공통의, 바람직하고 귀하고 소중한 보편성이 존재함을 깨닫게 한다.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러한 보편성에 가시적인 형체를 부여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고독한 삶에 몰두하지 않았을까..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을 바에는 그걸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이용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관습으로부터의 해방 이리라.
나는 인상파 작품을 대할 때마다 그들이 보았던 빛을 찾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이 보고 느꼈던 빛은 결코 느낀 적이 없다. 그것은 당시 내가 서 있던 곳의 빛이 늘 같은 것이 아니라, 눈부시게 빛나던 파리의 빛이나, 부드럽게 퍼져 마음마저 따뜻하게 만드는 뮌헨의 빛처럼, 사실 그대로를 바라보 게 만드는 런던의 빛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상파 작품들을 볼 때마다 항상 새로운 설렘이 생겨난다. 진정, “모네의 눈은 기가 막힌 눈이다!”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다. 채링 크로스 역 앞에서 보았던 현대적인 시계의 바늘이 11시 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무려 4시간을 넘도록 이 곳에 있었던 샘이다. 그럼에도 발길은 떨어지지 않는다. 늘 그런 식이다. 어디를 가던지 처음 들어섰을 때의 그 설레는 흥분과는 반대로, 전시장을 나가야 할 때의 아련한 그리움과 가슴 저미는 한숨은, 애달픈 마음에서 솟아나는 적막감과 경외감으로 시종일관 침묵을 지킨다. 마치 폭풍우가 갠 후 무지개처럼, 마침내 잠잠해지는 바람처럼, 남은 것은 정적과 아련한 희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이의 위안뿐이다.
오전보다는 좀 더 관람객의 수가 늘어 부산스럽기도 하고 약간은 소란스러워 보였지만, 겨우 들리는 것이라고는 윙윙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제야 내 몸에서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부식성 짙은 이산화탄소에 나마저 부식이 될 것 같았고, 메마른 탈 이온화된 향 때문인지 루벤스의 성화에서 세잔의 사과가 떠오르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눈물겨운 이별을 해야 했다.
창문을 두드리던 비는 그친 지 오래되었다. 비가 그친 하늘과 바람, 태양이 남긴 기묘한 그늘이 마련된 서머셋 하우스 광장 파라솔 아래 잠시 자리를 잡았다. 서쪽으로 기울 준비를 하고 있는 태양으로 한쪽에는 엄청난 그들이 드리웠지만, 볕이 드는 아늑한 광장은 분수대 사이로 한줄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솟구쳤다. 비록 태양은 한 조각구름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나, 여전히 전력을 다하여 광장 안 모든 것에 햇살을 퍼부으면서, 붉은 융단의 제라늄 같은 담홍색이 들게 했는데, 카라바초의 그림이나 보들레르가 트럼펫 소리에 “감미롭다”라는 형용사를 사용한 이유를 깨닫게 해 주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작품의 향수를 짙게 해 주거나, 혹은 그 작품에 의해 자극을 받아, 햇빛에 반사되어 하늘 위로 솟구치는 분수를 모네의 작품인양 바라보고 있고, 파라솔 아래 앉아 있는 이들을 피사로의 [몽마르트르 대로]를 보고 있다거나, 내 뒤로 드리워진 터널 같은 아치를 티치아노의 [성모와 성자 및 페사로가]와 같은 형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현시대에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예술작품은 더 이상 아름답고 불길한 수수께끼의 사물이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우면서 우리에게 속한 실제의 것으로 다시 태어났고, 마침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는 자의 권리리 향유하게 되었다. 종종 사람들은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은 전적으로 옳지 않다. 가장 위대한 걸작품들 중에는 우리에게서 할 말조차 빼앗아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아무리 애써 읽어보려 한들 마음속에서 먼저 떠오른 몇 마디 평범한 낱말로 그림엽서 한 장을 메우는 것이 그 그림을 기억하는 데에 더 큰 도움이 된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그림을 보는데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것을 스스로의 감각을 통해 현재적으로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멀리 사라질 것을 가까이,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영원하게 느껴야 한다. 그러면 그 느낌은 언제나 행복한 놀라움이 될 것이다.
여행 중에 다녀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사진을 찍는 습관이 몸에 익히지 않은 관계로, 미술관 특유의 분위기를 자세히 보여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런 이유로 몇몇 사진의 출처는 ‘코톨드 갤러리’ 홈페이지임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