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인터뷰
<소식지 온>은 현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의 소식을 전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초대 아티스트로 현재 ‘전화벨이 울린다’ 공연을 하고 있는 서미영 조합원을 만나봤는데요. 아티스트 서미영과 교육가 서미영, 그리고 인간 서미영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펼쳐집니다.
멋모를 때 무대의 맛을 느낀 후 배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발랄한 배역과 악랄한 배역을 넘나들고 있으며, 학교와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 연극, 뮤지컬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아빠, 엄마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싶은 서미영이라고 합니다.
저는 경상남도 마산이 고향이에요. 어린 시절은 장손이신 아빠와 그 덕에 집안일이 많은 엄마, 다섯 살 터울의 오빠, 그리고 저 이렇게 복작복작 지냈어요.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막내 삼촌과 고모가 함께 지내느라 더 복작거렸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땐 거의 주말마다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갔던 것 같아요. 제사도 매달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덕에 시골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이 은근히 많은데, 가끔 연기할 때 도움이 되기도 하고 살아가는데 추억이 되어서 좋아요.
중학교 1학년 때 교내 축제에서 느꼈던 그 묘한 느낌이 지금까지의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내성적이던 제가 누군가 앞에 서 있고 그 누군가들이 나를 집중해서 보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전형적으로 집에서는 잘 까불거리고 목소리도 큰 딸이었지만, 학교에서는 내성적인 아이였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땐가? 겨울에 엄마가 따뜻하게 옷을 입혀서 학교에 보내주셨어요. 키가 작아서 난로 옆자리에 앉았는데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외투 지퍼를 내리다가 지퍼가 옷에 끼면서 지퍼가 내려가질 않더라고요. 그런데 담임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못해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하루 종일 있었어요. 그 정도로 숫기가 없고 용기도 없었던 아이였어요. 그렇게 지내다 정말 우연한 기회로 중학교 1학년 때 교내 축제 무대에 서게 됐어요. 여자중학교였는데 같은 반 친구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해서 <로도령과 줄자아씨>라는 대본을 만들었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다고 계속 칭얼거렸어요. 무슨 용기가 났는지 제가 줄자아씨를 하겠다고 했고 아이들끼리 어설프게 연습해서 무대에 올라갔는데, 그때 무대에서 정말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이게 뭐지?’하는. 그런데 정말 운명처럼 며칠 후에 버스정류장에서 마산에 처음으로 연기학원이 생긴다는 홍보 현수막이 걸려있는 걸 보고 부모님께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부모님은 그 전에도 그러셨지만 제가 하고 싶다고 하는 건 다 시켜주셨거든요. 연기도 그냥 그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학원을 다니게 됐고, 다니다가 지방이라 문화예술도 풍족하지 않고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예고에 진학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대학도 예술대학으로 진학하게 됐어요.
앞서서 아빠, 엄마의 이야기를 무대에 꼭 올려보고 싶다고 했는데, 이유는 고등학교 진학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게 됐고, 두 분이 걱정하실까 봐 매일 통화를 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다 보니 두 분의 마음과 삶이 제가 살아오는데 원동력이 되고, 그 삶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어요. 나이가 들수록 두 분이 열심히 살아오셔서 감사하다고 느껴요. 아직은 용기가 안 나요. 두 분을 생각하면 바로 코끝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마음이 흔들려요.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질 때 멋있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서미영]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좀 직관적인 것 같지만
‘그래도 더 알고 싶은 [서미영]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만둬야 하나 싶을 때가 있는데, 연습하면서 스스로 재미를 못 찾을 때에요.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할지, 연기는 고구마만 100개는 먹은 것 같이 답답하게 잘 안 풀리고, 그걸 제가 건강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모습을 스스로 인식할 때 그만둬야 하나 싶어요.
8살 된 조카가 제일 관심이 많아요. 이번에는 무슨 역할이냐?, 배역 이름은 뭐냐?, 제목은 뭐냐?, 몇 명이 나오느냐?, 내가 볼 수 있냐? 등등. 부모님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전공하고 있으니 공연 보시고는 항상 대견하다고 말씀해주세요. 지방에 사시다 보니 제 공연을 자주 볼 수 없어서 아쉬워요. 한번은 서울에서 했던 공연을 통영 연극제에 초청받은 적이 있었어요. 두 분이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끝나고 부모님을 뵈러 나갔다가 공연을 본 통영 여고생들한테 둘러싸였어요. 사진 찍고 사인하는 모습을 보시곤 굉장히 흐뭇해하셨어요. 또, 결혼하고 나니 시부모님이 신기해하시고 대견해하세요. 남편도 배운데, 아들의 연기를 볼 때랑 며느리의 연기를 볼 때랑 느낌이 다르셨나 봐요. 공연을 보시고는 그 몸통에서 어쩜 그렇게 소리랑 에너지가 나오냐며 신기해하세요.
글쎄요. 연극은 많은 등장인물이 있어서, 언제나, 늘, 하기 좋은 것 같아요. 다만 대부분의 희곡이 여자 배역이 많이 등장하지 않고, 배역의 폭이 넓지 않다는 지점이 있어요.
늘 달라서요. 같은 대사, 같은 배우, 같은 장소인데 관객이 다르고 시간이 달라요, 그 지점이 참 재미있어요. 긴 시간 연습을 하고 관객을 만날 때의 느낌과 기억 때문에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장성. 내가 거기 있었다는 느낌인 것 같아요. 연극의 3대 요소도 배우, 무대, 관객이에요. 보는 이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거죠. 가끔 아주 춥거나 더운 날, 비 오는 날 극장을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의 마음을 생각해봐요. 왜 극 장을 찾으실까 생각해보면 이런 매력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도덕성과 예술성이 다른 사람이요. 요즘 너무 충격적인 일들이 많은데요. 예술이라는 것은 예술행위를 하는 그 사람의 생각, 언어, 삶에 대한 태도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 예술을 믿을 수 있을까, 존경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 내로라하는 상을 받거나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제 연기를 보고 관객 분들이 너무 잘 봤다, 좋았다,라고 말씀 해 주실 때 연극하길 잘 했다 싶으면서 좋아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연극 그만둬야 하나 생각까지 하면서 고생한 순간이 눈 녹듯 녹아요.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평생직장이지 않느냐고. 평생 하려고요. 아줌마 연기도 질펀하게 하고 싶고, 귀여운 할머니 연기도 하고 싶고. 절절한 연애 연기도 하고 싶어요. 아직 하고 싶은 역할이 너무 많아요.
연극은 이미 같은 장르의 예술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만드는 예술이고, 교육연극은 그렇지 않은 점이요. 작업방식도 다르죠. 연극은 이야기와 의미가 갖는 주제와 시의성에 대해 더 논의한다면, 교육연극은 참여자들이 그 안에서의 스스로의 발견, 변화, 재미를 찾는 과정으로 작업하는 것 같아요.
네. 내용, 주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접목시키면 그냥 배우는 것이 아니라 왜 해야 하며, 왜 의 미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더하게 될 것 같아요. 팀마다 작업방식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팀들은 인물의 목적, 의 미,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이 주제가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 등에 대한 테이블 작업을 굉장히 깊게 하거든요.
교육에서 결합하고 싶은 장르는 많아요. 인문학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에서는 늘 베이스에 있어서 항 시 결합하고 싶고, 요즘 아이들이 웹툰이나 미디어 등에 빨라서 시각분야와도 결합해 보고 싶어요.
제가 건강해져야 올바른 교육, 공연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표현예술치료를 배웠어요. 연습과 공연 과정, 교육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상처도 많이 받고 지치더라고요. 교육자, 예술가로서 건강한 에너지를 주고 싶어서 배웠어요. 아직 더 배우고 탐구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미루고 있어요.
너무 많은 멘토가 있지만, 본인의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모든 분들이 멘토예요. 저는 열심히 살고 싶어요. 그 속에서 재미도 찾고, 힘들어할 시간도 가져보고… 열심히 살고 후회 없이 살고 싶어요.
좋은 사람이요.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 항상 이렇게 기도 하셨대요. ‘많은 사람 눈에 잎이 되고 꽃이 되게 해 주세요’ 참 감사한 기도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를 알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함께하고 싶고, 편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민감한 상황에서 유연한 모습을 보일 때와 이해의 폭이 넓어졌을 때요. 예전 같으면 상대방에 대해 왜 저래?하면서 이해 못 하고 안 했던 그런 일들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 생겼어요. 매년 나이가 들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같고, 결혼하고 나서 친구들이 그래요. 보살이 된 것 같다고. 특히 결혼을 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순발력 좋은 사람과 긍정적인 사람들이 부러워요. 저는 긍정적인 척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타고나길 긍정적인 사람들을 못 따라가겠어요. 순발력도 마찬가지고요. 저희 남편이 그런 편인데 옆에서 보면 부럽더라고요.
이 질문을 보고 내가 뭘 잘 하나 싶어 한참 생각하다가 남편한테 카톡으로 물었어요.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게 뭐냐고. 그랬더니 답이 이렇게 왔어요. "여보는 남들보다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잘 들려주고, 감정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연기도 잘 해요. 무언가를 추진하고 행동하는 것도 잘 하고, 경상도 사투리도, 서울말도 잘 해요"
제가 화술이 좋다는 칭찬을 좀 받아요. 배우들은 대사보다는 말이라고 표현하거든요.
마지막 질문은 괜히 했다 싶지만 (농담^^) 서미영 님과의 인터뷰는 정말 좋았습니다.
공연 준비로 바쁘신 중에도 열정이 넘치는 초보 기자가 무턱대고 들이 댄 질문에 너무 성심껏 답을 해주셔서 ‘어? 내가 질문을 너무 잘했나?’ 착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서미영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 <전화벨이 울린다> (2018. 3월 20~4.1 , 두산아트센터 Space¹¹¹ ) 많은 관람 부탁드립니다.
글. 황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