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ty & Art
마을과 공동체란 단어를 들으면 농어산촌 마을이 떠오르거나 서로 나누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도시 속 작은 동네 모습이 그려진다. 시골 마을은 여전히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을이라는 전체 공간, 밥, 일, 희로애락, 정보를 공유하거나 나눈다. 마을살이에 관련된 대부분의 의사결정 또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회의나 토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매일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의지한다. 사람들 사이에 내 것, 네 것 하는 경계가 별로 없다. 감추는 것보다 드러내는 것이 더 많다.
대도시에서 시골과 같은 마을 공동체적 삶을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도시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지만 이들이 시도했던 것들이 오래 지속되거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례는 거의 없다. 도시 속 동네 공동체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고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참 많다. 공동체에 대한 상상과 생각이 다르고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했던 일과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마을’과 ‘공동체’를 꿈꾼다. 일자리와 주거지, 아이의 학교를 찾아 끊임없이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녀야 하는 우리는 이웃과 함께 오래 머무르며 정착할 수 있는 동네살이를 소망한다. 대도시 속에서 자율적 개인으로서 익명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수많은 공포와 불안, 고립과 단절에서 벗어나 타인과 ‘함께 있음’이 주는 소속감과 안정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는 생각보다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체 마을살이를 시도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집단이 대도시나 중소도시, 시골지역 곳곳에서 공동체 만들기를 주도하고 있지만 오래 유지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공동 육아나 교육 등 특정한 필요를 공유하는 집단이 작은 공동체를 끊임 없이 시도하지만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이내 사라진다. 지난 10여 년 간 지자체가 이런저런 마을 공동체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의 실제적인 효과에 대한 평가 점수는 그리 높지 않다. 수많은 사업들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업으로 그칠 뿐 마을 공동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엔 민망할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공동체란 용어는 마을에서 함께 하는 삶, 마을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삶이라는 운명 공동체로서의 의미가 우선하기보다 주민 간의 소통과 관계 맺기를 목적으로 하는 특정한 사업이나 활동에 방점을 두고 있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지자체나 공동체 활동 그룹의 주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예술은 누구나 가장 먼저 찾고 손길을 내미는 대상이 되었다. 마을 속에서 예술을 매개로 주민들이 만나고 소통하며 마을 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노출하거나 해결책을 찾는 매개체로서 예술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도 ‘공동체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공동체에 기반을 둔 예술, 공동체에 참여하는 예술에 대한 논의가 확장되고 있다. 예술가들도 사람들과 보다 더 직접적으로 관계 맺고 공동체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예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 호주, 북유럽 등 광범위한 지역의 예술가들은 공동체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묻고 관련된 활동을 확장해왔다.
이들은 대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언론 등 사회적 기본 요소들이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대부분 빈곤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예술가들은 빈곤이나 장애,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소외되고 방치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직면한 이슈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예술가들은 취약한 지역의 빈곤층, 장애인, 노인, 여성, 실업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들이 직면해 있는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과 환경에 대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동체 예술가들은 작은 지역의 이슈가 결국 전국적 이슈이며 동시에 전 지구적인 이슈일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고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공동체 예술가들과 연대하는 활동에 관심을 갖는다. 미술, 영상, 뉴미디어아트, 연극, 댄스, 음악 등 자신들의 예술적 수단이 어떤 것이든 공동체 예술가들은 취약한 지역 주민들의 삶과 소통하고 이의 개선을 위해 연대한다.
공동체 예술가들이 중앙 정부나 지역 정부, 기업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행위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 소외된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엄성과 평등한 시민권에 동의한다면 공동체 예술가들이 보다 많은 우군을 만들어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공동체 예술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지역에서 포지셔닝하기 위해 활동하지 않는다. 예술가로서의 자기보다는 공동체 주민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 예술을 무기로 사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공적인 무대로 이끌어냄으로써 사회적 공감과 비판적 토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잊혀지고 소외된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활성화시키고 이들이 사회적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별화되고 고립된 주민들이 자신이 속해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에 무관심하고 침묵할 때 예술이 그 틈을 메우고 개선을 위한 공동행동과 연대를 매개해야 한다. 이런저런 마을공동체 예술 지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마을, 공동체 그리고 예술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글. 이영주(마을온예술 조합원, 제3언론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