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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장 Oct 10. 2024

초식에서 잡식으로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


아비투스 :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회적 관습에 의해 형성된 현상



어렵고 힘들 때 책을 보면 방법이 보인다곤 하는데, 이 책을 보니 작금의 건축계가 왜 이런지 알 것도 같다.


건축가와 건축사의 오랜 자격 논쟁은 일본도 똑같다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 하다가도 한국의 법을 추적해 볼 때 일본이 나온다는 것을 보면 그리 놀랍지는 않다. 법치국가에서 모든 관습적 사회현상은 법에서 출발하는 법이니.


그러고 보면 나도 여전히 건축사라는 말보다는 건축가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는데 둘 모두에 속한 덕분인지 크게 와닿지는 않으면서도 건축가를 좀 더 문화적인 부분에 걸쳐 있는 말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문체부에 걸쳐 있는 건축가협회와 국교부에 걸쳐 있는 건축사협회의 영향도 크리라.) 다행히도 이 책의 설명에 의하면 사회적 아비투스로 인한 것일 뿐 자의적 해석은 아니라는 점이다.


건축가계에 속하기 위해서(사실 일본 정도라면 그것 또한 꽤 유능한 일로 쳐주겠지만 한국은 글쎄..)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세지마 가즈요의 사례를 들었다. 그들이 취한 전략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 전략들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모든 직종은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역사 속 건축가는 왕과 귀족의 집을 짓는 것이었고 건설 부흥기를 지난 지금은 과거에 비하면 작은 일들을 한다. 과거의 건축가가 하지 않던 일들이 지금의 건축가들에게는 주요한 시장이 되었다. 과거 건축가들이 형성한 아비투스는 해체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고도 성장기를 지나 IMF의 정체기를 겪었다. 그 후 2기 신도시의 시작(국민의 정부 말기부터 추진되었고 참여정부의 주도로 2003년부터 사업이 본격화되었고 2007년에 입주가 시작된 신도시)과 함께 쇼규모 건축 시장도 붐이 일었다.


수익을 내며 주택의 로망을 이룬다는 상가주택은 그때부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입주가 끝났다. 그 덕에 2010년 초반 젊은 건축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상가주택을 설계하고 잡지에 싣고 상을 받았다. 그 시절 가장 주목받던 건축가 중 와이즈 건축의 장영철 소장이 한 칼럼을 실었다.



[3040 건축가]① 장영철·전숙희, “이젠 초식 건축가 시대"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2/09/2013020900359.html





지금 보니 그때조차도 축복받은 때였다. 기성 건축가들은 작은 일이라며 등한시했고 젊은 건축가들은 그런 일이라도 해야 했다. '초식 건축가'라는 말로 그들을 포장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들을 있게 했던 2기 신도시의 일감조차 끝났다. 그 시절 사석에서는 '지금은 신도시 일이라도 하지 이것도 끝나면 그때는 뭘 먹고사나'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 얘기하던 '그때'가 지금이 되었다.


정말로 상가주택 시장은 끝이 났고 집을 수리하는 일들이 잡지에 실리고 있다. 일감을 찾아 쇠락해 가는 지역에 터를 잡은 이들이 등장한다. 작지만 그들의 작업을 알릴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는 '건축가라는 직능의 해체'가 이미 한국에서는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일조차도 없는 지금은 대부분의 건축가들이 설계 공모에 매달리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가의 아비투스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40대 초반의 내가 보는 건축가의 아비투스와 50대 초반의 그것은 다를 것이다. 상가 주택으로 등단(?)하던 젊은 건축가를 동경했던 나는 그런 작은 일을 할 생각으로 대형 사무소에서 작은 사무소로 이직했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가의 아비투스는 그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빠른 나이에 사무소를 열었다. 인테리어 시공으로 시작했고 한동안 등한시하던 그 일이야 말로 미래의 건축가에게 주요 무대가 수밖에 없다. 신랄하게 얘기하자면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이 포진한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드는 시장에서조차 건축가들에게 주어질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DIT(Do It Together)로 불리는 일본의 빈집 활용 사례와 같이 비교적 쉬운 일들은 건축가 스스로 하는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30대가 보는 건축가의 아비투스는 그것으로 변화할 것인지 모르겠다.



축소사회의 건축가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일은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나 역시 새 판을 짜야한다는 것을 느낀다. 고고하게 앉아 펜대를 굴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는 이제 뭐든지 먹어 치워야 하는 '잡식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지방 도시 소멸과 함께 DIT를 시도하고 있다.
2024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출품작 중 하나. 현재 젊은 일본 건축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잘 나타내 준다. 오히려 2024년 한국의 건축 상황보다 나아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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