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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Oct 02. 2021

서른 번째 생일

미성숙과 미완성의 친구가 되기

167일째, 서른 

 참치 회를 먹으러 갔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 9,900원에 참치를 맛볼 수 있다는 현수막을 봤었는데 언젠가 한 번은 먹으리라 다짐했던 터였다. 그리고 오늘 망설임 없이 가게를 들어갔다. 문 닫는 시간까지 50분 정도 남은 시간, 내가 마지막 손님이다. 메뉴판에 ‘참치’가 없고 ‘참다랑어’만 있어서 당황했다. 참다랑어와 참치가 같은 물고기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마침내 가성비 좋은 1인용 참치가 나왔다. 둥그런 옥색 돌 위에 선 분홍, 진달래, 연분홍색 살점이 열 몇 개 있다. 오른쪽에 가지런한 무순 다발과 반대편의 생 와사비, 참치의 보색 대비가 훌륭하다.  꿈벅꿈벅, 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눈으로 고운 빛깔을 즐긴다. 명절 때 제사상 술잔에 술을 따르듯, 종지에 엄숙하고도 정갈하게 간장을 붓는다. 유난히 끝이 뾰족한 젓가락으로 참치 살점 하나를 든다. 참치 회 한 점을 먹었는데 입안에 물음표가 띄워진다. 혀가 참치 맛을 알아채지 못한다.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는 대신에 미식가는 못 되는 혀는 ‘참치 회’는 평생 맛볼 일 없을 줄로 알았나 보지. 차고 말캉하기만 하다. 내 혀의 문제인가? 미각더러 정신 차리라는 의미로 된장국을 한 모금 들이킨다. 미각이 나는 문제없다고, 시위하듯 된장국의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 잘 느껴진다. 젓가락은 처음에 참치 한 점 든 후로 참치 쪽으로는 영 발길을 끊었다. 함께 곁들여 나온 샐러드, 무조림, 콘치즈를 탐닉하는데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다. 샐러드는 새콤한 간장 베이스의 드레싱으로 깔끔하고 싱싱하다. 무조림은 뭉근하게 따뜻하고 친절하다. 콘치즈는 앙증맞고 톡톡 튄다. 

 입은 바쁘게 저작 운동을 하는데 눈에서는 서서히 초점이 흐려진다. 맺힌 눈물이 떨어져 볼썽사나워지기 전에 얼른 휴지 한 장을 뽑아 눈가에 갖다 댄다. 나는 오늘 생일이었고 막 이별을 하고 이곳, 참치 집에 온 참이었다. 생일날 혼자 있지 말고 오라는 친한 언니의 말을 뒤로하고 홀로 있기를 택했다. 이별은 요즘 해가 길어서 노래 제목대로 ‘대낮에 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노래 가사와는 달랐다. 시간이 지나 괜찮아지면 친구로 다시 만나자는 얘기도 하지 않았고 나는 곧 죽을 것 같은 심정도 아니었다. 햇살은 밝았다. 무슨 맛인지 모르는 살덩이를 씹고 있는 지금, 이제야 하루를 톺아볼 기운이 돈다. 서른을 맞는 생일에 도래한 이별과 밤 9시 10분 홀로 먹는 참치 회라... 우스운 구석 하나 없는 생일인데 비죽, 실소가 나왔다. 해마다 먹는 한 살이고 돌아오는 날짜이지만 그래도 나의 서른과 생일이 특별하고 의미 있으면 했다. 그리고 한 치도 예상치 못했던 일로 채워진 오늘이 꽤나 특별하고 의미가 있었다. 막 마지막 회 한 점을 입에 넣는데 ‘김에 싸서 챔기름에 찍어 먹으면 참 맛난다’고 한다. 아쉬운 대로 가게를 나선다.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 삼십 년 전 산고의 고통을 겪은 엄마와 통화를 했다. 무심하게 툭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로 대화를 열고 이별 얘기, 참치 얘기는 쏙 빼고 그럭저럭 오늘을 보냈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대화의 빈 곳을 매웠다.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는 엄마 말을 한 귀로 흘려도 되지만 오늘은 주워 담기로 한다. 언덕길을 다시 내려갔다. 편의점에서 레트로트 미역국을 샀다. 날이 넘어가기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생일의 의미보다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초조한 마음으로 물을 올린다. 오목한 그릇에 국을 담아내니 미역국보다는 미역 몇 가닥 얹은 끓인 물에 가깝지마는, 뭐 어떠랴. 오늘은 서른 번째 생일이다. 서른을 맞은 생일은 심심한 이별, 싱거운 참치 회와 맑은 미역국과 같이 미성숙한, 미완성의 어떤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썩 마음에 들었다. 이런 어설프고 조악한 하루를 내가 사랑했구나. 생일을 맞은 생일자가 자신에게 전언한다.  

 ‘성숙과 완성은 조금 더 천천히 오라. 그리고 다음에 참치 회를 먹거들랑 한 점 정도는 김에 싸서 챔기름에 찍어 먹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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