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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Oct 07. 2021

마음은 선물을 타고

우산을 선물 받았다

169일째, 서른 

“우산이 예쁘면 기분이 좋죠.”

 신기한 일이다. 그 사람 말처럼, 예쁜 우산이 생기니 기분이 좋다. 선물 준 사람의 한 마디가 그대로 마법 주문이 되어 이전에는 몰랐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그 사람은 큰 우산으로 비를 많이 맞지 않으면 기분 좋다고 했다. 우산이 작으면 큰 우산에 비해 비를 많이 맞을 수 있는 게 당연지사. 그런데 나는 그 평범한 말이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외우려고 곱씹는, 어떤 전설적인 어록처럼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람 하는 말이, 내게 민트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골랐지만 만일 마음에 드는 다른 색깔이 있으면 바꾸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집에 어떤 물건도 민트색이 없지만, 취향보다 나와 민트색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그 사람의 판단이 소중하다. 나는 안다. 앞으로 이 유일한 민트색 우산을 볼 때마다, 꼭 비가 오지 않더라도, 하늘에 희고 작은 구름 덩이들이 물고기 비늘처럼 깔린다면 자연스레 그때 나를 생각했던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리란 걸.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왜 좋을까? 값비싸고 근사해서, 평소 위시리스트에 있던 물건이라서 따위는 곁가지다. 선물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는 선물을 건네는 손의 주인, 그 사람 때문이다. 바꿔 묻는다. 선물을 받았을 때 어떨 때 감동했나? 살뜰히도 나를 생각한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 나를 감동시킨다. 나의 생활 습관, 색과 디자인부터 포장지 무늬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그려지는 그 사람에게 감동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에도 묻어나는 그 사람의 생각과 안목, 취향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물건 자체는 감동을 담는 그릇이 못 된다.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해지거나 혹은 잃어버리면 그대로 사라지지만, 마음은 오래도록 간다. 마음이 바래고 희석되기도 하는데, 그런 종류를 사람들은 ‘추억’이라 부른다.    

 내가 사는 세상은 효율과 편리가 왕 노릇을 하는 세상이다. 톡, 톡 손가락 태핑 한두 번이면 상대방 위시리스트에서 물건이나 상품권을 선물할 수 있다. 요긴하고 고맙다. 다만 너무 쉽고 간편해서 위화감이 든다. 선물하는 과정이 단순하고 빨라질수록,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도  도식화되어 조각조각, 순식간에 어디론가 흘러 없어질까 두렵다. 나는 당신을 충분히 생각하고 싶다. 당신이 기뻐할 물건을 고민하고 상상하며 그리고 싶다. 그 영민하지 못한 수고로움과 불편함을 테이프를 늘리듯 누리고 싶다. 나는 가슴이 초조하고 노파심을 가진 나머지, 아무도 묻지 않지만 힘주어 다짐한다. ‘나는 당신을 위해 기꺼이 시간과 물질을 쓰기로 수고하겠다.’ 완벽하게 시간에 구애받는 사람은 시간에 속박당한 존재고, 시간이 드는 데에 사람의 마음이 깃든다. 그래서 그렇게 고르고 고른 선물에는 마법이 걸릴 수밖에. 내 민트색 우산에 구멍이 나고 녹이 슬어서 결국에 못 쓰게 되더라도 마법은 풀리지 않고 계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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