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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Oct 10. 2021

나의 벗, '콩' 이야기

쉬운 말이 좋다

170일째, 서른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 좋다. 이름보다 ‘콩’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리는 벗과 대화하다 문득 든 생각이다. 콩이 하는 말은 쉽다. 말에 뼈가 옹골차게 있어선지, 구태여 살을 붙이지 않아도 말이 된다. 나는 콩에게 편지할 때면 항상 ‘To. 콩’ 하고 그 옆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새카맣게 채우고 줄 네 개를 긋는다. 두 개는 팔이고, 나머지 두 개는 다리다. 움직이는 검은 콩. 콩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가 작다. 작은 키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을 연상시키는데, 그마저도 다부진 말씨와 잘 어울린다. 속담에 고추 대신 검은콩을 넣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의 벗. 

 콩은 통찰력도 좋다. 그래서 주위에 사람을 잘 본다고 입소문이 났다. 나는 새로운 이성을 만나기 전 어김없이 콩에게 어떠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콩은 자기는 점쟁이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 사람 눈빛이 어떻고 한다. 콩이 사람을 볼 때 안광을 봐서일까, 아무리 화려한 말솜씨를 가진이라도 콩은 눈 하나 꿈쩍 안 한다. 듬직한 나의 벗.

 콩과는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콩은 분노조절장애와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는 중이었고 나는 오랜 착한 아이 병을 앓고 있었다. 광대 끼도 있던 나는 어느 쉬는 시간, 우유 급식으로 나온 콩의 250mL 서울 우유를 냅다 들고 뛰었고 콩은 맹렬히 좇아왔다. 나는 줄지어 있는 책걸상 새 10m 정도 간격을 두고 헤헤 웃으며 우유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콩을 약 올렸다. 콩은 분노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나는 깜짝 놀라서 우유를 돌려주었다. 이후의 기억은 흐릿하다. 콩이 되찾은 우유갑을 벽에 던져서 하얀 우유가 사방팔방 튀었던 것 같기도 하고 별안간 주먹으로 벽을 쳤던 것 같기도 하고 둘 다 연속 동작으로 한 것 같기도 하다. 분명한 건, 나는 소금기둥처럼 딱딱해졌고 교실 분위기도 차갑게 얼어붙었다. 지금 콩에게 그때의 얘기를 하면 기억을 못 하고 나보고 지어낸 게 아니냐며 의심한다. 그러고는 두 해 뒤 자신의 핸드폰을 숨긴 다른 친구가 보는 앞에서 되찾은 핸드폰 화면이 박살이 나게 던졌다는 건 기억난다고 인정한다. 정직한 나의 벗.

 생각해보면 콩은 그때도 빙빙 돌리거나 계략이 숨어 있을 거 같은 쿰쿰한 말과 행동을 모두 싫어했다. 묵언 수행을 하면 했지, 누구와도 그런 식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나는 말을 빙글빙글 우회하는 운전에 수준급인 겁쟁이였는데 둘 다 다른 의미로 서툴고 조악한 돌멩이였다. 두 개의 돌멩이는 부딪히기도 전에 겁쟁이 돌멩이 하나가 도망갔다. 한두 해 뒤, 다른 우직하고도 곧은 돌멩이는 나를 다시 만나주었다. “만나자, 보고 싶다” 쉽고 간단한 말이었다. 다른 어떤 군더더기도 붙이지 않았다. 콩의 자비로, 나는 스물다섯에 처음으로 진정한 우정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관계란 두 사람 사이의 끈인데, 한쪽이 끈을 놓더라도 다른 한 사람이 놓지 않으면 언제라도 끈을 따라가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손에 놓았던 끈을 쥐여주면서, 잘 잡고 있으라고 부탁할 수 있다. 여차하다 안 되면 손목에 끈을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매어줘도 될 일이다. 그리하면 적어도 사람을 영영 잃어버릴 일은 없다. 내 손에 끈을 쥐여 줌을 당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감복해 마지않는 경험이었다. 

 지겨워빠진 말이 많다. 그렇더라도 지긋지긋한 데다 어렵기까지 한 말 말고, 닳았지만 쉬운 말을 해야겠다. 그리고 놓친 끈을 주워 잘 쥐고서 끈을 따라간다. 가는 길에 보고 싶다, 네 생각이 났다, 그리웠다 같은 정직하고 쉬운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뱉어보면서 연습하면 끈 끝에서 쉽게 그 쉬운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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