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홍은전 작가와 인터뷰하던 날은 언니의 기일이었다. 바보 같은 나는 인터뷰 일자를 28일로 착각했고, 언니에게 가려고 비워둔 29일에 가족들만 보내고 예정대로 인터뷰를 해야 했다.
특별히 서운하지는 않았다. 언니는 이제 항상 그곳에 있으니까. 언제든 내가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2년이 지났구나’싶어 마음이 가라앉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사람>에서 홍은전 작가는 교통사고로 언니를 잃었다고 썼다. 언니 이야기를 쓰지 않고서 세월호 이야기를 쓸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전혀 모를 것도 같은 그 마음에 대해 더 듣고 싶었다. 언니 이야기와 세월호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언니 이야기를 쓰고 나서 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막상 물어보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책에 나온 이야기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실례일 수 있겠다 싶었다. 망설임 끝에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고 홍은전 작가는 잠시 생각하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가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마음을 졸였다. 이런 질문을 왜 하냐고 생각하진 않을까, 혹시 화장실에서 울고 오는 건 아니겠지 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로 돌아온 그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화장실에서 생각해 봤는데요…”
입을 뗐으나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그를 보다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혹시 질문이 불편하신가요? 사실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어서 물어봤어요. 저도 언니가 2년 전에 고인이 됐거든요. 만약 어려우시면 답변 안 하셔도 괜찮…"
"얼마나 됐나요?" 구구절절 설명하는 내 말을 듣던 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차'하고 후회한 순간 되돌아온 질문이었다. “2년이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태연히 답하고 다시 질문지에 눈을 고정했지만, 이미 수습 불가. 내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고였다.
무슨 생각으로 내 이야기를 한 걸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러 간 자리에서, 물어야 하는 내가 대체 왜. 혹시 내 질문을 불편해할까 봐 진심을 알리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마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고. 그러니 편하게 당신의 마음을 이야기해 달라고. 아무도 묻지 않아서 하지 못했을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자리에서 그렇게 눈물이 나올 줄 알았다면 절대 말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인터뷰는 내내 즐거웠고, 나도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우는 건 아니니까. 짧고 깔끔하게 사실만 이야기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늘 마음은 생각보다 빠르고 힘이 세다.
"사건을 설명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나도 내가 겪은 일에 대한 감정을 잘 모르고 지나가는데 그 말을 읊으면 눈물이 나요. 사람들이 저한테 잘 운다고 하는데요. 저는 말할 때만 울거든요. 글 쓸 때만 울어요. 재생해야만 사람이 울더라고요. 그래서 똑같은 일을 겪어도 심지어 겪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말해야 울더라고요."
처음 듣는 질문이라고 했다. 언니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누구도 묻지 않는다며 그는 웃었다. 또 다른 일로 상실을 겪은 친구 한 명과는 비교적 편히 이야기한다고.
계속 무덤덤했던 내가 왜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는지 홍은전 작가의 답을 듣고 알았다. 아마 그날 누군가에게 말할 일이 없었다면, 나는 평소처럼 무난하게 인터뷰를 끝내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일과를 공유하면서 하루를 마감했겠지.
물어야만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말해야만 드러나는 감정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계속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