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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양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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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y 21. 2024

3. 조선일보 장춘지국장 김이삼의 이야기

단편소설 <평양의 밤>

 평양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10여일 뒤, 조선일보 장춘지국장 김이삼은 길림시에 있는 원동 여관에서 자신의 오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더운 날이었다. 약속 장소는 여관 맞은편 우동 가게였지만, 그는 가게 안에서 기다리기보단 손부채를 하며 자신의 2층 방 창문에서 거리를 내다보는 편을 택했다. 이삼은 친구 K 뒤에 아무도 미행이 따라 붙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계단으로 내려가 우동집에 들어섰다. 우동집 특유의 짠 내와 후덥지근한 수증기가 이삼의 얼굴을 확 덮쳤다. 어중간한 시간이라 가게에는 K 말고는 검은 양복에 중절모를 쓴 한 젊은 사내만 있었다. 

 “자네도 중국에 있는 줄은 몰랐네.”

 이삼은 K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10여년만의 만남이었다. 그들이 있는 우동집은 바 형태라서 이삼은 주로 K의 옆얼굴을 보게 되었다. K는 못 본 사이에 꽤 늙어 있었다. 눈가와 입가에 주름이 선명했다. 영락없는 중년의 모습이지만 눈만큼은 어렸을 때의 열정 어린 눈빛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K는 이삼과 같은 와세대 대학 동기였고 꽤 친한 사이였으나 이삼이 중국에 특파원으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소식이 끊겼었다. 마지막에 들은 소식이 K가 경성부청에 들어갔다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먼 길림시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출장 차 왔다네. 잘 지내나?”

 “죽지 못해 살고 있지.”

 이삼은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중국식 하얀 국물 우동을 시켜 먹었다. 양파와 배추, 해물이 풍성하게 들어간 우동이었다. 더운 날씨와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건물 속에서 매콤하고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에 넘어가자 땀이 주르륵 흘렀다. 창문도 마찬가지로 뿌옇게 이슬이 맺혀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요즘 신문을 보니 자네 이름으로 꽤나 시끄럽더구먼.”

 “내가 예나 지금이나 주목 받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 않나.”

 이삼은 실없는 농담을 하는 자신이 놀라웠다. 사실 하나도 웃기지 않았고, 요 며칠 동안은 이삼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여관 골방에 처박혀 있으면서 죽음을 생각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삼은 웃지 않는 K를 보고 씁쓸하게 말을 덧붙였다.

 “자네도 내가 학살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나?”

 얼마 전 평양에 있었던 중국인 학살을 말한 것이다. 중국인 백여 명이 단순히 그들이 중국인이란 이유 하나로 죽었다. 돌에 맞아 죽은 자, 몽둥이에 맞아죽은 자, 살아있는 채 다리가 잘린 자……. 그리고 모든 참극은 바로 이삼의 호외 기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장춘현 만보산에서 중국인 농민과 조선인 농민 간 충돌이 있었고, 그 충돌 과정에서 조선인을 보호하기 위해 온 일본인 경찰과 중국인 농민과의 총격전이 있었다. 이삼은 이 충돌로 조선인 수십여명이 사상되었다는 기사를 경성 본사에 송고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사를 보고 격분한 조선인들이 조선 내 중국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그 기사가 오보였던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알고 보니 총격전은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던 것이다.

 “신문을 보니 그렇던데. 자네가 사죄문도 조선일보에 쓰지 않았나?”

 “당연히 내 잘못도 있지. 지금도 죄책감에 잠을 못 이룰 정도네. 하지만 정말 폭동이 나 혼자만의 잘못으로 이뤄졌겠나? 애초에 그 부정확한 정보의 출처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바로 일본 영사관이라네. 나는 그냥 그들의 말을 인용한 것뿐이라니까.”

 이삼이 그 기사를 썼을 때, 직접 만보산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날 취재 거리를 찾으러 영사관에 들렀을 때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무슨 일인지 캐고 다녔고, 평소 취재원 역할을 하던 영사관 직원은 중국 농민과의 총격전이 발생했다고 말해줬다.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사람도 죽었는지 묻자 ‘그런 걸로 안다. 수십 명은 죽었을 것이다.’고 그 직원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답했었다. 장춘에서 일본 영사관 직원보다 더 정확한 정보 출처가 어디 있겠는가? 기자가 경찰서나 정부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은 오랜 관행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희생양이 필요했고 마치 김이삼 혼자가 평양 학살을 일으킨 것처럼 몰아세웠다. 

 “내가 만났을 때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

 K의 말을 듣고 이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삼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K에게 물었다.

 “누구를 만났단 말인가? 자네 영사관에서 오는 길인가…?”

 K는 당황한 기색으로 “같은 공무원이니 이야기를 들었지. 이번 장춘 출장도 영사관에서 많은 도움을 줬거든.”라고 말했다. 이삼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앞에 있는 오랜 벗이 갑자기 낯설어졌다. 이삼과 영사관은 지금 진실 다툼 중이었다. 이삼은 조선일보에 사죄문을 실은 후 그 잘못된 정보가 영사관 출처라는 글도 함께 썼으나 총독부 검열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삼의 주장을 실어주는 건 오히려 중국쪽 신문들이었다. 어쩌면 모종의 입막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삼은 장춘에서 길림으로 몰래 거취를 옮겨서 중국 언론들은 열심히 만나고 있는 중이었다. 

 K는 카페에 가자고 제안했으나 이삼은 이제 그만 숙소에 들어가 봐야겠다고 거절했다. K는 강권하진 않았다. 이삼은 K가 골목 어귀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길을 되돌아와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땀에 전 모시옷과 중절모를 벽에 걸고 침대에 누웠다. 여름 바람이 솔솔 들어와 땀을 식혀주었다. 이삼은 이제 친구마저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마음이 착잡했다. 정말 내가 잘못한 것일까?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이삼은 죄책감으로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어두운 밤 불타오르는 중국인 가옥 앞 무수히 쌓아올린 중국인 시체의 환영이 이삼을 괴롭혔다. 물론 그의 잘못도 있었다. 조선인 농민과 중국인 농민 사이의 충돌을 자극적으로 다룬 것,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로 평소처럼 무심히 송고한 것. 하지만 그게 팔리는 이야기니까. 이삼만 그런 기사를 쓰는 것도 아니었다. 조선 사람들은 중국인에 대한 분노를 터트릴 구실이 필요했다. 대공황 이후 값 싼 중국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실업을 경험했고 중국인들에 대한 혐오를 키워갔다. 사회가 피를 원했고 언론이 이를 자극했고 정부는 이를 방조했다. 말하자면 이삼은 인화 물질이 가득한 방에 조그마한 담뱃불을 떨어트린 것밖에 잘못은 없었다. 모든 이들이 그 방에서 담배를 피웠지만, 하필이면 이삼 차례에서 불똥이 땅바닥에 닿은 것이다. 심지어 학살의 날에 평양 경찰서장과 치안책임자들은 요리점에서 회식을 하고 있었다. 사건의 징후가 있었지만 책임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늦장 대응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은 기사화되지 않는다. 

 ‘그래, 나만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 평생을 지나면서 갚아나가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것이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내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추자. 일본 영사관의 잘못된 정보에 기초했다는 것을 조금 더 알려야 한다. 내일 길림 신문에 한번 더 가보자.’

 중국 신문들은 이삼의 주장에 조금 더 힘을 싣는 분위기였다. 사실 학살의 원인이 조선인이라는 것보다는 일본 정부에 있다는 것이 그들의 국익에 보탬이 되겠지. 이삼이 그렇게 삶을 긍정하는 동안, 원동여관의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까 우동 가게에서 있었던 검은 양복과 중절모를 쓴 남자였다. 그는 이삼의 방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 방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낯선 남자는 슬며시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김이삼?”

 이삼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내 총을 탕탕 두 번 쏘았다. 두 방에 급사했으나, 그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 다섯 여방을 더 쐈다. 우레와 같은 총소리가 끝난 후, 조용해진 원동여관에는 창밖의 새소리만 요란스럽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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