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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평양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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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y 21. 2024

2. 기생 산월의 이야기

단편소설 <평양의 밤>

 “도쿄에서 음악을 배우고 돌아온 유학파 모던 걸 산월을 소개합니다!” 

 기생 산월이 무대에 오르자 요리점 홀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산월이 밝은 조명에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홀에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 속에서 담배 피는 사내들의 상기된 얼굴이 보였고 뒤편 방손님들도 산월의 노래를 듣기 위해 방문을 열어젖히고 이편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산월은 미소를 띠었다. 사실 도쿄에 간 것은 음악이 아니라 남자 때문이었지만 사람들은 그의 뻔한 이야기에 윤심덕의 후광을 얹었고 그것은 이 평양에서는 꽤 먹히는 이야기였다.     

 

 노래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 산월을 뽀이가 멈춰 세웠다. 잠깐 저쪽 테이블에 앉아 인사 좀 해달라는 것이다. 거절하려 하니까 그는 산월 손에 지폐를 쥐어줬다. 원래 기생에게 직접 돈을 주지 않지만 산월에게 손님 응대가 금지되었음을 알고 몰래 건네는 것이다. 평양에서 한참 이름을 날리고 있을 무렵, 산월은 한 남자와 도쿄로 도망쳤고 기성권번은 그녀의 무례를 잊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왔을 때 권번은 그녀에게 놀음을 금지하고 공연만 시켰다. 산월은 누가 볼 새라 얼른 돈을 손가방에 넣고 테이블에 걸어갔다. 

 테이블에 가니 남자 한 명이 악수를 건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산월이 테이블에 온 게 신이 났는지 의자를 뒤로 빼주면서까지 호들갑이었다. 자리에 앉고 둘러보니 남자는 총 네 명이었는데 모두 일본인이었다. 조명이 어두워 얼굴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꽤나 젊은 무리인 것 같았다. 

 “노래를 잘하던데 진짜 도쿄에서 음악을 배웠나?”

  남자 한 명이 담배를 건네며 일본어로 물었다. 

 “도쿄음대 성악과에 입학은 했는데 한 달도 못 채우고 돌아와 버렸어요.”

 “왜? 거기 명문이잖아.”

 “돈도 없고 사람들이 못살게 굴어서요.”

 “도쿄 사람들이?”

 산월은 그냥 미소만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도쿄 시절 그를 괴롭힌 건 일본인이 아니라 같은 조선인 유학생들이었다. 그들은 기생과 함께 유학을 하는 것은 자기들을 욕보이는 행위이며,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환락에 빠진 산월과 남자를 개탄”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이 ‘환락’이었나? 도쿄의 조그마한 셋방에서, 우에노 공원의 벤치에서, 청년 음악 연주회에서 우리는 그저 우리의 꿈을 좇았을 뿐이었는데. 밤에 커다란 돌멩이가 날아와 셋방 창문이 깨졌을 때, 놀란 주인 할머니가 도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냐며, 이래서 조선인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툴툴 거렸다. 

 “그럼 기생이 아닌 건가? 얘기 듣자하니 레코드 취입도 했다면서?”

 “기생 맞아요. 먹고 사려면 요리점 공연은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적은 유지하는 게 좋으니까요.”

 오랜만에 삐루를 마시니 취기가 올랐다. 손님들은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댔고 홀 안에는 연기로 가득했다. 산월은 그들에게 어떻게 아는 사이냐고 물었다.  

 “우린 모두 평양 고보 출신이야. 나랑 저 놈은 은행원이고, 얘는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고, 쟤는 만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잠깐 고향으로 내려온 거야.”

 만주에 다니는 남자가 자기 이름이 나오자 눈인사를 친다. 

 “만주 어디서 일하세요?”

 “하얼빈에서 만철 협력사로 일하고 있어.”

 “거긴 어때요?”

 “좋지. 자유롭고. 확실히 국제도시야. 백계 러시아인도 많아. 재밌는 건 거기에선 백인들도 우리 밑이야.”

 만주에서 온 남자의 말이 끝나자 장사꾼 남자가 갑자기 퍽 흥분하며 말한다. 

 “우리도 만주로 빨리 진출해야 돼. 이제 조선인들도 퍽 영리해져서 예전처럼 돈 벌어먹기도 쉽지 않다니까. 이제 조선만으로는 안 돼.” 

 그때 갑자기 건물 바깥에서 무언가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내다본 종업원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뒤이어 호기심이 동한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산월도 손님들을 따라 창문으로 갔다. 창밖 거리엔 사람들로 가득했다. 

 “축제인가?” 은행원 남자가 물었다.

 “아닐걸요.” 

 “그럼 만세 운동이라도 다시 일어난 건가?”

 창밖 거리에서 사내 네다섯 명이 어디선가 커다란 목봉을 들고 나오더니 우르르 달려가 맞은 편 동승루의 대문을 깨부쉈다. 문을 부순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 이어 한 청년의 머리채를 끌고 나왔다. 청년은 이미 많이 맞았는지 다리를 절면서 끌려왔고 사람들은 그를 거리 한 복판에 내동댕이치더니 엎드린 그의 등 뒤로 마구 몽둥이질을 시작했다. 

 “멍청하긴, 그런 정신 나간 조선인들이 아직도 있으려고. 저건 중국인들을 향한 폭동이야.”

 장사한다던 남자가 대답했다. 그제야 산월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모여 있는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알 듯했다. 며칠 전 만주에서 토지 문제로 중국 농민들 수백명이 조선 농민들을 공격하는 일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사실에 잔뜩 흥분해 있었던 것이다. 

 “그럼 우린 안전하겠군. 술이나 다시 먹자고.”

 일본인들은 종업원에게 청해 자리를 창가로 옮겼다. 그들은 양고기와 삼치구이를 먹었고 삐루와 사케를 마셨다. 기어코 누가 그 요리점에 불을 놓았는지 창밖에 불꽃이 일렁거렸다. 일본인 사내들은 일렁이는 불꽃을 배경 삼아 식사를 했다. 그것은 이상한 풍경이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그들은 마치 활동사진을 보는 것처럼 창밖을 구경만 했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거리가 위험해서요. 영업을 지금 시간 부로 종료하려고 합니다.”

 요리점 주인이 오더니 연신 굽신거리며 양해를 구했다. 화를 내며 반발하던 손님들이 음식값을 받지 않겠다는 주인의 말에 못 이긴 척 짐을 챙겼다. 산월은 일본인 손님들이 짐을 챙기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먼저 빠져나갔다. 손님들과 기생들이 한데 몰려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양복 입은 조선인 청년이 “왠지 신나지 않아요?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아요.”라고 지껄였다. 

 그렇게 왁자지껄 계단을 내려온 손님과 기생들은 성난 군중이 모여 있는 거리에 닿자마자 물에 탄 물감처럼 쏜살같이 흩어졌다. 산월도 홀로 잰걸음으로 걸었다. 대화정 거리로 나오니 거리는 완전 난장판이었다. 산월이 정거장에 서 있으니까 사람들은 그녀가 바보라도 되는 양 웃었다. “전차가 멈춘 지 꽤 됐다우.” 노인이 몽둥이를 내려놓고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결국 산월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그 많던 인력거꾼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포목점, 잡화점, 약국…. 중국인이 운영하는 모든 가게는 파괴됐다. 거리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녀가 가게에서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경관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걸까? 평양의 거리는 다시 조선인들의 것이었다.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거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시체도 몇 구 봤다. 골목과 가게 안쪽에 중국인 몇 명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를 제대로 본 것은 처음이라 산월은 속이 메스꺼웠다. 이 사람들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을까? 만주에 있는 중국인들이 우리 조선인들을 괴롭혔다고 어제까지 한 공간에서 살던 이웃들을 이렇게 무참히 죽여도 되나?   

 반파된 중국 잡화점에서 혼자 남겨진 아이를 보았다. 산월은 부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조센고와 와카리마센(조선말은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중국인이었다. 산월은 다시 일본말로 물었다. 아이는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 몰래 친구랑 서커스를 보고 왔는데, 돌아오니 집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다른 데 갈 곳도 없다고 했다.

 “아버지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겠죠……?”

 무슨 일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곧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잘 모르겠다. 지금은 거리가 위험하니까 일단 우리 집에 와서 잠깐 몸을 피하거라. 내일 아침에 경찰서에 데려다 줄 테니.”

 산월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아이는 손을 잡았다. 

 “당분간 말할 때는 중국말은 쓰지 마.”

 “네.” 

 아이가 손을 꽉 쥐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산월과 아이는 남산정에 있는 그의 집까지 걸었다. 아이의 이름은 오화생이었고 나이는 7~8살 정도였다. 산월은 단칸방에 그를 앉히고 숭늉을 끓였다. 여름 밤 후끈한 불 앞에 서 있으니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화생은 배가 고팠는지 숭늉을 허겁지겁 먹었다.

 밥을 먹고 나자 그들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산월은 화생의 얼굴을 살폈다. 바닥에 누운 아이의 얼굴은 침울했다. 화생의 잡화점은 어느 정도 실속 있는 가게 같았는데, 그 가족이 조선에 와서 이룬 모든 것이 하룻밤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아버지도 같이.

 “조선인들은 왜 이렇게 우릴 싫어할까요?”

 화생이 물었다. 산월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만주에서 중국 농민들이 우리 조선인들을 공격했거든. 그래서 평양 사람들이 많이 화가 났나봐.”

 “그건 핑계에요. 원래도 조선인들은 중국인을 싫어했어. 평소에 전차나 거리에서 조선인 애들이 우리한테 얼마나 시비 거는 줄 알아요?”

 화생이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

 “나는 조선인들이 싫어요.”

 여름밤의 더운 공기가 집 안으로 밀려왔다. 그래도 남자아이가 방에 있다고 산월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꼿꼿이 앉아 있었다. 아이는 어느 새 잠이 들었다. 산월은 창밖으로 평양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시내는 어느 정도 조용해진 듯했다. 평양 시내는 푸른색 어둠으로 잠겨 있었다.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작게 들려 긴가민가했는데 점차 확실해졌다. 순사의 호각 소리였다. 밖에 나가서 살펴보니 무장한 순사들 열댓 명이 동네를 지나는 중이었다. 산월은 서둘러 방으로 돌아가 화생을 깨웠다. 화생은 막 잠에 깨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화생아, 순사들이다. 일어나, 저 사람들 따라가면 경찰서에 갈 수 있을 거야. 그곳에 너희 아버지도 있을 수 있어.”

 화생은 곧 정신을 차렸다. 허겁지겁 신발은 신고 거리로 나서니 순사들이 벌써 뒷모습으로 보였다. 산월과 화생은 얼른 뛰어 순사 무리를 붙잡았다. 산월은 그쪽의 우두머리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순사는 산월의 말을 수첩에 적더니 그녀의 신상정보도 물었다. 

 “직업은?”

 “기생입니다.”

 순경은 ‘기생’이란 글자를 수첩에 적으면서 산월을 아래위로 훑었다. 그제야 산월은 아까 공연 때 입었던 의상을 그대로 입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순경은 히죽 웃더니, 알겠다고 화생을 데리고 가 보호하겠다고 했다. 그들이 떠나려고 할 때 화생이 나한테 뛰어오더니 내 손을 잡았다.  

 “누나도 같이 가주면 안 돼요?”

 화생이 절박한 눈으로 물었다. 그의 꽉 쥔 손에서 작고 슬픈 압력이 느껴졌다. 

 “나보다는 저 순사 아저씨들이랑 같이 가는 게 더 안전할 거야.”

 산월이 거절하자 화생은 원망하는 눈빛을 쏘더니 대답도 안 하고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화생은 가는 길에도 뒤돌아보지 않았고 다만 순사들이 이따금 뒤돌아보며 쑥덕거렸다.

 집 안으로 돌아가자 화생이 누워있었던 얇은 이부자리가 보였다. 거기에 화생이 있었던 작은 부피만큼 그의 흔적이 있었다. 산월이 그 자리에 누우니, 이부자리 밑에 뭔가 만져졌다. 구슬이었다. 다시 뛰어가 돌려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쩌면 이것을 돌려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산월은 화생이 부모를 찾을지 무척 궁금했다. 그리고 그가 계속 조선에 살 것인지도. 산월은 구슬을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에 비쳐보았다. 창밖에는 서서히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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