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과열된 것들은 때로 차갑게 식는다.
너무 뜨거운 커피를 마셔봤는가.
팔팔 끓는 100도씨의 물에 탄 믹스커피는 마시는 주체의 목울대를 뜨겁게 하거나 살을 데이게 만든다.
뿐만 아니다. 유리잔에 담을 경우 심하면 잔이 깨져 산산조각 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커피를 그대로 둔다면? 커피는 시간이 지나며 천천히 식어, 종국에 차가워 그 맛을 잃게 되어 버린다.
20대의 나는 부장님께 달려가 선배가 하는 일의 오류를 꼬집고 "제가 더 잘할 수 있어요. 제게 맡겨주세요"라고 말하는 패기 넘치는 사원이었다. 이를 테면 펄펄 끓는 100도씨의 커피였던 셈.
실제로 그렇게 선배에게서 빼앗은 몇몇의 일은 이직하는데 주요한 커리어가 되기도 했으니, 돌아보면 그 열정이 새삼 불필요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다.
그땐 소위 선배들이 '짬 때린다'고 말하는 잡일도 나는 나서서 잡았다. 누가 '뭐 할래?'라고 말하면 내용도 모른채 손을 들었다. "저 잘할 수 있어요", "저 그 분야에 관심있어요", "제가 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나날이 지속되다 보니 서류 인쇄 심부름은 오탈자 확인 작업으로, 오탈자 확인은 직접 보도자료를 작성할 수 있는 권한으로, 그 권한은 매거진 총괄 및 인터뷰어 권한으로, 종국엔 분기별 사내 책자 구성 전체를 담당하는 권한으로 확대됐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도 어린시절 내 기분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당시의 나는 정말이지 기뻤다. 돈을 벌며 일을 배울 수 있고 내 작품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이직은 성공적이었고, 전에 일하던 곳들, 잠깐 몸담았던 곳 모두에서 끊임없이 오퍼 연락이 왔다. 인정받는 것만 같았다.
30대가 되고 더 막중한 업무가 주어졌을 때, 나는 실무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걸 놓으면 내가 끝이 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아직 끓는 커피이고 싶었다. 그와 동시에 관리자로써, 신입사원들이 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일하지 않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돌아보면 적당히를 몰랐던 나는 후임들을 일적으로 괴롭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 샀고, 그들 중 일부에게 뒤에서 악성댓글로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공론화되면 그 아이들이 크게 다치게 될까봐 쉬쉬하고 넘어갔지만, 돌아보면 그들도 참 철이 없었구나 싶은 대목이다. 회사에서 만든 결과물에 악플이라니..
아무튼 아래에서 치이고 위에서 갈굼 당하면서 결국 실무까지 손에서 잃게 되니, 나의 온도는 어느 틈엔가 차갑게 식어내려갔다. 새 오퍼가 와도 실무를 할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나이가 들며 당연한 수순이라 자위하면서도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사람 관리를 하다 회사에서 가장 늦게 끝나는 날이 지속되던 나는, 20대의 열정이 이제는 꽁꽁 얼어 산산조각 나버렸음을 문득 깨달았다. 이걸 못 견디면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적당히를 하기가 참 어려웠다. 재벌집 딸도 아닌데 욕심만 참 많은 거였다.
때로 너무 과열된 것들은 차갑게 식는다. 그래서 적당히 좋아하는 것이 좋다고, 늘 그렇게 생각했지만. 또한 늘 그렇듯, 좋아하는 것에는 적당히가 안된다. 인생을 관통하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