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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Dec 26. 2021

한 번도 괜찮은 적 없다

갑상선암 수술을 한 후

 


 수술하고 처음으로 눈물이 터졌다. 보호자로 와 있었던 막내 말로는, 내가 회복실에서 나오면서 아파요 아파요,라고 외쳤지만, 정작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속으로 울었던 모양이다. 콧등이랑 수술 부위가 눈물과 동시에 시큰하게 뜨거워지는 걸 느끼면서 본능적으로 더 붓게 하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멈췄나 보다.


 수술 당일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그 속에서도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던 내 애타는 아우성과 혼자만의 처절한 사투였다. 내가 왜 이 수술을 했던가, 생명에 정말로 지장이 있었던 게 맞았나, 사실은 그냥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움직이지 못하는 몸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살기 위해 잠을 참고 최선을 다해 숨을 내뱉으면서 나는 목에 느껴지는 뜨끈한 이물감과 통증이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내 목에 칼을 댔고 신체 일부가 훼손됐다는 느낌을 실감하게 됐다.

 

 온몸을 휘감은 소변줄이며, 링거줄, 다리를 휘감는 에어 압박기도 모두 갑갑했다. 모두 다 벗어버리고 싶었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시간이 멈췄다고 느꼈고, 일분이 하루처럼 느껴지는 그런 밤이었다. 아, 이전에도 감각을 종종 느끼곤 했다. 너무도 끔찍한 밤들은 좀체 시간이 가질 않고 길다. 그리고 간신히 밝아오는 아침은 그다지 상쾌하진 않다.

 

 소변줄과 다리 압박기를 빼고,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죽도 먹고, 의사가 회진을 돌지 않아 외래를 갔다. 의사는 쿨했고, 저녁부턴 밥을 먹고, 많이 걸으라고 했다. 그게 그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고 나도 그 말을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의사들에게 괜찮다- 좋다, 라는 건 이전의 삶의 회복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삶을 연장시키는 것일까.


 나는 열심히 먹고 걸었다. 그냥 그렇게 괜찮아지고 싶었다. 생각보다 걷는 게 나쁘지 않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데는 걷는 게 제일 좋았다. 얼마 되지 않는 복도지만, 음악 리스트를 틀어놓고 거기에 집중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목은 여전히 이물감이 가득하고, 조이듯이 아팠으며 링거는 혈관을 터트려서 여기저기 멍이 들어 링거를 바꿔서 끼워도 소용이 없었다. 간호사는 내 혈관이 얇다고 울먹거리며 간신히 마지막 혈관을 찾아냈다. 링거 바늘을 뽑아낸 곳은 멍뿐만 아니라 퉁퉁 부은 소양감과 통증이 남아 있었다. 며칠 째 세수도 머리도 감지 못했다. 수건에 비눗물을 묻혀서 얼굴을 닦아내니 조금 안색이 나아지는 것 같다. 발도 간신히 씻고, 옷을 부탁해서 갈아입었다.

 

 목에 박힌 스테이플러를 빼고, 목 운동을 하라고 했다. 목을 뒤로 젖히면 상처가 벌어지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괜찮으니 운동을 하라 했다. 아니면 어깨도 아프고 상처가 유착된다고 했다. 유착이 무슨 말인지 당시는 몰라서 덜컥 겁이 났다. 하루에 열 번 하라고 하니 꾸준히 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당겨지는 느낌이 낯설다. 여전히 음식을 삼키거나 침을 삼킬 때는 피부가 움직이고 상처가 당겨지는 이물감이 강하게 목감기 걸렸을 때처럼 동일하다.

 운동하고 나니 그다음 날 목 통증이 더 심해졌다. 그래도 열심히 꾸준히 걸었다. 밥도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했고, 유제품을 먹지 못해 배변을 유도하기 위한 과일은 편의점에서 사다 먹었다. 배에 안간힘을 쓰며 더욱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오후에 시간이 나면 한 해를 돌아보기도 하고, 책 서너 장을 뒤지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 누워 팔에 꽂힌 링거의 통증에 시달리며 간신히 잠이 들다 다시 팔이 아파 깨곤 했다. 목이 아파 옆으로 돌아눕지 못한다. 수술 전날 잘 베고 잔 에어베개는 소용이 없게 됐다. 높은 베개를 벨 수가 없어서 병원용 낮은 베개에 의지해야 한다. 더 이상 집에서 쓰던 베개는 쓰지 못하게 되는 걸까. 상처는 아직 보지 않았지만, 정면에 한가운데에 꽤 길게 났다. 소설 웃는 남자의 입가에 걸린 상처처럼.


 그러다 문득 우울감이 어 걷기를 멈추고 가족에게 하소연을 했다. 가족이 조금 전엔 괜찮은  같더니  그러는지 적응이  된다고 하자 서운함이  번에 밀려왔다. 단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거였겠지만, 그 말이 트리거가 됐다. 대체 뭐가? 내가 언제 괜찮았던가? 괜찮았던 적이 나는  번도 없었다. 이해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터졌다. 좀처럼 눈물이 멈추지도 않았고, 서러움이 폭발했다. 괜찮냐는 끊임없는 말에 그렇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대답해야 하는 내 입장을 한번이라도 이해했다면, 그들은 괜찮냐고 물어선 안됐다. 매일 카톡으로 어떤지,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 나를 위로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묻고싶다. 무엇이 괜찮길 바라냐고, 괜찮을 수 있겠냐고.


 제발, 대체 뭐가 괜찮다는 말인가. 수술 당일의 통증은 내게 너무도 큰 공포로 남았고,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데. 특히 올해 나는 열심히 살아간  밖에 없는데 그것을 축하하기도 전에 암을 발견해 여성에게 치명적인  절개를 해야 했고, 말하는 직업의 위기에  있게 됐고, 이후 사후 관리에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절망스러운데. 팔에 남은 이런저런 멍들과 혈관통은 아직도 아프다.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 괜찮지 않은  내겐 너무도 무수히 많은데괜찮아지기 위해서 그저 노력했을 ,  번도 괜찮은 적이 없었다. 내가 울음을 터트리자 사과하며 같이 노력하자고 말했지만, 나는 노력하고 싶은 힘도 없다고 했다. 지금 내가 너와의 관계를 위해서 애쓸 에너지조차도 없고, 남을 돌볼 사력조차  수가 없다고. 나는 지금 너무도 약해져 있어서 스스로를 돌보는 것도 너무 버겁고, 돌봄이 너무도 필요하다고. 그것이 설령 이기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위해   있는 에너지 조차 없는 내가 어떤 외부세계에 에너지를 돌릴  있단 말인가. 지금은 연민의 방향을 내게 보내고, 돌봄을 받으면서 회복하고 싶을 . 이런 내가 과연 어떻게 괜찮을  있단 말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아프다는 소식을 전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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