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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May 26. 2023

휴가지에 버릴 물건을 가져간다는 것

폐허가 되어가는 발리카삭



조금 이르지만 여름휴가를 왔다. 운전 초보인 나로서는 부산에서 강원도까지 자동차로 끌고 갈 자신이 없더라. 그간 휴가가 아니라 혹독한 운전연수일 테니. 제주도를 경유해서 갈 생각도 해봤지만 교통비가 동남아 왕복 항공권보다 비쌌다. 그립다, 티웨이 부산 양양 여정. 이런저런 핑계로 강원도를 제치고 보홀로 정했다.


 보홀은 우리 부부에게 특별한 곳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여행을 했던 곳이기에 나름의 성취감도 있고, 아직까지도 우리 둘은 그 당시 발리카삭에서 본 바다와 물고기 친구들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서너 번을 더 방문하며 아름다운 곳에서 둘만의 결혼 약속도 했다.

 남편은 16년도 이후에 보홀을 찾는지라 기대가 컸고, 나는 19년도 이후 무언가가 바뀌길 기대했다. TV여행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보홀은 전과 달리 무척이나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휴가를 일찍 정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날씨운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태풍을 피할 확률을 높여야만 했다. 하지만 바다가 점점 뜨거워지는 게 실감되듯이, 실제로 태풍이 생겼다. 날씨운이 좋지 않은 내 징크스라고 하기엔 모두가 낯선 5월의 태풍이다.


 아무튼, 여행 준비를 하며 포털사이트의 카페에 다시 들어갔다. 혹시 내가 놓친 정보가 있나 싶어서 사람들의 준비물 목록을 뒤졌다. 세기도 힘들 만큼의 준비물 목록들을 보며, 과할 만큼 짐을 챙겼던 나의 첫 여행이 생각나 웃었다. 그중에 내가 의아했던 목록이 있다. 버릴 신발과 옷. 버릴 것을 왜 가져가는 거지? 돌아올 때 짐을 간소화하고 싶었던 걸까? (옷이 그렇게 많은가)


왜 그렇게 그 목록이 기시감이 들었던 것인지는 보홀에 오자마자 확실히 체감했다. 19년도에 과질소 상태라는 건 해변을 보고 알았다. 그러나 이제 헤난에서 아모리타로 가는 길목은 발을 디딜 곳조차 없이 해조류 잔해가 썩어가고 있었다. TV다큐에서 이런 것들이 하수를 버리는 곳에 많이 생긴다는 걸 들었는데 이 작은 비치에 이리도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리조트가 빼곡하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일까.


 최근 고래상어를 보는 게 유행이라 나도 고래상어를 볼까 했지만, 남편이 우스개 소리로 고래상어 좀 괴롭히지 마-라는 말에 마음을 접었다. 새우젓등을 뿌려서 모은다는데 들러붙은 사람들이 얼마나 귀찮을까.


 잔잔히 스노클링 하며 물고기나 보잔 말에 가게 된 발리카삭 바닷속은 10년 전과 달리 폐허에 가까웠다. 우리 부부는 수영을 못해서 동동 떠서 바다만 보고 싶었다. 바닷속 친구들이 궁금했고 저 미지 심해의 친구들에게 호기심이 있었다. 그러나 가이드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나름의 사명감이 있던 걸까. 과자를 뿌려서 고기를 모았다. 나는 그런 걸 원치 않았다. 내가 바란 건 사진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관망이었다. 산호 지대는 그나마 나았지만 발리카삭 앞바다는 차갑고, 어둡고, 산호들의 사체가 즐비했다. 거북이가 숨 쉬러 나오며 내게 돌진하자 나는 손대선 안된단 말에 기겁을 하고 어설픈 헤엄을 쳤다. 너무 울고 싶었던 나는 배 위로 올라갔다. 토할 것 같았다.


아! 산호가 다 죽어버렸구나.



 속이 울렁거린 건 단순히 파도 때문도, 전날 심한 배앓이 탓도 아니다. 너무도 깊은 슬픔이 밀려와 스스로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버릴 옷과 신발을 가져간다는 것이 계속 떠올랐다. 응당 동남아 이런 곳은 쓰레기를 버려도 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럼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는 걸까? 고작 인간의 편리함 때문일까? 언제까지 우리가 이 바다를 볼 수 있을까. 영문도 모른 채 괴로움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생물들은 어찌해야 하는 걸까. 선크림을 바를게 아니라 모자를 쓰고 긴 옷을 입거나, 아니면 그냥 몸을 태워야 한다. 해양 활동하면서 타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일설에 태풍에 산호가 죽어서요-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인간의 “편리”라는 잔혹한 이기심이 강력한 태풍도, 산호의 죽음도 만들어 버렸다.


 이젠 동남아에 오지 못할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얼마나 많이 환경파괴에 일조했을까. 내 오만과 허영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하염없이 부끄러워졌다.




@제발 버릴 물건을 가져가지 말고 쓰고 가져옵시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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