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비아 킴 Oct 11. 2023

언어의 교차로

 나는 언어가 세계를 모두 표현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우리의 언어는 여러 제약이 존재하며, 세계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특히나 그렇다. 이전에 고정된 관념으로 생각한 것들이 새로운 언어의 관점에서는 다르게 비춰질 때가 있어서 언어 자체의 습득보다 그 관념을 흡수하기가 더욱 어려울 때도 있다. 멀리가지 않아도 요즘 세대간의 언어 사이에서도 명백히 다른 세계가 반영되고 있어보인다.



 

 그러나 때론 언어가 내 세계의 전부라고 믿게 되는 때도 있다. 언어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을 놓친 채로 대화를 하고, 글을 쓰고, 생각을 한다. 어제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직장 동료와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던 중 불쾌한 감정이 솟구쳤다. 머릿속에서는 상대방의 언어가 내 의도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언어를 내 의도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불편한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조언을 구하던 중,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어느 정도 간극이 좁혀진다는 걸 느꼈다. 나는 상대방의 언어가 완전하지 않다 여겼으나, 내 언어도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 만큼 엉성했다. 


 내 언어로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다 보니, 엉성한 내 언어가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좀 더 언어를 해체시키고, 많은 텍스트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필요한데 나는 편협한 태도로 내 언어가 마치 세상의 전부이며, 기꺼이 상대가 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에피소드를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 소타자가 만들어내는 세상이 얼마나 왜곡됐는지 재확인했다. 모든 사람과 대화하면서 내가 상대방의 의도를 왜곡하기도 하고, 모든 대화를 곡해해서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기가 어려워서 대화 도중 눈물이 났다. 내가 세상에서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생각과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의미 없어졌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서글프고, 부끄러워 몹시 슬펐다. 

 

 나는 스스로가 상대방의 의도를 내 식으로 많이 해석한다는 걸 안다. 상상관계를 만드는 두 축의 벽이 너무도 두터운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소통이 무척이나 어렵다. 우리의 세계가 여전히 멀다고 느껴지고, 가까워졌다고 느낀 순간 다시 벼랑 끝에 서서 각자의 메아리로만 존재를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머릿속에 맴도는 언어를 어떤 식으로 나열해야 할지, 어떤 언어들로 표현해야 할지 무척이나 어렵다. 그리고 당신의 언어를 어떻게 내가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내가 몹시나 잘못된 것인지, 만약 이런 것이 병이라면 어떤 약을 써서라도 고치고 싶다. 


 Everything's Alright 노래에 '내 말은 항상 그 뜻을 잃어버린다'는 가사가 있다. 마음이 헛헛할 땐, 이렇게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해 주는 노래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이런 고뇌 또한 마음을 건강하고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갈등을 마주하는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