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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Dec 15. 2023

당신의 눈빛에 가장 마음에 드는 내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눈빛에 서렸던 독기가 조금은 빠져 있을까. 열차에 비치는 얼굴을 가만히 쳐다본다. 예쁘진 않은데 눈빛이 따뜻해. 다행이야. 마음에 들어. 무척이나.

 그래, 독기. 내겐 깊고 깊은 독기가 있었다. 선택지는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슴에 강한 독을 품어야만 했다. 그것이 나를 죽인다는 것을 알지만 되려 누군가가 나를 해칠까 두려웠다. 엄마는 독기는 남은 물론, 나도 죽이니, 부디 강한 사람이 되어라 했다. 엄마, 어쩔 수가 없어요. 이 독이 나를 살게 한 걸요. 독을 내려놓아도 내가 잘 살 수 있을까요? 나도 강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허나 독기는 결국 나도, 남도 다치게 했다. 상대가 누구든지 가슴에 깊은 상처와 흉터만을 남기는 이 독기를 어찌해야 하나. 엄마의 말처럼 우리 모두를 죽게 만들지 않는가. 원하지 않았지만,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곁에 두면 함께 죽을까 싶어 지레 겁먹고 말았다. 사람들 속에서 이방인처럼 맴돌면서 외로움 속에서 허덕인 지난날. 밤이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하던 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며 시나브로 파도에 잠식되던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나를 사랑할 수 없었고, 내게서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집 없고 겁많은 못난 소라게였다. 이 모든 걸 내가 만들어내질 않았는가.


 

 


 그러나 이런 못난 소라게를 사랑해 주는 당신을 만났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는데, 당신은 어째서 나를 사랑하나. 이런 불안과 의심마저 버리게 한 당신의 깊은 사랑은 내 깊이 잠식된 독기를 빼내고 든든한 집이 되어 주었다. 이제 내게도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라 손짓하는 당신과 온기로 가득한 집이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내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토록 갈구했던 모습이 보인다. 당신을 향한 온전한 사랑으로 가득 찬 내가, 어느 때 보다 따뜻한 눈빛을 한 내가, 당신을 위해 강해지고자 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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