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MZ를 심판하는 눈으로 보고 있는가
누가 대체 MZ라는 말을 만들어냈나. MZ인자와 아닌 자를 구분하기 위한 언어인가. 마치 이것은 불특정 다수를 나와 구분하기 위해 집단화하고, 대립과 갈등으로 불안을 고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많은 곳에서 말하는 ‘MZ와 소통해야 한다, 소통하고 싶다’에는 그들과 진실로 연결되기보다는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내게 종속시키고 굴복시키고자 하는 교묘한 마음이 숨어있다.
젊은이들을 MZ로 규정화하는 언어의 속내는 무엇인가. 저들이 나와 다르니 심판하고 처단하며, 교화시키고, 복종시킨 후 종속시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인간을 권력하에 도구로서 전락시키고자 하는 폭력의 온상이다.
MZ라는 집단을 분석하고 도구를 개발한다 한들, 처단하고자 하는 심판자의 시선으로는 결코 연결될 수 없다. 어쩌면 기성세대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며 연결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용어가 만들어낸 것은 소리 없는 폭력이 남발하는 전쟁이고, 처절한 참상일 뿐이다.
정말로 그들과 연결되길 원한다면, 오직 사랑이다. 바라는 것 없는 긍휼 한 사랑과 노력으로 가까스로 이해의 문턱에 닿을 수 있다. MZ는 집단으로서 심판받을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인격으로 존중받아 마땅한 이들이다.
자, 이제는 심판을 거두고 그들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관찰할 때다.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위해 자세히 살핀다면 당신에 눈에 비친 그 존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