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오면 읽어야지!' 다짐한 책이 있다. 그러다 시기를 놓쳤다는 이유로 다시 다음 해를 기약하기를 반복하면서 벌써 몇 년을 묵혔나 모른다. 고전소설 이디스 워튼의 <여름>이다. 제목만 여름일뿐 소설 속에는 사계절이 다 나온다. 그렇기에 꼭 여름에 읽어야 할 필요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에 꽤 얽매였나보다.
짙어지는 초록과 함께 공기가 뜨겁게 일렁이는 여름, 드디어 <여름>을 펼쳤다. 계절의 열정과 숨가쁨을 닮은 이야기였다. 산에서 태어나 후견인인 로열 씨의 손에서 자란 열여덟 살 채리티. 마을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는 채리티의 눈앞에 어느 날 도서관장의 조카이자 대도시 출신 건축가인 하니가 나타난다. 한여름 햇볕처럼 자신을 향해 다가온 외지인과 눈부신 사랑에 빠진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제목이 왜 여름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채리티 가슴이 처음 일렁이던 순간이 인상적인데, 무심하게 책의 위치를 묻다가 채리티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잠시 할 말을 잃은 하니의 모습에서 채리티는 난생 처음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이끌려 밀회를 즐긴다. 함께 있으면 여름밤 폭풍우도 두렵지 않은 그들이었다.
여름은 늘 짧다. 무르익을수록 금세 스러져버리는 계절처럼 채리티의 사랑도 뜨겁고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덧없었다. 산이라는 태생의 굴레와 마을이란 울타리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없음을 잔인하게 깨닫게 한다. 불타오른 뒤 시들어버리는 계절처럼, 그녀의 마음에도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채리티는 하니가 책의 위치를 물어볼 때 사서이면서도 책의 존재조차 몰랐던 것, 그리고 그가 무엇을 연구하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니와의 밀회가 깊어질수록 채리티는 신분과 계급 그리고 교육의 견고한 격차를 실감하며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것과 빼앗아가는 것은 명확하다. 채리티의 여름은 열정으로 피워낸 용기와 사랑이었다. 다만 너무 뜨거웠기에 너무 빨리 연소하고 사그라들었을뿐. 그래서 더 생생하게 자신을 증명했던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디스 워튼의 <여름>은 한여름의 태양처럼 강렬하고, 그만큼 쓰라린 성장의 기록이었다.
늘 사랑이란 혼란스럽고 비밀스러운 무엇이라고 생각해 온 채리티에게 하니는 사랑을 여름 공기처럼 밝고 싱그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 p.165
미국 문학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이 성장 소설의 주인공인 작품은 많지 않다. 본격적인 성장 소설에 속하는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도 <여름>이 출간되고 무려 사십여 년 뒤에나 세상에 나왔다. 게다가 성장의 요소로 여성의 성적 열망을 다룬 것은 20세기 초 본격 문학의 범주에서는 좀처럼 시도되지 않았던 하나의 ‘사건’이었다.
<여름>이 고전 반열에 올라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단지 문학사적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습과 전통에 맞서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는 솔직한 여성상을 성적 욕망이라고 소재를 이용해 세련되게 그려 냈기 때문이다. 채리티는 자신보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하니에게 휘둘리거나 유혹당하지 않는다. 남자의 달콤한 거짓 약속에 속아 사랑에 빠지는 인물도 아니다. 하니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조차 사랑 없는 결혼을 요구하느니 호기롭게 그에게 선택권을 넘긴다. 이렇듯 자신의 욕망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이를 성숙하게 표현하는 여성 캐릭터의 탄생은 당시 독자들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안겨 주었다.
이야기는 막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에 시작하여 눈보라가 치는 12월에 끝난다. 작품 설명에는 봄, 여름, 가을로 되어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여름, 가을, 겨울로 보는 게 정확하다. 순수하고 천진하기에 그들의 사랑은 위험했다. 이글대는 열정만 살아 있을 뿐 상대에 대한 배려는커녕 예의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수많은 말을 내뱉는 여름에서는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든다.
가려진 진실을 알게 되고 마음이 영그는 가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주인공과 함께 내 마음도 안도감을 찾게 된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기특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소설 곳곳에 이디스 워튼 작가의 삶이 꽤 많이 녹아 있다. 백여 년 전 시대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숨어있다. 이 여름이 가기 전에 <여름>에 다시 한 번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