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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씽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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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영화를 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케이팝을 소재로 한 판타지 영화일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묵직한 주제의식에 흠칫 놀랐다. 가드 내리고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순식간에 어퍼컷을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헌트릭스는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케이팝 걸그룹이다. 무대 위에서는 반짝이는 스타지만, 무대 밖에서는 악마를 사냥하는 전사이기도 하다. 이들의 임무는 골든 혼문이라는 신비한 보호막을 유지해 악마가 인류의 영혼을 훔치는 것을 막는 일이다.


그러다 새로운 위협이 등장한다. 악마 왕은, 사자 보이스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변장한 악마들을 내려 보낸다. 헌트릭스의 팬들을 유혹해 영혼을 훔친 뒤 혼문을 무너뜨리려는 계략이다.


헌트릭스 리더 루미는 전설적인 악마 사냥꾼인 어머니와 이름 모를 악마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루미는 자신의 몸에 드러나는 악마 문양이 수치스러워 늘 옷으로 감추고 산다. 그리고 늘 “나는 잘못 태어난 존재”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린다. 루미가 반인반마라는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적 장치가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감추고픈 자기만의 콤플렉스가 있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한 편의 성장 드라마 같다. 우리 주변에 혼재한 혼혈 정체성, 퀴어 정체성, 마음의 상처 등 스스로 숨기고 싶은 자아를 드러내는 과정에 대한 메시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영화에 집중하다 보니 그들의 싸움 자체보다도 자신의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가 더 눈에 들어왔다. 무대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두려움과 억압을 뚫고 나 자신을 증명하는 공간이었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곱씹다가 니콜라 윤의 소설 <에브리씽, 에브리씽>이 떠올랐다. 주인공 매디는 선천적으로 면역 체계가 약해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희귀병, 중증복합면역결핍증을 앓고 있다. 집 안에 갇혀 세상을 바라만 본다.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은 온라인과 유리창 너머뿐이다. 옆집으로 이사 온 소년 올리를 만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진다.


사랑과 자유를 갈망한 매디는 엄마 몰래 집을 벗어나 올리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바다와 세상을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여행 도중 매디가 쓰러지고, 결국 둘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의문을 품고 스스로 진실을 파헤친 끝에 사실 자신은 병에 걸린 적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엄마가 남편과 아들을 잃은 후, 매디마저 잃을까 두려워 병이 있다고 믿게 하고 집 안에 가둬 키운 것이었다.


집 안에서만 살아야 했던 매디는 ‘안전’이라는 이름의 굴레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올리를 만나면서 알게 된다. 완벽히 안전한 삶은 존재하지 않으며,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비로소 살아 있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녀가 집 밖으로 한 발 내딛는 장면은 단순한 사건을 넘어 억눌린 세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열망을 상징한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형식을 지녔지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두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삶을 살아갈 것인가?” 케이팝 아이돌들이 검을 들고 악마에 맞서는 순간, 매디가 창문을 넘어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우리는 그 대답을 목격한다. 그것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선택, 곧 자신으로 살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문학과 영화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도 종종 같은 곳에서 만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에브리씽, 에브리씽〉이 전하는 울림은 바로 거기에 있다. 안전만을 좇는 삶은 결국 우리를 침묵하게 만들지만,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된다.


결국 이 두 작품은 다른 언어로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은 주어진 틀 속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며 스스로 선택해 나가는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진실 말이다.


모든 것이 달라졌고 모든 것이 똑같았다. 나는 여전히 매디다. 올리는 여전히 올리다. 하지만 우리는 어딘가 그 이상이 되었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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