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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by 끌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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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열풍이다. 소설집이라고 하는데 놀랍게도 한국 작가가 쓴 책이라고 한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이다. 일본어에서 비롯된 혼모노는 한자로 본물(本物)이라 쓰고,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뜻이다. 가짜, 짝퉁은 니세모노(僞物)라고 한다. 책 제목을 일본어로 붙인 이유 해석은 독자의 몫이겠다.


단편 7개로 구성된 소설집에는 무속뿐만 아니라 예술, 인성, 관념 등에 관한 진짜와 짝퉁의 경계에 대한 물음들을 예리하게 제시한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혼모노>는 단순히 잘 쓰인 소설집의 차원을 넘어, 독자를 자신의 삶의 무대 위로 불러낸다. 읽는 동안 나는 문수와 함께 굿판에 서 있었고,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들의 불안과 열망을 고스란히 느꼈다.


표제작 <혼모노>에는 신기를 잃어 더 이상 신령을 부르지 못하는 가짜 박수무당 문수가 등장한다. 쉽게 말해 업계에서 퇴물 취급 받는 셈인데,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신령을 잃고도 칼춤을 추던 문수의 모습이다. 이 아저씨가 피를 흘리며 칼춤을 출 때 나는 순간 움찔했다. 아니, 신이 떠났는데 왜 저렇게 열심히 춤을 추는 거지?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우리도 다 그렇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말아먹고도 출근해야 하고, 소개팅 망했어도 밥값은 계산해야 한다.


그는 이미 무당으로서 가짜일지 모른다. 하지만 피를 흘리며 춤추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짜였다. 그것은 신령의 권위가 보증하는 진짜가 아니라, 스스로 끝까지 살아내려는 존재의 진정성에서 비롯된 진짜였다. 신을 잃었음에도, 아니 오히려 신을 잃었기 때문에 그는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다. 그 장면에서 삶을 지탱하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성해나 작가는 여기서 진짜란 사회적 규정이나 초월적 권위에 의해 보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통과 욕망, 그리고 연민 속에서 드러나는 것임을 예리하게 보여준다. 진짜란 단순히 가짜의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무게를 감당한 것, 혹은 자신의 목소리를 끝내 배반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진짜란 무엇인가, 가짜란 무엇인가”라는 양자적 구도 속에서 시작되지만, 단순히 이분법에 갇히지 않는다. 성해나 작가는 진짜와 가짜라는 모순적인 정체성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유동적인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서사는 단지 무속의 세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른 단편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나 <스무드> 같은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타트업, 덕질, 농촌 재생, 우호와 배신… 소재는 서로 다르지만, 인물들은 늘 무언가가 되려는 욕망과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 놓여 있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며 이상하게 내 안의 부족한 나를 계속 마주하게 됐다. 때로는 어설픈 열망으로, 때로는 남을 따라하며, 때로는 스스로를 가짜라고 자책했던 순간들 말이다.


성해나의 문장은 칼 같다. 짧고 단단하며, 날카롭고 차갑다. 서늘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영화적인 몰입감을 준다. 차가운 문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속에서, 인물들이 흔들리고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결말은 언제나 열린 채로 남아 있으며, 완결 대신 미결을 택한다. 그 미완의 결말이 오히려 내 안에서 더 큰 울림을 남긴다. 마치 “너라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겠느냐”라고 작가가 묻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묘하게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 가짜여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고, 심지어 아무 결론도 못 내리고 끝나도 괜찮다고 말해주니까. 결국 “진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칼럼니스트의 시선에서 <혼모노>는 '진짜가 되는 것'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이다. 우리는 SNS에서, 회사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혼모노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정작 그것이 우리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인간이 여전히 진짜에 도달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망을 놓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그 경계에서 치열하게 흔들리고, 자기 자신을 소진하더라도 끝내 무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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