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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꼬 May 27. 2023

호주 로드트립 part 01.

두 동양인을 겁먹게 한 소 떼 14마리


이직한 회사는 휴가에 매우 짠 회사다.

그런 내게 5월 초 황금 연휴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호주에 다녀오기 아주 충분한 기회.


오빠와 나는 예전부터 캠핑카로 호주 전역을 누비는 여행을 꿈꿔왔다. 그 첫 시작으로 브리즈번에서 시드니로 가는 동부 해안 경로를 택했다.



캠핑카는 좀 비쌌다.

하루에 36만원 정도? 비수기인데 이 정도 가격이라고? 잠시 동공이 흔들렸지만,

캠핑카 없이는 호주에 갈 이유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최고급 캠핑카 차량을 예약한거였더라... 어쩐지 너무 좋더라 껄껄...)


파워 대문자 P인 우리는 캠핑카와 비행기 예약을 끝내곤 그냥 무작정 여행 날짜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계획없이 로드 트립을 떠나도 괜찮다!

다만 마음 가는대로 정처없이 움직이다간, 우리처럼 브리즈번 언저리만 뱅뱅 돌아 (ㅎㅎ) 마지막 날 시드니 도착을 향해 5시간 풀 운전으로 애를 먹을 순 있다는거.



브리즈번에 도착한 후 차를 픽업하니 오후 3-4시가 다 되었다.

첫번째 행선지는 무게라 호수였다.

무게라 호수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해가 뉘엇뉘엇 진다.



마음이 급해졌다.

마침 호주의 홀리데이와 겹쳐 캠핑장 예약이 쉽지 않았고 아무 곳에나 차를 대고 자야 하는 상황인데,

이거 한국에서 노지 캠핑할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여기 저기에 위치한 '야생동물 출몰' 이라는 표지판이 왠지 모르게 으스스 하다.


누굴 탓하리오...


무게라 호수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았는데, 오빠와 나는 실랑이를 하기 시작한다.

'막상 호수에 갔는데 차 댈 곳 없는거 아녀?'

'아침에 갑자기 물이 차면?'

'아 그럴 일은 없나?'

'그럼 지금 차를 세워 말어...'


겁 많은 동양인 두 명은 일단 차를 세워보기로 했다.

석양이 너무 아름답게 지고 있었거든.

대자연 속 인간은 우리 둘 뿐인 지금 이 광경이 너무 생소하고 아름다워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래. 여기다. 오늘 우리가 누울 곳.



그렇게 룰루 랄라 저녁 먹을 채비를 하려고 고기를 꺼내는데 저 멀리서 뭔가 소리가 들린다.


음메...


음메....?

설마 하는 마음에 창을 바라본 순간,

오빠와 나는 또 한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분명 차를 세울 때만 해도 소 무리는 저 언덕 너머 멀리 있었는데? 그 무리들이 우리 차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총 14마리.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소들은 그저 호기심에 다가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냥 패닉 그 자체였지...


14마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듯한 소가 제일 먼저 다가와 후방 카메라를 햝기 시작했다.

머리로 살짝 살짝 밀어도 보고, 몸통도 부딪혀본다.

괜찮다는 신호를 준건지 갑자기 나머지 13마리도 모두 몰려와 차를 이리저리 햝는다.


조용한 호숫가를 한 순가에 헤집어 버린 두 동양인은 캠핑벤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가, 입을 틀어막았다가, 발을 동동 굴렀다가 이내 차를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그 와중에 오빠는 자꾸 유튜브에다 소몰이를 검색해보랜다 ㅋㅋ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만) 그 땐 폰을 창 밖으로 꺼내야 하네 마네부터 그럼 누가 꺼낼 것이네까지 꽤 긴박하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차 시동을 걸었더니 천만 다행으로 소들이 흥분하지 않고 슬슬 피한다. 줄행랑을 쳐서 도착한 호수 근처엔 너른 평지가 있었다.


상황이 좀 진정되고 나니,

갑자기 오빠가 아 유튜브 찍을걸 이런다.

나원참. 갑자기 센척을?

어이가 없다 ㅋㅋㅋㅋ



무게라 호수는 은하수가 보이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은하수가 아주 옅게지만 별들 사이로 흩뿌려져 보인다. 내 생에 가장 많은 별을 본 순간이었다.


우리는 대충 고기를 구워먹곤 따뜻한 커피를 타서 벤 밖으로 나왔다. 업체에서 제공해준 캠핑의자를 펴고 호수에 비친 별을 보고 있자니 동화 속에 들어 온 듯한 착각이 인다.


그 순간, 가만 있던 별 하나가 숭- 하고 떨어지며 불꽃 같은게 터졌다.

별똥별이다!

내 생에 첫 별똥별을 목격한거다!


별똥별을 등지고 있어 못 본 오빠는 그 뒤로 계속 하늘만 올려다 봤으나, 역시나 행운은 딱 한번 일어났다.


여기 진짜로 동화 속이구나.

이런 자연을 가까이서 누릴 수 있는 호주인들이 너무 부러워서 질투가 날 정도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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