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하는 강좌 클래스에서 알고 지내는 k언니와 점심으로 칼국수를 함께 먹게 되었다.
k언니는 치마를 즐겨 입으시는데 그 자태가 여성스러웠고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라든지, 옷차림에 어울리는 목걸이와 팔찌 등의 액세서리 착용이 그녀를 더 여성스럽게 보이게 한다. 전라도 사투리 억양이 남아있는 그녀의 말투는 정겹고 또 할 말이 있을 때는 기분 나쁘지 않게 직언하는 성격이 시원스러워 보였다. 그런 그녀의 성향이 마음에 들었고, 강의실에서 나와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약간의 친근감이 생겼다. 그녀는 크리스천이었고 세례명은 뭐라더라, 뭐라고 가르쳐줬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사실 누군가의 종교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럼에도 그녀가 크리스천이라는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놨던 것은 그녀의 얼굴 때문이었다. 동그랗고 살집이 있는 그녀의 얼굴이 말갛다. 눈에 총기와 선량함이 두루 묻어났다.
10년간 의류상점을 운영했다고 하는데, 손님 성격을 맞춰가며 10년이나 판매직을 했는데 그렇게 어린아이 같고 말간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니... 좀 놀랐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닳고 닳아서 성격이 동그랗게 된다지만, 닳고 닳는다는 말이 가끔은 세파에 찌들어 유들유들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매번 볼 때마다 달라지는 옷차림을 볼 땐 완전 패셔너블한 모습으로, 실시간으로 유행을 타는 (유들유들한 듯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얼굴이나 성격은 차분하고 포근한 나무처럼 보인다. 종교를 믿어서 그리 보이는가 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다. 그녀가 강좌를 듣는다고 하자 딸이 자신을 위해 각종 재료를 챙겨줬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던 것을 기억한다.
이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k언니에게 그 딸 이야기를 물어보다가 딸이 2명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재료 챙겨준 딸은 큰 딸이에요?"
별생각 없이 물어본 말에 k언니, 잠깐 침묵한다.
"큰 딸은 아파요. 챙겨준 건 작은 딸이에요."
뭔가 아픈 곳을 찌른 것 같아서 다른 말로 넘기고 싶었는데, 그래도 생판 딴 이야기를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디가 많이 아팠어요?"
이렇게 묻는 나는, k언니가 불편해하는 것 같으니, 언니의 대답을 들은 후 '나아질 수 있을 거예요.' 혹은 '나아졌다니 잘되었네요.'라는 정형화된 대답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꺼낼 참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 고열에 시달리고 난 후 정신에 장애가 생겼어요. 몸은 멀쩡해요. 평생 내가 데리고 살아야 하는 아이지요."
나는 내색을 안 하려고 했지만 좀 놀랐다. 안타깝다고 생각한 기색이 언니에게 읽혔을까?
"그래도 몸이 성하니까. 다른 문제는 아~무 것도 없어요. 몸 불편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런 사람들 경우보다 몸 건강하니 얼마나 좋아요."
나는 다른 화제를 꺼냈다. k언니가 남편분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입가가 방긋방긋,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애결혼하셨냐고 여쭸다.
언니는 "중매결혼했어요. 나도 내가 중매결혼할 줄은 몰랐는데 사람 좋아 보이고 해서....."
행복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남편분이 사업을 하신단다.
사업의 굴곡 때문에 기울었다 흥하고, 기울었다가 다시 흥하고 또다시 기울기를 반복, 엄청 고생했다고 하신다. 지금은 나쁘지 않을 정도라는데 여하튼 듣던 나는 다시 또 놀랐다.
이 분 겉보기엔 아이 같은 얼굴을 가지셨는데 뭐 이리 파란만장 고생 속에 사셨지??
자꾸 언니의 상처를 건드리는 것 같아서 더는 못 물어보겠더라. 물어봤다가 힘들었던 이야기가 나오면 물어본 내가 나쁜 사람같이 느껴질 것 같았다. 실상 언니는 담담하게 말하셨다. 나 혼자 과하게 신경 쓰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를 무방비로 들은 적이 별로 없었기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솔직한 게 최고지 싶었다. 나는 그냥 툭 말했다.
"되게 힘드셨을 때가 많으셨었네요. 나는 언니가 별 고생 안 하고 자식 다 키워놓으시고, 이제 사는데 여유가 많아서 슬슬 배우러 다니시고 여가를 즐기시는.... 뭐 그런 분 인 줄 알았어요. 언니의 말간 얼굴이 종교 때문인 줄 알았죠, 뭐."
"사람 치고 안 힘들게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다 살펴보면 한 두개쯤 힘든 일 없는 사람 없어요."
언니는 또 방긋 웃고 칼국수를 후루룩 드신다.
상식적으로 아는 이야긴데 k언니가 말씀하시니 뭔가가 진하게 우러나온다.
이날 나는 칼국수 국물과 함께 언니의 말씀도 후루룩 같이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