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6-049
1
우리 집 옥상에는 텃밭이 있다.
제법 공간이 널찍하고 모종의 결실력도 좋아서 올해 고추가 한가득 열렸다.
서울은 50여 일의 장마 기간이 도래했었고, 그 사이에 고추는 초록에서 붉은빛으로 하나하나 변하더니 어느 순간 거의 전부가 빨간 고추 상태로 매달려있었다.
얼른 거둬들여 말리는 것이 순서겠으나 비가 오는 도중에 수확하기도 어렵고 수확한다 해도 해가 나지 않으니 말리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2
어머니와 아버지는 대치하고 계셨다.
해가 나지 않는데 따놨다가 제대로 말리지 못하면 곰팡이가 나니 며칠 있다가 따야 한다.
아니다. 비가 오다 말다 하니 얼른 비 그쳤을 때 따서 거실에서라도 말려야 한다.
나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서울 촌사람, 두 분의 설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3
사흘 전 바쁘게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쉬는데 갑작스레 부모님이 외치셨다.
"옥상으로 올라와라."
영문도 모르고 올라갔는데
"어서 따라."
두 분이 합의에 이른 모양이셨다. 우리 세 사람은 여러 시간에 걸쳐 고추를 땄다.
세 식구가 그렇게 고추를 수확하고 있는데 저쪽 건물 옥상에서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쳐다보고 계셨다.
나는 별 의식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 쪽을 바라보며 그러신다.
"저 사람이 그랬다는 거지?"
어머니는 풋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누군데요? 뭐라고 했는데요?"
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대답하셨다.
"000이신데, 어제 마주쳤는데 '고추를 얼른 따셔야겠소.'라고 하잖아. 장마철 다 가도록 안 따니까 왜 안 따나 싶었나 봐."
4
남의 집 일에 간섭하는 거 딱 질색이다. 하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 주고 모종에 지지대 세워주고 애써서 키우는 걸 봐왔고 그러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붉게 익어가는 것까지 봤다.
그렇게 정성으로 익은 고추인데 주인이 수확의 때를 몰라서 헛수고가 될 것 같으니..... 참 내.. 이걸 말을 해줘야 할까, 말까?'
....라고 고민했을지도 모른다고 헤아려보면, 고맙지 뭔가.
근데 이건 너무 좋게 본 걸까?
한편으로는 남의 집 옥상텃밭의 고추 상태까지 알아볼 정도로 훑어봤다고 생각하면.... 이건 약간 과한 관심 같지만 말이다.
5
장마도 끝났고 볕이 쨍쨍하다.
고추는 옥상에 널어놓았다.
저쪽 옥상 집의 아저씨는 우리 집 고추들 일광욕하는 거 보고 계실까?
고추 아가씨들의 외침으로 마무리하겠다.
6
자꾸 쳐다보지 마세요!
우리들이 부끄러워 빨개졌잖아요! 그만 쳐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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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추가 맵다.
-한국 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