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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r 16. 2024

자잘스토리 8 - 011 - 브리또






1


냉동 브리또를 구입했다.

가격은 애매했다.

그냥 간식용으로는 비쌌으나 

맛있다고 친다면 적당한 가격이었다.

맛을 모르는 상태이므로 주문하기 애매했으나 일단 구입해 봤다.

1세트 2개입이었는데, 식구 수보다는 적어서 2세트를 구매해야 옳았겠다. 

그러나 말했듯 맛을 모르는 상태이므로

1세트만 구입했다.




2


해동시켜서 간식타임을 가졌다.

두 분에게 각각 드리되,

나는 그 중 1개에서 일부를 잘라내어,


"저는 맛만 볼게요."


...라고 하고는 1/5을 잘라내어 정말 맛만 봤다.

근데 맛있는 거다.

한 개를 다 맛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더 맛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3


드신 후, 어머니께서 브리또가 살짝 덜 뜨거웠다고 하시며 


"다음에는 20초 정도 전자레인지를 더 돌려야 겠다."


...라고 말씀하셨다.

맛이 없으면 얄짤없이 "못쓰겠다."라고 하시는 분이 '다음'을 기대하신다?

맛이 괜찮으셨나 보다.

맛을 제대로 못 본 나로서는 재구매의 구실이 생겼으므로 아싸!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2세트를 구입했다.

냉동실에 보관하며, 적당한 날 간식타임을 가지려고 때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점심을 챙겨드리면서,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져니야, 난 입맛 없어서 밥 안 먹을란다. 있잖니, 그거.

그거 삶아서, 데쳐와봐라."


나는 대번에 '그거'가 냉동 브리또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전자레인지에 해동 또는 뜨겁게 데운다는 표현이 잠시 떠오르지 않으셔서

브리또를 삶으라고, 데치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나는 웃음보가 터졌다.

브리또를 물에 삶으면 어찌 드시려고? ㅎㅎㅎ




4


더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의 눈치셨다.

내가 전자레인지에 브리또를 넣고 다이얼을 돌리기까지 

아버지의 시선이 내 손을 따라왔다.

다이얼을 돌리고 돌아서서 슬쩍 보니

아버지는 잠시 밥그릇의 쌀밥을 보시다가 수저를 드셨는데

잠시 머뭇머뭇하셨다.

오늘따라 내가 보기에도 밥알도 고슬고슬하지 않아 맛이 없어 보였고,

유독 찬이 없었다.

어쩐지 어머니가 입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찬이 없어서 간식을 드시겠다고 하신 것 같달까.

아버지도 찬이 없는 밥상이 내키지는 않으셨지만, 전형적인 한국인,

밥심으로 사시는 분이시라서 밥을 마다하실 수는 없었다.

모르겠다. 어쩌면 차려진 식탁을 물리고 애들이나 먹을 

서양 간식을 내어달라고 하시는 게 멋쩍으셨을 수도.


"밥을 먹어야지...."


...라고 굳이 다짐하듯 결심하듯 혼잣말 하시는 모습이 

아아.. 정말 밥이 맛없는데 드시는 것 같았다.




5


바빠서 얼른 브리또만 데워드리고 내방으로 돌아오며 나는 다시 웃었다.

어머니의 '삶아서...'라는 말씀에 웃음보가 터졌다가

아버지의 '밥 먹어야지...'라는 말씀에는 쓴 웃음이 나왔달까.




6


일평생 한식만 드시고 한식만 입맛에 맞으시다고 주장하시다가

색다른 음식에도 입맛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아신지는 한참들 되셨다.


당신들의 성실함은 노동, 운동, 휴식 시간을 잘 지키시는 것에서 드러나지만

나로서는 조금 이상스럽게 보이는....

식사도 성실하게? 한결같게,라고 해야 하나?

제시간 제때에 쌀밥을 먹어야 한다는... 정말 좀... 

이상스럽게 한결같은 룰을 지키시고 계셨다.

어머니는 그 계약도 아닌 식사에 대한 성실함을 깨부수신 것 같으나,

아버지는 전형적인 한국인, 결국 쌀밥 식사를 하시더라.




7


냉동 브리또가 3개 남았다.

내일쯤에 뜨끈하게 '데쳐서' 세 식구가 먹어야 겠다.

어머니와 나는 점심 대용이 될 텐데, 

아버지는 드시고도 쌀밥 식사를 하셔야 할 것이다.

그냥 웃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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