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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시청 기록을 싹 다 지웠다.
그리고 새로운 분야의 영상을 살펴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고리즘 작동에 의해서인지 어쩐지,
유튜브 메인 페이지가 온통 그 분야의 영상으로 들어찼다.
덕분에 잠시 잠깐의 흥미로 두세 번 봤던 채널의 영상은
메인 페이지에 더 이상 뜨지 않는다.
얼마나 속이 편한지 모르겠다.
잠시 잠깐의 흥미여서 봤는데 그런 영상들이 대중적이고
소비가 많이 되는지 진짜, 한 페이지의 80%를 채우며 노출되더라.
대신 쇼츠에 동물 영상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아서
주야장천 봤더니 그런 영상들이 주야장천 계속 뜬다.
실내에서 동물의 털과 냄새를 견디며 키울 자신이 없어서
왠지 그래서 키우지 못하는 보상심리로 계속 반려동물 영상을 보는 것 같다.
동물은 웬만하면 다 귀엽다. 보는 재미가 쏠쏠.
2
손톱이 찢어졌다.
면을 가르며 찢어지면서도 두께를 가르며 찢어지기도 해서
검지 윗부분 손톱이 살점에 겨우 붙어있다.
내 몸이고 내 손톱이지만 물건을 집을 때 압박이 가해지면
말할 수 없이 소름이 끼친다.
찢어져서 너무 얇은 나머지 손톱과 손톱 밑 살과 분리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저 갑작스러운 자극에 손톱이 팍 떨어져 나가서
피가 철철 나는 상황을 막아보고자 반창고를 붙였다.
좋은 점이 없어야 맞겠으나,
내가 고무장갑 끼고 하면 된다고 하는데도
어머니께서 설거지를 면제해 주셨다.
심지어 반창고를 교체할 때 연고를 가져와 발라주시길래, 내가,
"어무니 피 안 나요."
"발라 둬."
...막 이러시며 신경 써 주시는데, 그제야 알았다.
아, 내가 너무 오랜만에 아팠구나.
이렇게 어무니께 위로받는 맛이 있는데, 에잇.
나는 왜 연기력이 없을까? 평소에도 좀 아픈 척하면
울 어머니의 근심 걱정 관심 가족이 되어 보살핌을
열라 찬란하게 받을 텐데 말이지.
나는 앞으로 자기 계발로 '아파서 고통받는 걸 참는 딸' 연기를 익혀야겠다.
고통받는 연기는 이해 가는 데, 참는 연기는 뭐냐고?
음... 그게 더 절제미가 있는 높은 수준의 연기가 아닐까?
그래야 딸사랑 절절한 어머니의 애간장을 태우지 않을까?
음? 어쩐지... 어머니 애간장 태우려는... 막돼먹은 딸.... 같은데...
절대적으로 농담이다.
어머니께 나는,
"손톱 찢어졌다고 요렇게 대우(?) 해주시면,
쫌 더 아플 만도 할 거 같아요, 어무니."
...라고 농담하고는 웃었다.
내가 결코,
'손톱 찌저져써, 어무니 호오~해주쎄요...설거지 안 할래요.'
...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거.
그저, 다 큰 성인이어도 어머니의 애정을 받는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3
한결같은 내리사랑을 받는 것은 좋다.
같은 주제 영상들의 비슷한 유튜브 쎔네일을 보는 것은 지겹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좋고 지겹고, 혹은 행복하고 시시하고... 등등을 알면서,
내 내면의 감정이 즐거운지 아닌지는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직장 내 사람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하며 소통, 교류, 대화를 중요시하지 않던가?
그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 중요한 것은
자신의 외부 상황과 자신의 내면 감정이
어떤 식으로 교류하고, 반응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이 교류해야 하고, 상황과 감정이 서로 반응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커피를 내려서 나는 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시고,
어머니께는 달달하고 연한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드릴 생각이다.
상황에 감정을 반응시키려고 그러는 것이다.
생각과 행동을 교류시키려고 그러는 것이다.
이제 커피 내리러 간다.
좋은 주말 보내시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