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잘스토리 8 - 059 - 삥땅

by 배져니






1


아부지가 은행 앱을 다시 설치하셨는데, 갑자기 그러신다.


"되는지 안되는지, 너 나한테 10만 원 보내봐라."


돈 앞에서 냉정해야 한다.


"아부지 앱 되는지 안 되는지는 아부지가 보내보셔야 알죠,

저한테 30만 원 이체해 보세요, 그럼 바로 돌려드릴게요..... 29만 원을."


끝에 29만 원은 잘 안 들리게 쪼그맣게 말했다.

피차에 농담이었기에 은행 간의 거래는 없었지만,

만약 아버지가 진짜 10만 원이나 30만 원을 연습 삼아 보내셨다면,

나는 진심 1만 원을 삥땅 칠 마음이었음을 고백한다.


근데 진짜 농담이긴 했지만 어차피 농담이면

'1억 보내봐라.', '3억 보내 보세요.'라고

좀 통 크게 허세 부려볼 만도 하건만,

너무 현실 밀착적인 금액을,

10만 원, 30만 원을 부르니,

뭔가 더 웃음이 난달까?


그리고, 반성한다, 겨우 1만 원 삥땅치려한 나의 소심함을.

1만 원이 뭐냐, 만 원이.

적어도 2만 원은 해먹어야지, 쯥, 나의 소심함.. 개탄스럽다.

2만 원도 소심한 축인 거 아는데, 아무튼 나는 거기까지다.




2


힐링스톤 수집이 취미인지라 보석돌 하나를 구입했다.

예전부터 하나 있었으면 하는 보석돌이었는데,

그 힐링 스톤의 작용이라고 알려진 바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내가 진작에 이 종류의 돌을 사고 싶었던 것은

충분히 내 일상을 즐기고는 있지만,

가끔 색다른 변화가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또 선뜻 구입할 수 없었던 것은

변화는 다각적인 면에서 에너지 방향과 상태가

변곡 그래프를 그리기 때문에,

한 마디로 스트레스받을까 봐 피하고 싶어서였다.

더 적확한 표현으로는 '변화가 무서웠다'가 옳은 말이겠다.


그러나 이제는 미룰 수 없는 것 같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듯 변화를 찾아들어가려 한다.


보석돌의 이름은 라브라도라이트이다.

가지고 있다고만 해서 변화가 오는 건 아니겠지만,

때마침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상황이라,


'어라, 이런 식이면 부적보다 낫겠는걸.'


...라고 생각하며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다.

의미 붙이기 나름, 생각하기 나름, 해석하기 나름,

어제와 비교하면 별 변화는 없는 것 같은데,

근 5년을 두고 살피면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니깐.


음... 그럼... 다음엔 어떤 힐링스톤을 살까?

일어날 수 없는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1만 원 삥땅 쳤으면 보석돌 사는데 나름 보탬이 되었을 텐데, 흐음.




3


집에 주전부리가 넘쳐난다.


홍어회, 냉동 볶음밥, 약과, 곶감, 스낵, 쿠키, 흑맥주, 포카리, 컵라면, 그 밖에 과자...


정말 작정하고 주전부리만 섭취해도 하루 세 끼가 해결될 만큼 먹을 걸 많이 구입해 놨다.

부모님이 열심히 안 드신다.

나도 열심히 안 먹는다.


즐겁게 드시라고 과자도 맛있는 것만 사다 놓고, 약과도 개중에 좋은 걸로 구입해 놓고...

아무튼 신경을 엄청 썼단 말이다.


나는 잘 먹을 줄 알고, 맛있게 먹을 줄도 아는데, 맛있는 거 알아서 골라 먹을 수도 있지만,

안 그런다, 혹여 인원수 숫자만큼 안 남아서 모자라게 되면 부모님이 양보하실까 봐.


으휴, 주전부리 살 돈으로 힐링스톤을 샀으면 비싼 것도 몇 개 샀을 텐데.

성사되지 못할 일이긴 했지만, 만 원도 삥땅 쳤으면... 음...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튼, 쫌 그래.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잘스토리 8 - 058 - 반응, 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