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day 17
2019.10.17
까르델뉴엘라 리오삐꼬 Cardelnuela Riopico → 부르고스 Burgos
8시까지 늘어지게 잤다.
부르고스라는 큰 도시에 갈 계획이고 13km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일찍 출발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도 '혜수'라는 친구와 함께 출발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접했다.
아무래도 가을 산티아고는 비를 많이 만난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자주는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엔 까미노 페레그리노!
페레그리노는 순례자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 모두는 결국 인생의 순례자들이다.
각자만의 여정 속에서 늘 무언가를 깨닫고 배우며 걸어가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모든 페레그리노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나저나 조개 모양까지 너무 귀엽다.
노란색도.
화살표와 발바닥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은 까스따냐레스,
오른쪽은 비야프리아.
표지판의 화살표는 오른쪽으로 되어있길래 역시나 그냥 따라간다.
그렇게 30분쯤을 걸었을까.
공장지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불현듯 어제 '알베'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난 우리.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공장 밖에 볼 게 없다며 왼쪽으로 가라고 했었다.
나는
'이미 지나쳐왔는데, 어쩔 수 없지 뭐. 밀린 포스팅이나 쓰며 걸어야겠다.'라고 생각했는데,
혜수는 다시 돌아가 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뒤돌아가는 혜수의 뒷모습.
서로 '잘 가.'라며 인사하고서는 헤어졌다.
혜수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 안가 길 건너에 카페테리아가 보였다.
비도 내리고 쌀쌀해서,
또 아메리카노가 당기길래 잠시 휴식을 취했다.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자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알베' 말대로 주변은 계속해서 공장과 도로변이었다.
볼 풍경이 없으니 그저 핸드폰을 부여잡고 블로그에 밀린 일기를 쓰며 계속 걸었다.
포스팅하면서 걷다 보니,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이럴 수가!
버거킹이랑 맥도널드가 보인다.
'부르고스 진짜 대도시 맞구나!??'
순례길 여정 중에 처음 봤다.
맥도널드와 버거킹이 있는 마을이라니!
심지어 마을에 왔는데,
오늘 묵을 숙소는 여기서 40분이나 더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얼마나 큰 거야!'
도미노도 있고 파파존스도 있다!
프랜차이즈를 보고 놀라는 내가 웃기기도 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호스텔에서 묵어보기로 했다.
어제 '알베'가 더블 침대에 30유로인 호스텔을 하나 알려주었는데,
혜수랑 비용을 반씩 부담해서 같이 보내기로 했다.
일단 혜수가 도착하기 전까지 근처에서 간단하게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어느새 비도 그쳤다.
여기저기 기웃기웃 거리며 돌아다녀 보다가 한 카페에 들어왔다.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어 보인다.
역시 따뜻한 차 맛있어요.
그리고 배고팠는지 샌드위치는 흡입해버렸다..
샌드위치를 다 먹어갈 즈음, 혜수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다.
더 오래 걸릴 줄 알았던 터라 깜짝 놀랐다.
잠시 떨어져 있었을 뿐이었는데
그새 반가웠는지 서로 걸어왔던 길에 대해서 종알종알 수다를 실컷 떨었다.
와.
하늘이 점점 맑고 푸르러지고 있다.
우리는 먼저 호스텔에 체크인부터 하기로 했다.
호스텔에 쎄요(도장)도 있었다!
더블 침대고, 안타깝게도 화장실은 공용이다.
다만 방 안에 세면대가 하나 있긴 했다.
샤워를 살짝 고민했지만 혜수랑 짐만 내려놓고 그대로 마을 구경을 하러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 파스텔 건물 색깔 너무 예쁘다.
길거리가 온통 알록달록하니 사진에도 잘 담기고 참 예쁘다.
예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사진에 많이 담아버렸다.
대성당에 들어가서 쎄요도 찍어볼까 싶었는데,
가격이 7유로라길래,
음 그렇다면 나는 패스.
부르고스 대성당 뒤쪽으로 올라가면 성벽이랑 전망대가 있다고 말을 전해 들어서,
전망대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개방되어 있고
가격은 무료다.
위에서 마을이 다 보인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전망이 훨씬 더 좋아서 상쾌했다.
비가 오고 난 뒤라 하늘마저 이게 무슨 일이람.
혼자였다면 못 남겼을 사진들도,
순례길에서 만난 혜수 덕분에 오늘 인생 샷도 많이 얻게 되었다.
나중에 보니 전망대 같은 곳이 한 군데 더 있던 모양이다.
순례길을 혹여나 나중에 또 오게 된다면,
그땐 전망대에서 일몰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자가 있어서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내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많아진다는 것.
그만큼 이 날의 잔상들이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느낌이 참 좋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벽화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는 재미가 꽤 있다.
이건 꼭 이상한 나라의 아저씨 같네.
다시 대성당으로 내려오고 나니, 아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동상을 발견했다!
감히 지나쳐서는 안 되는 포토스폿 아닌가요?
슬슬 휴식이 필요한 것 같아서
대성당 앞에 있던 음식점에 들어갔다.
비바 라 뻬빠.
개인적으로 여긴 맛집으로 추천하고 싶다.
생과일 스무디를 시켰는데 진짜 왜 이렇게 맛있지!
그리고 남자 직원이 너무 귀엽게 생기셨다.
웃는 모습도 너무 귀여우셔서 힐링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혜수가 이런 거를 해보고 싶었다며
갑자기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
한참을 보면서 웃었다.
귀여운 면이 참 많다, 혜수는.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다.
좋은 인연을 만났음에 감사했고
나 또한 그녀가 언제나, 어디에서나 부엔 까미노 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부르고스 왜 이렇게 아름답지.
스무디 마시면서 포스팅이랑 유튜브 편집한다고 시간을 꽤 많이 잡아먹은 터라,
숙소에서 샤워하고 난 뒤에 다시 저녁 먹으러 나오기로 했다!
고새 날이 어두워졌다.
아까 스무디를 먹었던 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터라,
비바 라 뻬빠에 다시 들렸다.
샐러드를 꼭 시키는 나.
내 덕분에 샐러드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하는 혜수.
다만, 스페인 요리는 솔직히 너무 짜다.
다음부터는 꼭 소금을 빼 달라고 말해야겠다.
"씬살 씬살."
술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밤 10시가 되어버렸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2차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훅 올라왔지만, 호스텔로 귀가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뒤에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 편집과 블로그 포스팅 마무리를 하고 나니,
어느덧 자정이 지나버렸다.
그래도 내일은 체크아웃이 12시라서
마음 놓고 푹 잘 수 있었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