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걸크업 Jun 16. 2020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day4

모든 화살표는 이미 내 안에 있었다.


# 무겁게 시작할 것 없잖아.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아직 아침 샤워는 포기하지 못하겠다. 20년이 넘도록 새겨진 샤워 습관(매일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한다.)이 3일 만에 바뀌기는 무리지. 빠르게 물로만 샤워를 하고서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차근차근 짐을 챙겨서 넣는데, 왜 계속 짐이 늘어나는 것 같지?! 갑자기 한숨이 흘러나온다.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누구보다도 짐을 적게 챙겨 온 편이었다. 하지만 어제 처음으로 배낭을 짊어지고서 27km를 걸었더니, 하루 만에 어깨는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짐을 챙기면서 계속 갈등을 했다. 물건을 도네이션(기부)할 것인지에 대해서. 사실 그럴싸하게 기부라고 말하지만, 버리는 것이다. 가방을 메고 숙소를 나서자마자 확고해졌다. 


"버려버리자!!!!!!!!!"


사진상에 입고 있던 맨투맨과 크롭 반팔티, 그리고 순례길을 위해 사온 바람막이(아직 한 번도 안 입은..)를 기부했고 혹시 몰라 챙겨 왔던 아이브로우 펜슬과 아이라이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렇게 가방을 다시 고쳐 메고 걷기 시작하는데 정말 훨씬 가벼웠다! 고작 얼마 안 되는 무게가 빠진 것뿐인데도 이렇게나 체감이 달라지는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그래. 짐을 조금만 내려놓아도 시작하기가 한결 편해지는구나.'


버리기 아까워서,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이런저런 이유로 살면서 불필요함에도 굳이 쥐고 가려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지도 모른다. 많이 내려놓을 필요도 없다. 아주 조금만, 정말 조금만 비우면 되는 거였다. 


# 욕심의 배낭. 무겁게 계속 짊어지거나, 깨닫고 내려놓거나.

Zubiri (쑤비리) 안녕, 잘 있어.

6시 50분경 쑤비리 마을을 떠났다. 홀로 낯설고도 깜깜한 풍경을 걷고 있으니 문득 즐거움이 몰려왔다. 모두가 잠들어 정지된 듯한 곳에서 혼자만 생생하게 이 곳을 누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춤을 추고 싶었다. 배낭이 없었다면 탈춤이라도 췄을지 모른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니, 더 짙은 어둠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저 멀리 공사장 불빛 외에는 어둠 그 자체였다.

무슨 사진인가 싶겠지만, 마을을 벗어나니 깜깜 그 자체였다. 불빛 없이는 조금도 나아갈 수 없는 어둠 속이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그동안에도 해가 뜨기 전까지는 가로등 불빛이나 핸드폰 플래시에 의지해 길을 걸어왔다. 그래도 이 정도의 어둠은 처음이었다.


'손전등을 사 올걸 그랬나?'


사람들이 왜 따로 손전등을 사 오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지만, 또 금세 주변의 어둠에 적응이 되었다. 역시 없으면 없는 대로 사람은 적응하는 존재인가 보다. 손전등을 챙겨 왔다면 유용하게 사용했겠지만,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따로 챙겨 오지 않은 나의 행동에 만족했다. 


혹시나 순례길을 처음 준비 중인 분이 계시다면, '넣을까? 말까?' 망설여지는 물품은 과감하게 빼도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솔직히,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물품마저 빼버려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건 정말 필요하지!' 하는 소지품들로만 채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 물건 중에서도 여정 내내 거의 안 쓰는 것이 꼭 나오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무척이나 공감할 것이다. 순레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을 '욕심의 무게'라고 부른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거라며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혹은 잃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지나고 보면 무겁기만 했을 뿐 무의미했던 것들이 참 많다. 사실 이 세상에는 그런 욕심의 배낭들이 차고 넘친다. 그리고 너도 나도 어깨에 그런 배낭들을 수없이 경쟁하듯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삶이라는 여행길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서 사실 그 배낭들은 전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필요 없는 짐이 확실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어깨에 욕심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인지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그래서 나와의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색하고, 성찰하고, 비우고, 또 그런 나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시간들. 내가 이 길을 걷는 것 또한 그런 이유였고.


#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는 말이야, 결국 나인 것 같아.

1시간쯤 걸었을까. 서서히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10월 초의 스페인은 정말 더웠다. 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어느새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후리스를 벗어 허리춤에 묶고 있는데, 옆에서 오리 한 마리가 '꽥꽥'거린다. 

"안녕, 오리야."


문득 '아침 인사를 이렇게 반갑게 해 본 적이 얼마나 됐지?'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해맑은 미소와 함께 '안녕'이라는 반가움이 이리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다니. 이 곳에 온 뒤로 나는 좀 더 본래의 내 모습 그대로 있는 듯했다. 그 어떤 껍데기도 걸치지 않은 무방비 같은 상태랄까. 그러고 보면 늘 외모적으도, 심리적으로도 민낯 그대로인 나는 어딘가 부족한 상태이며, 언제든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의식적으로 늘 무언가의 가면을 쓰고자 했다. 사람들 앞에서 예의 바르고, 착하고, 예쁘고, 상냥하며, 똑똑하고 친절한, 그 어떤 타인으로부터도 책 잡히지 않을 그런 무언가의 가면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래야만 한다고 배웠으며, 나 또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타인을 향한 최고의 무기이자 방어벽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인 나는 오히려 너무나도 편안하고 자유로웠으며, 억지로 짓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내 안의 순수한 미소였다.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오픈된 상태임을 느꼈다. 무엇을 그토록이나 감춰야만 했던 것일까. 왜 그토록이나 수많은 껍데기를 갑옷 삼아 입어야만 했을까. 오히려 그런 가면들이 나를 모든 것들로부터 숨게 만들었으며, 도망 다니게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가면과 갑옷들은 타인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가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늘 부족하고 모자라며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존재라고, 자기혐오하기 위한 고문도구였을 뿐이었다. 쉽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조금씩 그 가면들을 벗어던지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되찾기 위해서. 


'누구와 있든, 어디에 있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자.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나를 알아주면 돼.'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존재가 최고의 무기인지도 모른다. 


# 그래,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원더풀이야!


목이 마르기도 하고, 잠시 쉬고 싶은 생각이 들던 참에 머물고 싶은 예쁜 Bar(바르)를 발견했다.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중간에 레스토랑이나 바르에서 머물었던 경우가 거의 없었다. 푸드 트럭 외에는 내 기억에 딱히 머물며 쉴 수 있는 가게들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4일 만에 홀로 바르에 발을 들이는 셈이었다. 괜히 두근두근 설레고 떨렸다. 설렜던 이유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여유와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고, 떨렸던 이유는...


'아...  스페인어로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지?'


순례길에서의 첫 바르 (Bar)

아, 참고로 스페인에서 Bar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bar가 아니었다. 간단한 요리도 먹을 수 있고, 커피나 음료, 술도 마실 수 있는 식당 분위기이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바르란 곳을 정말 매일매일 가게 된다. 특히 아침에 해가 뜨는 무렵, 바르에서 빵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 그게 얼마나 큰 행복감을 주는지...  앞의 풍경들은 또 얼마나 예쁜지... 언젠가 또다시 느껴보고 싶은 감동들이다. 


"우노(uno, 스페인어로 하나라는 뜻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점원이 2~3번 갸웃거리며 무어라 이야기했지만, 대충 맞는 듯하여 그저 "Si(씨)"라고 대답하며 맞다고 이야기했다. 나중에 받고 보니 뜨거운 커피에 얼음이 든 컵이 따로 두 잔이 나왔다. 소통이 안되었구나 생각하며 머쓱하게 속으로 '허허허' 웃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앉은 테이블 앞으로 엄청 맑은 시냇물이 :)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맑은 시냇물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파스텔톤의 하늘색이 펼쳐지고 있었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자 굉장히 동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Wow, georgeous! Wonderful! perfect!"


옆 테이블에서 외국인 순례자가 감탄을 내뱉었다.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자유롭게 마구 표현하는 그녀가 신기하면서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문화, 환경의 차이일까? 항상 정숙해야 하고, 얌전해야 하며,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배워왔는데, 정말 그런 말도 안 되는 관념은 도대체 누가 정하는 것일까? 그게 정말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저렇게 외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이 더 배가 되었는걸. 


즐거우면 즐겁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울고 웃는 것조차도 남의 눈치를 봐야 하며 옳지 못한 행동일까 봐 항상 자기 자신을 검열해야 하는 것들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욕구이자 표현이지 않은가.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념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나는 나대로 지금 이 순간을 원더풀 하게 즐기고 있었다. 맞다. 꼭 겉으로 내지르고 표현하지 않아도 내적으로 온전히 행복감을 즐기는 순간도 있는 것이다.


'그래, 정말 원더풀이야! 완전 공감!'


# 모든 길은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야.

오늘의 목적지 Pamplona(팜플로나)까지 11.3km

다시 출발했다. 목적지인 팜플로나까지 11k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이제 오늘 여정의 반을 왔다는 즐거움과 여전히 반이나 남았다는 지루함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습관적으로 표지판을 보면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언제 이렇게 거리 표지판을 찍어보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가방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물통에 물을 채우지 않고 출발하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엄청난 더위에 갈증이 나 죽는 줄 알았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빠르게 사진을 찍으며 어서 빨리 이 구간을 지나쳐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수없이 올라왔다. 

터널 끝은 항상 환한 빛이 기다리고 있다.

평소같았다면 '여긴 뭐야.' 하면서 피해갔을 길이 오늘의 나에게는 잠시동안의 그늘막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종종 만나게 되는 이 낙서가득한 터널은 나에게 또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잡았다. 누군가에게는 이 곳이 자신을 표현하기위한 또 하나의 스케치북임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 나에게는 '터널'이라는 단어 자체가 의미가 있다. 문득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800km의 전체 여정 중 터널 또한 목적지를 가기 위해그저 지나쳐야만 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분명 내가 발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이 터널도 끝이 있다. 인생에서 또 다시 터널을 만나게 된다면 그건 내가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과정일 뿐이지, 그 곳에 갇히기 위함이 아님을. 그 언제라도 묵묵하게 발걸음을 내딛어보리라. 


그나저나 오늘따라 왜 식수대마저 하나도 안 보이는거야!


입 안에 모든 수분이 사라진 것만 같았을 때,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풍경에 시선을 뺏기자 어느새 '목마름'이란 결핍이 내 안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다리 아래의 아름다운 풍경, 파란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들, 주황색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다리 끝에 다다르자 큰언니(순례길 첫 날 친해진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나에게 오른쪽 건물 안에 쎄요(도장)가 있음을 알려주셨다. 

다섯번째 쎄요를 찍는 순간

길을 걷다가 직접 쎄요를 찍어보는건 새로운 경험이라 신이 났다! 생각보다 잉크가 굉장히 흐렸지만 어느새 알록달록해진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을 보자 즐거움이 솟아났다. 그렇게 건물을 나서려는데 순례자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손짓을 하며) 쎄요, 쎄요!!"


외국인 아저씨에게 쎄요가 있다고 알려주자, 갑자기 그의 얼굴에 장난끼가 가득 번지기 시작했다. 다른 순례자들을 향해서 여기에 공짜 빵이 있다며 장난을 치는 것 같았고, 생각지도 못한 엉뚱하고도 아이같은 그의 모습에 마구 웃음이 났다. 아저씨와 나는 서로 한바탕 개구쟁이들처럼 웃어버렸다. (그리고 사실 아무도 반응을 안해줘서 그게 너무 웃겼다. 찰나였지만 아저씨의 머쓱한 표정을 나는 봤거든.ㅋㅋㅋ)

길을 다시 나섰다. 저 멀리 큰언니와 어제 저녁을 함께했던 동갑내기 친구, 그리고 외국인 순례자 친구가 셋이서 걸어가고 있는게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은 내 시야에서 금방 사라졌다. 나의 발걸음이 많이 느림을 새삼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맞아. 살면서 나는 항상 느리게 성장해가는 편이었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았다. 느린건 잘못된거라는 이 낡은 관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거야말로 잘못된 생각아닐까? 이왕 느린 발걸음인거 이 길을 더 천천히 즐기며 걸어가보기로 했다. 다시 한 번 내려놓고나니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내 여정의 목적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이 길을 즐기며 누리는 것임을 되새겨본다. 

오늘 목적지인 '팜플로나'는 순례길 여정 중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라고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큰 도시임을 깨닫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공원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펼쳐지는 풍경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이런 큰 공원을 곁에 두고 살고 있는 이 곳 사람들이 부러울만큼 공원이 정말 예뻤다. 다리를 건너고 있는 3명의 순례자가 눈에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그저 아름다운 그림 속의 한 풍경처럼 보였다.


'너무 아름답다. 나도 저 다리를 건너고 있을 때면 누군가의 눈에 아름다운 풍경 속 한 부분으로 비쳐질까?'


다리 위에 오르니 아래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멈춰서서 풍경을 감상하게 되었다. 이토록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건, 이 곳이 새롭기 때문일까? 이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만큼이나 이 곳을 아름답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익숙해지면 무뎌지기도 하니까. 어쩌면 지나쳐야하는 곳이기에 더 아름다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다. 해맑고 순수한 어린 아이들을 볼 때도 그렇고, 젊음이란 청춘도 그렇고, 현재 나의 삶도 그러겠지?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흘러보내야 하는 과정이기에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들을 마음껏 즐겨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중세시대 성벽같은 건물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문 뒤에는 이 곳을 병사들이 지키고 서 있고, 가로막혀 있던 거대한 문이 열리면 전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타고 달려나가는 장면을 상상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빨간 배낭을 맨 순례자 한 명이 이 곳을 지나가는데 문득 그가 전사처럼 보였다. 자기만의 무언가를 마음에 지니고서 이 긴 여정을 걸어가고 있을테지. 그가 멀어져가는 동안 우두커니 서서 잠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담담한 그의 발걸음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성문같은 곳을 지나고 나니 아름다운 마을이 펼쳐졌다. 알록달록한 것이 아까의 성벽과는 분위기가 정말 달랐다. 축제와 어울리는 분위기였고, 다시금 설레기 시작했다. 오늘의 긴 여정이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기에!


# 응원과 사랑은 하는만큼 커지는거구나.

마을 광장에서 즐거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학교 수업이 끝났는지 골목길에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즐거움과 호기심이 올라왔다. 이 곳에서 자라는 학생들은 어떤 문화와 환경을 접하고 있을까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종종 그들도 나에게 호기심의 눈빛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 아이들 중에선 놀리는 듯한 행동을 보인 친구도 있었고,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준 친구도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분명 그들의 마음과 에너지는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처음에 장난을 친 아이들을 마주했을 땐, 어떤 반응을 해야할 지 몰라 그저 '허허허' 웃으며, '아이는 아이네.'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아이라서, 혹은 놀림을 받은 듯한 상황에서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건가?-싶기도 했다. 하지만 언어와 상관없이 의도는 정확히 파악되었다. 다만, 그 화살이 내 안으로 조금도 파고들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걷는 내내 스스로 나를 응원하고 안아준 것들로 이미 내 안이 가득 차버려서, 타인의 그 어떤 화살도 나를 뚫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타인들이 나를 향해 던진 화살을 나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생각보다 전혀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화살을 던지며 내가 작아져버리기를 바랐던 그들 앞에서 나는 오히려 더 커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타인들의 화살에 더 깊은 상처를 내며 깊숙히 넣어버린건 내 손이란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이제는 그랬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다져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씨앗이기에, 그것 또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생명체는 햇빛만 보고는 살 수 없으니까.


횡단보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어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멈춰서서는 손을 흔들며 무어라 외쳐댔다. 그러자 따라서 다른 친구들도 손을 흔들었고, 나도 모르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라씨아스!(감사합니다.)"


사소한 행동일 수도 있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마음이었다. 꽤나 오래도록 그의 모습이 잔상으로 남게 되었다. 걸으면서 그 아이의 모습이 꽤나 멋졌음을 느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이지만, 낯선 이에게 진심으로 응원의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용기와 사랑이 필요한 일이 아닐까. 문득 그가 얼마나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갈까 싶은 생각마저 들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걸으면서 나 또한 응원과 사랑의 마음을 깊이 보냈다.  


이래서 사랑은 할수록 커진다고 하나보다. 그가 나에게 준 마음은 고스란히, 아니 더 크게 그에게 돌아갔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모든 화살표는 내 안에 있어.


어느새 걷다보니 팜플로나의 가장 핫한 곳을 지나쳐 온 기분이 들었다. 광장 안에는 알베르게들이 많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알베르게를 정해두고 걷지 않았던 탓에 '어디로 갈까.' 두리번 거리기만 하다가 아예 광장을 다 빠져나오게 되었다. 지도 어플을 켜보니, 광장 안이 아니라 바깥 쪽에 알베르게가 하나 있음을 발견했다. 성격상 지나쳐 온 곳을 다시 걸어가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홀로 떨어져 있는 알베르게에 마음이 끌려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나의 알베르게

생각보다 꽤 먼 기분이 들어서 후회하려던 찰나에 알베르게가 보였다. 그리고 예쁜 풍경에 마음이 쏙 뺏겼다. 할아버지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오늘 나의 침대를 배정받게 되었다. 

1층 오른쪽이 오늘 나의 안식처다.

어제 감옥같았던 곳과는 달리 창문 밖으로는 정원이 보이고, 빨간 침대들은 아늑해보이기까지 했다. 샤워까지 개운하게 마치고 나니 정말 날아갈 듯이 즐거워졌다. 가벼워진 컨디션을 가지고 팜플로나를 구경하러 나갔다.

유럽은 신기하게 낮잠 타임이 따로 있다고 한다. '씨에스타'라고 하던데, 정말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아버린다. 오후 2시에서 4~6시까지 거리가 한산해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볼 수 없어서 신기했다. 이렇게나 큰 도시 전체가 낮잠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마트에서 과일과 샐러드 등을 사와서 간단하게 배를 채웠다. 그리고 저녁에는 알베르게에서 주는 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알베르게에 나 혼자만이 동양인이라 저녁시간 동안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 ASMR을 들으며 홀로 나만의 사색시간을 가지는 색다른 경험도 하게 되었다. 군중 속에서 나만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이 꽤 즐거웠고 흥미로웠으며 조금은 외롭고 고독했다. 하지만 후회되지않는 시간이었다. 외로움과 고독 또한 나를 알아가는 소중한 재료임을 알고 있으니까. 

알베르게에 비치된 방명록.

모든 알베르게에는 방명록이 하나씩 있다. 많은 순례자들이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는 한다. 나도 4일 만에 처음으로 방명록에 글을 남기게 되었다. 짧은 한 줄이었지만 사인까지 할 정도로 4일동안 벅차게 깨달았던 감정이었고, 이 날의 메세지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나만의 중심이 되었고, 이제는 나를 이루는 한 문장이 되었다.


'2019.10.04. 모든 화살표는 자기 안에 있다.'



[2019. 10. 04.]

쑤비리 → 팜플로나 

(난이도 ★★, 총 21km)   


ᵀᴿᴬⱽᴱᴸᴴᴱᴱ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day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