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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섬진강댁 시골 텃밭일기#1


“옥수수 싹이 나오질 않아서 모종을 사다 심어야 할 거 같아. 풀도 뽑아 줘야 하는데...”

남편은 나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호하게 구시렁거립니다.

본가에 일이 생겨 갑자기 용인으로 올라가 2주에 1번 구례로 내려오게 되니 집에 오면 온통 일거리입니다.

텃밭농사, 모내기가 시작되는 논 관리에 에어비앤비 숙소까지.

그중에서도 남편의 제일 큰 걱정이 텃밭농사인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례로 내려와 시골살이를 10년을 해도 도시에서와 별반 다름없는 삶을 사는 나에게 텃밭을 맡기는 일이 안심이 될 턱이 없으니까요.


결혼을 하고 남편은 유난히 화분을 좋아하는 내가 식물과 친할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쁜 꽃 화분이나 허브 화분을 사서 집을 꾸미는 것은 좋아하지만, 물을 주는 걸 잊어버려 말려 죽이는 나를 농부의 아들인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답니다.

생각해 보니 결혼 전에는 꽃 화분을 키우는 건 엄마였고, 나는 가끔 화분 앞에 앉아 즐기는 사람이었더라고요. 결혼을 한 이후에는 늘 꽃들을 말려 죽이는 나를 대신해 남편이 화분관리를 했습니다.

시골살이를 시작한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은 나에게 풀 알레르기, 햇빛 알레르기, 등등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았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취약점을 다 가지고 있었더라고요. 결국 시골살이의 모든 야외 일들은 남편의 몫이었습니다.

“너는 시골에 살면서 얼굴이 서울 사는 나보다 하얗다~”

친구들이 농반 진반으로 하는 이야기처럼 나는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서 살고 있는 경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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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지 못하는 농사일을 시골에 산다고 꼭 해야 하나?

이미 주변이 자연이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만족스러운 삶인데. 나의 부족함에 대한 나만의 변명입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죠. 나는 사람을 사귈 때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자연과 친해지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있을 뿐입니다. 밀과 보리의 모양을 구분하고, 절기에 맞춰 밭과 논에 작물이 변해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무의 종류와 꽃의 이름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연과 가까워지는데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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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편이 본가에 올라가서도 마음이 무거울까 싶어 아침 일찍 책상에 앉지 않고 텃밭으로 나갑니다. 장갑을 끼고, 밀짚모자를 쓰고, 가끔 출몰하는 뱀은 없는지 확인을 합니다.

풀을 뽑고 옥수수 모종을 심기 시작합니다. 강아지들도 텃밭에 쪼그리고 앉은 내가 신기한지 주변을 돌며

놀자고 보채더니 한 자리씩 차지하고 늘어지게 잠을 잡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한쪽에 뽑아 놓은 풀들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풀이더니 하나하나 뽑으려고 보니 종류도 다양하네요.

옥수수랑 닮은 풀인 건지 옥수수인 건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은 일단 다 뽑아 한쪽으로 쌓아둡니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 2시간 정도의 밭 정리, 밭이 정리되는 것처럼 머릿속도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

잘하지는 못해도 하는 만큼은 티가 나서 기분이 좋은 아침입니다. 이 정도의 어설픔으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것 같은 깨끗한 텃밭과 시원한 바람, 적당히 쨍한 아침 햇살. 오늘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입니다.

내일은 왼손잡이인 나도 불편하지 않는 호미를 사러 장에 나가야겠습니다. 올해는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이

작년과는 다른 마음이 들 것 같네요. 손 한번 잡아본 사이처럼 왠지 친해진 느낌이 비가 안 오면 물을 줘야 할 거 같고, 풀이 자라면 해가 뜨거워지기 전 머리 깍듯 텃밭 정리를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 텃밭과 나 사이,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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