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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Apr 27. 2017

핏줄보다 시간,<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Like father, Like son, 2013

가족이란 단어만큼 상반된 감정을 주는 단어도 없다. 따듯함, 아늑함과 동시에 권태와 지겨움 같은 애증의 느낌이다. 핏줄로 이어진 혈연관계임에도 모두에게 가족 관계는 이렇다 저렇다 명확히 정의 내릴 만큼 단순히 아름답지만은 않다. 하지만 마치 규칙이라도 있는것마냥 '눈부신 햇살', '청량한 공기'처럼 '화목한 가정', '단란한 가족' 이란 단어는 당연한 듯, 한 쌍처럼 쓰여왔다. 그만큼 '가족' 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이미 화목한 곳이고, 그렇지 않다면 화목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단란해져야만 하는 그런 곳이었다. '엄하신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 슬하의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왔...' 다는 대한민국 자기소개의 대부분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정말 모든 가족은 화목할까. 이상화된 화목한 가족의 이미지에 많은 사람들은 괴리를 느끼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물론, 화목한 가족도 많겠지만, 가족이기에 화목한 것은 아니다. 가족의 존재가 화목과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행복의 객관적인 조건을 지닌 부유하고, 성격 좋고, 건강한 구성원들이 모여있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화목이 전제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 못한 가정들을 우리는 주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이 가족을 가족답게 할까


핏줄과 혈연관계가 '가족'이라는 조직의 끈끈한 유대와 교감을 보장하지 않는다. 행복과 건강한 가족의 관계는 결국 사랑에 기초한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다. 그것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절대적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결국 가족을 가족답게,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만드는 것은 핏줄보다 시간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구성은 흔한 막장 아침 드라마 같지만, 그것을 그려내는 방식과 태도는 따듯하고, 지극히 무덤덤하다. <원더풀 라이프>, <걸어도 걸어도>, <아무도 모른다>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특유의 절제미가 돋보인다.

평범한 중산층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 분)와 미도리(오노 마치코 분)는 6살 난 아들 케이타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살고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일 중심적인 료타에게 욕심도 재능도 그닥 없어 보이는 아들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료타 가족에게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닥친다. 케이타가 신생아였을 때, 병원에서 다른 아이와 바뀌었다는 것이다. 친자 확인 결과 케이타가 료타와 미도리의 아들이 아닌 것이 밝혀지면서, 료타는 혼란에 빠진다. 병원의 중재로 뒤바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유다이(릴리 프랭키 분)와 유카리(마키 요코 분) 그리고 진짜 료타의 아들인 류세이를 만나고, 결국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교환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처음엔 식사를 하고, 그다음엔 가족끼리 놀러 가고, 그리고는 아이들을 며칠씩 교환하여 지낸다. 그때까지도 료타는 아이를 교환하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6년 동안 키운 아이를 끝까지 키우는 것이 맞는지 결정하지 못한다.



몇 개월 시간이 지나고, 케이타 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류세이를 보면서 료타는 '역시 그랬었군'이라며, 능력 있는 부모 밑에서 케이타 같은 의지도, 재능도 없는 아이가 나왔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케이타가 크면 클수록 진짜 부모를 닮아갈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에 료타는 점차 흔들린다.

결국 료타는 교환을 결정한다. 그렇게 케이타는 유다이와 유카리의 집에, 류세이는 료타와 미도리의 집으로 간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드디어 진짜 가족이 모인 것이다. 하지만 핏줄이 모였다고 해서, 화목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케이타는 어찌어찌 유다이와 유카리의 집에서 적응하는듯하지만, 류세이는 상대적으로 엄격하고 딱딱한 료타와 미도리의 집에서 말썽을 피우며, 겉돌게 된다. 양쪽의 부모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진짜 아이를 사랑해주지만,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르게 쌓여온 사랑의 덮게가 얇지만은 않다. 류세이를 위해서 캠핑 도구도 사고, 시간을 내어 놀아주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류세이는 길러준 부모님을 떠올린다. 케이타도 잘 적응해 보이는듯하지만, 자신을 다른 집에 보내버린 료타와 미도리에게 받은 상처는 어쩔 수 없다.

료타가 류세이에게 '진짜 아빠는 나야'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류세이는 '가짜 아빠'인 유다이를 선택하고 그리워했다. 류세이에게 진짜 아빠는 낳아준 료타가 아닌 길러준 유다이였던 것이다.



료타는 조금씩 아버지가 되는 것과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회사 일로 내려간 연구소의 인공 숲에서 매미가 알을 낳아 유충이 부화할 때까지 15년이나 걸린다는 연구원과의 대화를 통해 가족의 관계에서 핏줄과 족보 또는 DNA 보다 함께한 시간의 길이와 그 시간 동안 쌓인 기억과 추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정적으로 케이타가 찍은 자신의 사진들을 보며, 료타는 무너진다. 료타의 흐느낌과 눈물은 시간과 그 길이만큼의 시선을

결코 단순히 핏줄만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의미한다. 결국 료타와 미도리는 케이타를 찾아가며, 영화는 끝난다

.


영화는 뒤바뀐 아이와 그로 인한 가족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아이가 뒤바뀐 상황은 가족이란 무엇이며,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극적인 가정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에 있어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계속해서 말한다. 생각해 보면, 가족이라는 관계의 시작인 부부 관계마저도 핏줄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다. 0촌이라는 촌수의 개념에서 가장 가까운 부부의 관계도 사실 남과 남의 만남이다. 그런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의 형태와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 핏줄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가족의 관계와 유대에 있어서 핏줄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보다 가족 구성원이 쌓아온 추억과 보내온 시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드러나지 않는 사랑이다.

영화를 보고 남은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함께한 시간의 길이와 밀도'가 곧 관계의 깊이를 말하며, 가족의 끈끈함과 비례한다. 지금껏 가족, 친구, 연인, 동료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이 '시간의 길이와 밀도'를 무시하며 살아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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