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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Jul 30. 2017

끔찍한 모성애, <마더>

Mother, 2009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 영화 중 최고를 꼽는다면 망설임 없이 <살인의 추억>을 꼽는다. 영화의 재미, 배우의 연기, 감독의 연출, 개인적인 체험과 경험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곳이 없는 그야말로 스릴러의 교과서 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 영화 중 가장 여운이 많이 남는 영화를 꼽는다면 2009년 나온 <마더>를 꼽고 싶다. 다른 영화 보다 더 뛰어난 연출과 서스펜스와 재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배우의 연기와 심연을 울리는 깊이에서는 분명 앞뒤로 만든 영화 보다 더 뛰어났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옥자>로 오랜만에 돌아온 기념으로 <마더>를 다시 보았다. 분명 한 번 본 영화임에도 처음 보는 장면과 스토리인 듯 마음 졸이며 보았다. 이것이 봉준호의 힘인가. 특히 김혜자 씨의 연기는 전원일기 뺨치게 좋았다. 앞으로 김혜자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전원일기의 인자한 어머니 보다 <마더>의 걱정과 안타까움을 표정에 안고 사는 엄마의 이미지가 더 강렬하게 떠오를 것 같다. 그만큼 영화 <마더>에서의 김혜자 씨의 연기는 쉽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을 건드리는 연기였다.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도준은(원빈 분) 약재상을 하는 엄마(김혜자 분)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모자란 만큼 도준을 걱정하고, 항상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싶어 한다. 도준은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며, 경찰서를 들락날락 거리며 엄마를 걱정시킨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에 들어가던 길에 우연히 한 소녀를 따라가게 된다. 다음 날 그 소녀는 죽은 채로 발견되고, 도준은 당시 소녀와 같이 길을 걸었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몰린다. 가뜩이나 사고 치는 아들이 걱정되고, 여기저기서 구박받는 아들이 불쌍하기만 했는데, 억울하게? 살인범으로까지 몰리게 되니 엄마는 어떻게든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다. 경찰은 손쉽게 사건을 종결시키고, 변호사는 아들을 구하는 데는 크게 관심 없고, 돈만 밝힌다. 결국 '아무도 믿지마. 엄마가 구해줄게' 라는 말을 남기고 아들을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진짜 범인을 찾아 나선다. 

아들의 억울한 누명?을 풀기 위한 엄마의 고군분투기라는 전형적인 범죄 드라마의 스토리와 플롯에도 불구하고, <마더>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봉준호의 손을 거쳤고, 영화 속 '마더'가 '김혜자'라는 상징적인 배우라는 점에 있다. 



영화 <마더>를 거치면서 봉준호 감독의 '봉테일'이라는 별명은 더 확실해졌다. 누군가 '관객의 숨 쉬는 타이밍까지 고려한 영화' 라고 극찬할 정도로 영화 속 서스펜스와 긴장감, 이야기 전개는 자연스러움을 넘어 촘촘하며, 꼼꼼하다. 영화 초반 작두질하며 아들 도준을 건너보는 장면은 무언가 일어날 것만 같은 뻔한 긴장감 속에서 엄마의 손가락이 아닌 아들의 교통사고라는 뻔하지 않은 사건으로 관객 보다 위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도준이 소녀를 우연히 뒤따라가는 골목 장면에서도 별다른 사건은 없었지만 숨죽이며 카메라의 앵글에 집중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클로즈업 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서 '마더'의 표정과 눈빛, 살 떨림은 대사와 맥락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낸다. 군더더기 없는 영화의 교본으로 꼽아도 될 정도로, 영화가 둔함도 오바도 없이 스릴러 장르로서 충실히 역할을 해낸다는 점에서 봉준호의 손을 거쳤다는 흔적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영화의 시작이 김혜자라는 배우로부터 시작했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마더> 속 김혜자는 대체불가하다. 현시대 한국 어머니의 상징으로 불리는 김혜자라는 배우에게는 모성애와 동시에 '한恨'과 형용할 수 없는 불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첫 장면 갈대 밭 위의 춤과 우는 듯 웃는 듯 알 수 없는 표정, 죽은 여고생의 장례식장에서 '사실은 우리 아들이 안그랬거든요' 라고 말할 때의 단호한 눈동자, 진태가 여자친구와 잠자리를 할 때 돌리는 수줍은 눈매, 도준이 범인임을 아는 고물상 할아버지를 죽일 때의 살기, 고물상에서 두고 온 침통을 돌려주는 도준을 바라볼 때의 망연자실한 표정 등. 한 작품 내 한 배우에게서 보기 어려운 다양한 모습들을 김혜자는 자연스럽고도 진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들을 지키기 위한 일에는 모성애 특유의 단호함과 강인함이 느껴지는 반면, 그 외의 것들에는 어설프고, 불안함이 묻어난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감옥에 갇힌 도준과 마더와의 면회 중 도준이 다섯 살 때 엄마가 자신에게 농약을 먹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말했을 때. 마더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친다. 엄마는 마치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고 말하기도 싫다는 듯 귀를 잡고 동시에 입을 막으며 절규한다. 삶이 힘들어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시간이 지나 자식이 그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때, 어미의 마음은 어떠할까. 잠시 생각해 봤으나, 도저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순간 어미의 반응은 정말 딱 '마더'의 외마디 비명과 같을 것 같다. 그 비명은 한 번 죽이려 했던 일에 대한 끔찍한 죄책감과 어떻게든 아들을 지켜내야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그 후 마더는 살인과 증거인멸까지 하며 아들을 지켜내고 만다.
 


두 번째 인상적인 장면은 도준 대신 진범으로 잡혀들어간 동팔이를 면회하는 장면이다. '엄마 없어?' 라고 묻고 흐느끼는 '마더'의 눈물과 떨림은 모성애의 역설에 대한 인간의 불완전한 반응이다. 자신의 자식 대신 억울하게 진범으로 몰린 동팔이에게 너는 엄마 없냐고 묻는 어미. 자식이 우선이나 그 엄마마저도 없는 동팔이에 대한 인간적 연민의 충돌은 모성애가 사랑의 가치 내에서도 상위를 차지하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좁고, 편협한지를 보여준다. 

인간 보편의 인간애가 넓고 얕은 사랑이라면 모성애는 좁고 깊은 사랑이다. 


모성애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것이 가장 깊고, 넓은 사랑으로 통칭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자식 외에는 가장 얕고, 좁은 사랑이기도 하다. 모성애라는 동전의 반대면에는 자식의 적敵을 향한 살기와 적대감이 공존한다. 오직 자식에게만 사랑을 베푸는 어미의 모성애는 그런 면에서 끔찍하다. 영화 <마더>는 우리가 때로 신성시하는 모성애라는 견고한 얼음장 위에 돌을 던져 균열을 낸다. 가장 깊기도 하지만 가장 좁은 사랑, 모성애. 우리가 '사랑'이라는 가치를 이야기할 때 상위에 두는 '모성애' 마저 상대적이며, 역설적이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은 '마더'의 춤사위로 수미쌍관을 이룬다. 삶의 애환과 한恨을 살풀이하는 듯한 몸짓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표정은 '모성애'라는 단어만큼이나 역설적이며, 모호하다. 그만큼 영화 <마더>는 보고 난 후 시원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불편한 진실과 진리를 알게 되어 버린 시원함과 찝찝함이 동시에 남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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