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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May 27. 2016

밑바닥의 죄책감, <인셉션>

inception, 2010

영화 인셉션을 보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다고 하지만, 내게는 풍성한 볼거리에 재미가 있었다. 꿈을 이용해 사람(타겟)의 무의식 속에 침투해 생각을 주입한다는 기발한 소재와 화려하고, 웅장한 화면은 많은 인터넷 흔한 영화 평에서 말하는 것처럼 영화팬들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두시간 반 가량 영화를 보면서,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인 코브(디카프리오)와 맬(꼬띨라르)이 나오는 장면들. 코브와 맬은 부부이지만, 림보상태에서 50년을 살아가고, 코브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맬과는 다르게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맬에게 인셉션을 걸어서 이곳은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생각을 심는다. 둘은 열차를 통해 림보에서 현실로 돌아왔지만 코브가 맬에게 인셉션을 걸었던 생각이 맬의 무의식속에 깊이 뿌리내려 결국 맬은 현실 조차 꿈으로 인식하고 자살하고 만다.



이후에 코브는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맬의 죽음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으로 꿈 속에서 조차 억압된 무의식으로 맬을 왜곡시킨다.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코브의 내면은 계속적으로 억압되어 뒤틀리고, 짓눌리면서 점점 더 맬을 현실과는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한다. 사랑했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불안해하고, 불안정했던 코브는 이러한 사실들을 결국에 림보, 즉, 가장 깊은 꿈의 밑바닥에 가서야 맬에게 말한다. 아내의 죽음이 코브 자신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한채 지내왔던 코브는 꿈의 밑바닥, 무의식의 밑바닥에 가서야 진실을 대면하고, 맬 역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코브의 죄책감이 무의식속에서 그를 괴롭히고(심지어 꿈 속의 꿈 속의 꿈에서 마저도), 죄책감으로 기억이 왜곡되고, 사랑이 증오가 되고, 점점 더 사실을 변형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코브의 현실에서의 애써 침착한 모습과 내면의 불안과 불안정, 무의식속에서의 기억의 왜곡의 모습이 바로 거울 속의 나였다.


죄책감이라고 인식하기도 이전에 이미 무의식에서 방어 작용을 시작하고, 없던 인물을 만들어내고, 상황을 왜곡하고, 혹은 죄책감 자체를 회피하려 했던 내 모습들이 공감각적으로 코브와 맬의 장면에서 느껴졌다. 인정하는 것 조차 두려워 외면하려 했던 아니 외면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고, 불완전한 내 모습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지고,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내가 짊어지고 있는 죄책감이, 그 살아있는 죄책감이 내가 날개짓 할 수 없게 억누르는 느낌이라기 보다, 죄책감이 내 무의식을 깨어 살아 숨쉬게 만드는 느낌인듯.


코브가 꿈의 바닥, 림보에 가서야 진실과 대면할 수 있었듯이 내 무의식의 깊숙한 곳에서 내 진심과 진실을 나 역시 대면할 수 있을까. 코브가 꿈 속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무의식의 바닥까지 내려갔듯이 그렇게 내려갈 수 있을까. 진실을 대면한 순간에, 진심을 대면한 순간에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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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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