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레이 Jan 20. 2017

혼란의 시간,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2012

10대 시절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장 잘 어울리는 감정과 정서는 무엇일까. 그 답은 그 시절을 겪은 이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인 느낌은 '혼란스러움'이 아닐까. 사람과 사건과 감정이 대부분 처음이고, 처음이라는 상황 자체가 어떤 의미이며, 그것이 앞으로 얼마나 내게 영향을 주는지 인지할 수 없는 시절이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혼란스럽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보기에 뒤죽박죽이 되어 어지럽고 질서가 없는 데가 있다' 라고 한다. 그만큼 안정적이지 못하고, 기준이 없는 unstable한 상태다. 그만큼 우리의 10대의 대부분은 불안정하고,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그것은 과거의 10대도, 앞으로의 10대를 맞이할 이들에게도 동일하다. 시간은 직선적이고, 인생은 단 한 번이며, 되돌릴 수 없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 혼란은 어떤 깊은 상처 때문일 수도 있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 오염되지 않고, 그 어떤 모양도 생겨지지 않은. 발자국 하나 없는 새하얀 눈 밭 위에는 작은 고양이 발자국도, 어질러 놓은 거친 발자국도 선명하게 새겨지기 마련이며, 그것은 쉽게 덮어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어떤 기억과 경험이든 그것은 새겨진 상처와 기억 그대로 굳어지게 되어, 어떤 모습으로든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10대에게 '혼란스러움'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영화와 소설 '월플라워'의 다양한 '혼란'으로 고통스러워하고, 때론 즐기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동시에 내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찰리와 샘, 패트릭과는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겪은 갈등과 감정의 첫 경험, 사랑의 감정과 서투른 관계, 소통의 경험들은 동일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시절, 자의식이 조금씩 자라나고, 그것이 세상과 부딪히는 그 시절엔 안정이라는 단어는 조금 어색했다.


사실 10대의 '혼란'이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본 시선이라는 점에서, 찰리와 내가 겪은 복잡한 감정들에 대해 당시에는 그것이 '혼란'인지도 잘 모른다. 그저 그런 당황스런 상황이 있고, 어색한 감정이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그 시절을 되돌아볼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것이 '혼란'이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시간이었다.' 는 것을.


굳이 주인공과 다른 점이 찾는다면, 찰리와 샘, 패트릭은 아직 10대, 20대 초반이지만, 나는 한참 전에 그 시절을 겪어버렸다는 것이다. 10대의 혼란을 이야기하는 20, 30대 그 이상의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겪고 난 과거의 기억을 되뇌는 것뿐이다. 정작 그 시절을 겪는 10대들은 그것이 '혼란' 인지, '혼돈' 인지, 복잡함인지, 불안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색하고 익숙지 않을 뿐이다. 찰리는 자신의 불안이 어디서 기원하는지, 왜 감정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지. 어떤 연유에서 적극적으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는지, 정작 알지 못한다. 10대라는 시절의 비극이자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10대가 겪는 '처음'이라는 시간과 시절의 무게와 가치가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크고 버겁다는 데 있다.



누구도 두 번 살아보는 특권을 누릴 수는 없지만, 경험이 쌓이고 나이를 먹으며, 자극에 무뎌지고, 어느 정도 상황과 감정을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10대의 시간은 모든 것이 생경한 설렘이자 불편함이기도 하다. 내가 지나고 있는 터널이 어떤 크기인지, 터널이 끝난 이후 그것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기쁘게 할지 알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안갯속 같은 10대의 시절은 사실 불확실성이 있었기에 미화되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경험하고 앞에 닥치는 감정과 상황들에 대해 속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 느껴버리고 힘겨워할 수밖에 없는 대신에, 그만큼 내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기대와 설렘이 동시에 있다. 그것을 우리는 때로는 풋풋함으로, 설렘으로, 꿈꿀 수 있는 나이로 우리는 미화하고, 아름답다 이야기한다.

지나온 시절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아련하고, 아릿하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와 소설 '월플라워'를 보며, 흐릿한 10대 시절이 떠올랐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은 그 시절이 잠시나마 그리웠다.  


사전을 보다가 '혼란스럽다'는 말의 또 다른 의미를 보고 놀랐다.

'보기에 뒤죽박죽이 되어 어지럽고 질서가 없는 데가 있다'(混亂)는 뜻 외에 '보기에 어른어른하는 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데가 있다는'(焜爛) 뜻도 있더라. 혼란스럽던 10대 시절이, 또 다른 의미로 '빛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절'로 느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일까. 혼란스러움은 어지러운 복잡한 상황이면서도 가능성과 불확실하기에 아름답고 눈부신 상태인지도 모른다.



이전 09화 밑바닥의 죄책감, <인셉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