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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 Nov 24. 2017

심야예찬,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2016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스스로를 착취하는 현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는 '성과사회'이며,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란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하고, 극단적으로 자살로까지 치닫는다는 거다. 또, 저자에 따르면, '성과사회'는 "~해서는 안된다", "~해야만 한다"는 규범적 명제가 지배하는 규율사회와 대비하여 한계가 없는 무한정의 "할 수 있음"이 지배하는 사회다. 근대까지만 해도, 도덕과 규칙, 규범을 지키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최선의 삶이었지만, 현대의 '성과사회'는 규범의 자리에 효율과 성과가 위치한다. 명령/금지/규칙의 자리를, 가능성/할 수 있음/동기부여가 차지한다. 성과사회에서는 능동적 행동과 사고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울타리 없는 자유와 가능성'의 사회와 시스템에 스스로 착취당하는 것이다. 현대의 대표적이면서 고질적인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같은 질병들은 이런 '성과사회'의 무한 가능성 토대에 생겨났다.

책의 말미에 그는 '성과사회',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 속에서 진부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해답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깊은 심심함'의 시간. 즉, '사색하는 삶'이다. '사색'을 통한 '성과사회'와 그로 인한 '피로사회'로부터의 도피.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한계돌파'와 '무한한 가능성'을 외치는 수많은 자기계발, 경영 서적들 사이에 한줄기 빛 같은 희망의 메세지와도 같다. 피로마저도 '간 때문이야'라고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몸'에게 책임을 전가? 하는 이 시대에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니었다'는 반전의 팩트를 제시하는 <피로사회>의 '사색'의 메세지는 섹시하고, 의미 있다.



내게 '깊은 심심함'의 시간은 곧 '밤'이다. 세상의 혈기와 열기, 소음이 잦아들고, 땅과 하늘도 잠자는 늦고 깊은 밤에야 비로소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되고 본연의 내가 된다. 무자극의 진공 속에서 무언가로 채워야만 하는 욕구마저도 잠재울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그제야 하루의 나를, 한 해의 나를, 지난날의 내 모습을 돌아본다. 어제의 일 마저도 아득한 옛 기억마냥 추억처럼 스치면, 나는 결국 '지금'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이 안쓰럽고, 서글퍼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스라한 서글픈 느낌에 나는 위로받는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에 아등바등 살아가는 낮에 받은 상처를 '혼자'가 된 밤이 되어서야 치료하고, 환부를 온기로 감싼다.

'신성함'과 '비굴함'을 줄타기하는 밥벌이의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부터, '깊은 심심함'의 '밤'은 줄어들었다. '현실 속 진짜 혼자의 시간'이 '밤'인 내게 그것은 어쩌면 진짜 나를 점점 잃어버리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자기를 착취하는 '피로사회'에서 그것을 이겨내기 위한 해답을 실천하지 못한다라기 보다, '깊은 심심함'을 느낄 '밤'의 시간마저도 빼앗겨,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는 정체성의 망각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일 보다 더 끔찍하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낮'에게는 환영받지만, '밤'과는 상극이다. 이른 취침이 마치 전장에 나가기 위해 비축하는 휴식의 느낌이라면, 늦은 밤 나만의 시간은 무거운 갑옷과 무기를 내려놓는 무장해제의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시퍼런 달이 뜬'밤'이, 뜨거운 태양이 뜬 '낮' 보다 따듯하고, 온기 있다.


<밤이 선생이다>의 저자 황현산도 깊은 밤(심야)을 예찬한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 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아직까지, 밤이 선생과 같이 무언갈 가르쳐주고 깨닫게 해주지는 않았지만, '밤'은 내게 '위로'이자, '진짜 나'가 되는 시간이다. 조직에 '매인 몸'이 된 순간부터 평일은 꿈도 못 꾸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내게 위로를 주고, 나를 나답게 해준 '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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