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재영 Aug 27. 2022

재미있는 바둑

세상 일이 다 그렇지요

요새 바둑에 빠져 산다. 아주 어릴  바둑학원에 다녔다.  다섯  쯤이었나. 그때는 꽤나 둔다는 소리를 들었던  같은데, 지금은  까먹었다. 활로가 모두 막히면 죽는다는 정도의 간단한 규칙만 안다.


그런데 이런 초보가 프로기사들 대국은 챙겨본다. 신진서 대 커제, 신진서 대 변상일을 보면서, 이런 게 예술이구나... 하고 감탄한다. 물론 왜 감탄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멋지다. 나 같으면 돌 한 개라도 더 따먹으려고 눈에 불을 켤 텐데. 다 잡은 돌도 놔주는 듯 보이고, 갑자기 여기 뒀다 저기 뒀다 하다보면, 어느새 누구 한 쪽의 돌이 잔뜩 잡혀 있다. 이게 예술이 아니면 뭔가 싶다.


승부욕에 불타던 어릴적, 대국의 추억이 떠오른다. 동네에서 유망주 소리를 듣던 내가 바둑을 그만둔 이유는 동네 형 한 명 때문이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라고 빈 소리를 하며 경기를 시작했다. 내가 어리니까 흑돌, 형은 형이니까 백돌. 바둑은 구석부터 두는 법이라던 사범님의 말을 따라 나는 화점부터 뒀다. 아니 그런데 이놈의 형이 갑자기 정중앙에 때려박는 게 아닌가. '어라-' 싶으면서도 사범님을 믿고 차근차근 뒀다. 형은 한 줄로 길게 돌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화점정석은 무의미했다. 내가 지은 집은 구석에 초가집 겨우 두 집. 형은 어느새 바둑판에 삼팔선을 그어가고, 내가 넘보지 못한 저쪽 절반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친 대감집으로 보였다. 이러다 절반을 꽁으로 떼이겠다 싶어서 중앙 전투에 참전. 십수 개의 돌과 한두 개의 돌은 싸움이 안 됐다. 다시 후퇴.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심한데, 다시 참전. 외려 흠씬 두들겨 맞고 형의 바둑통 뚜껑에 내 피같은 돌 두세 개를 뜯겼다. 결국 울면서 포기. '나 안 해!' 나는 화가나서 들고 있던 돌을 글자 그대로 바둑통에 던졌다.


그날로 나는 바둑에 흥미를 잃었다...가 요새 다시 활활 불태우고 있다. 그때 그 대국만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부끄럽기도 하고, 실력보다 욕심만 많던 어린 아이가 귀엽기도 하다.


이제는 승급시험도 없고, 이기고 싶어 이를 가는 라이벌도 없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오히려 바둑을 즐기고 있다. 출퇴근할 때 틈틈이 포석 강의를 듣고, 설거지할 때 눈앞에 세계정상급 프로기사들의 대국을 틀어놓는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내 수준에 맞춰 상대도 해준다. 몇몇 패턴이 눈에 익으면 동네 기원에 가서 할아버지들이랑 둬봐야지.


모든 사람은 출발선이 다르다. 누구는 재능을 타고나고, 누구는 바둑학원을 일찍부터 다닌다. 누구는 바둑을 즐기는 부모 어깨 너머에서 자연스레 익힌다. 그리고 누구는 생전 처음 바둑을 시작해본다.


실력이 없는데 자꾸만 이기려고 하니 꼼수를 찾는다. 실제로 꼼수가 통하기도 한다. 정석대로 살던 몇몇 사람들이 불안해진다. 어떤 이는 꼼수로 갈아타고, 어떤 이는 그대로 산다. 생각보다 꼼수는 효율이 좋아서, 들인 시간 대비 성과가 좋다. 정석을 고수하던 이들은 번번이 깨지고, 이제는 꼼수를 안 쓰면 바보라 불리는 분위기가 생긴다. 우직한 건지 우둔한 건지, 그래도 어떤 이는 정석을 파고든다.


자꾸 깨져 봐야 배운다. 꼼수는 꼼수였음을, 최후의 승자는 정석이었음을, 깨지다 보면 배운다. 결국 기본은 기본인 이유가 있다. 정석은 역사 속 무수히 많은 선배들이 남긴 '꼼수와의 전투'다. 포석과 행마, 기보 외우기를 성실히 해나가면 꼼수가 보인다. 그러다 한때- 일격을 날리는 거다. 나한테 매번 지던 놈이 나를 이긴다? 그런데 내 수를 손바닥 보듯 다 안다? 이제 꼼수가 정석을 결코 이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바둑은 책읽기와도 비슷할까? 책 읽는 데에는 수고가 든다. 그것도 아주 많이 든다. 하지만 표지만 보고도, 목차만 보고도, 인터넷에 널린 요약본만 보고도, 쉽게 풀어쓴 2차 저작만 보고도 남 앞에서 아는 체를 할 수 있다. 수고 대비 명성의 효율이 쏠쏠하다. 괜히 원전을 펼치면, 1차 저작 번역본을 펼치면 힘이 든다. 이해도 잘 안 되고 진도도 잘 안 나간다.


그래도 꾸준히 두들겨 맞아야 한다. 저자에게 두들겨 맞아야 한다. 사람들 앞에서 '그건 잘 모른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야 한다. 아는 체를 하는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테다. '아, 그건 알아요. 이것 읽어보세요.'


가만 보면, 세상 일이 매한가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플라톤과 페미니즘과 통계와 능력주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