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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Apr 02. 2024

제주욕망일지 1

my 1st novel - 소설입니다.

그를 보는 건 여전히 짜증이 난다.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것이 없다. 사과도 없다. 갑질의 잦은 희생자들인 조연출이나 비서라면 그나마 월급이라도 받을 텐데 같은 갑질을 당하면서도 나에겐 무한 떠넘겨진 일거리와 책임만 있다. 이 시골바닥에 무슨 집을 짓는다고 계약을 해서는 잘 알지도 못한 사람과 계약 같지도 않은 계약을 하고 결국은 사기를 당했다. 뒷설거지는 당연히 내 몫으로 넘어오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었을까?


나이가 많아서일까? 나보다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뭔가에 씌었다. 결혼하고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헤어질 용기가 없었다. 나는 헛똑똑이였다. 어찌어찌 함께 한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혼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이 나라에서 제일 유명하고 아름다운 섬 한구석에 나는 이런 복잡한 사정을 안고 제2의 고향이라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소송의 피고인으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와야만 했고 시간은 대도시와 공평하게 흘러 이제 십여 년이 되어간다.


이 촌동네는 근처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뉴스로 갑자기 몇 만 원이던 땅값이 백만 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이 없다. 그래봤자 집을 짓는다고 사기당한 돈이나 오른 돈이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에 묘지와 산길의 초입이던 땅이라 몹시 습했다. 발뒤꿈치를 시작으로 갖은 염증이 몰려왔다. 동남아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가 동남아는 습기가 많아 여자들이 살기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1층은 띄우고 2층부터 집을 짓는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살아보니 습기는 정말 몸에 좋지 않았다. 사십 대 후반에 관절염이 시작되었다. 손끝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다 팔꿈치가 발바닥이 어깨가 온몸이 돌아가면서 아팠다. 가이드의 말이 맞았다. 여기는 사람이 살 곳이 아니다. 햇살 반듯한 곳을 두고 굳이 이런 땅에 집을 짓는 자들과 그들과 계약한 사람들 모두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함께 탄 형국이니 이들과의 싸움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파국이란 말이 떠올랐다.


서너 집뿐이던 동네가 개발 붐을 타고 몇 년 사이 이제는 스무 채 정도까지 늘었다. 차츰 은퇴한 각지의 외지인이 모여 태어난 시기의 옛정서를 그리워하며 서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여기서 못살겠다는 경기도출신 부인의 불만과 갑자기 남편이 사망한 경상도 부인을 시작으로 욕망전차를 함께 승차했던 사람들이 집을 팔았다. 그러자 또 다른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은퇴자가 들어오고 전세로 아이들을 키우는 새 사람들이 들어오고 마을은 물갈이가 되면서 처음 전차를 타고 파국으로 치달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 옛날 구전동화로 치부하고 집값 올리기에 노력하고자 했다. 그들은 조금 더 세련되고 우아하게 서로를 탐색하면서 깊숙한 곳에 숨겨진 동일한 욕망을 숨기고자 했다. 그래도 세련되고 우아한 탐색은 편했다. 도시에서 겪어본 것이라 자연스러웠다. 적어도 매너는 있으니까.


10여 년 전 주 도로에서 이 마을로 들어서는 100여 미터가 넘는 진입로에는 가로등이 없었다. 그 길의 한쪽은 10미터가 넘는 방풍나무로 다른 한쪽은 무밭과 메밀밭이 황량하게 펼쳐져 몹시 무섭고 캄캄했다. 걸어서 가기엔 아주 캄캄한 어둠 속에 뭔가가 툭 나와도 놀라지 않을 담력과 앞을 잘 볼 수 있는 손전등이 필요했다. 그러다 세 갈래로 나뉘어 아래쪽에 지어진 7채의 전원주택과 중간길에 기존에 있던 벽돌집과 그 옆에 새로 지은 집들을 포함한 십여채 그리고 오름으로 올라가는 캄캄한 비탈길을 끼고 계속해서 새로 짓고 있는 주택들이 있었다.  이 비탈길로 가끔은 눈오는 밤 노루와 들개들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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