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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Jun 15. 2024

다시 책을 읽다

일상에 대한 감사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



2024년 봄, 힘들었다. 너무 가혹했다. 수천억 개의 뉴런을 가진 인간이 위기에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간절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간절하게 신의 자비를 빌었다.  조금 더 노력하고 배려하고 참고 베풀면 언젠가는 꺼림칙한 인간관계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살았다. 그러나 관계는 일방의 인내만으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음을 또다시 알게 되었다. 강요하지도 않은 노력과 인내를 스스로에게 세뇌시킨 나를 살펴야 한다.


이십 대에 시집을 와서 대책 없이 장남만 바라보는 시집을 보고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  착각을 했다. 명백한 착각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어야 했지만 할 수 없는 것에도 최선을 다했다. 마음속으로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다 결국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쉽게 바뀌지 않을 사람들이란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았었다. 그래서 나 혼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착각을 했다. 사소한 일부터 중대한 일들이 당연한 듯 나에게 맡겨졌고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냐는 착각으로 내 손과 내 돈과 내 시간을 거쳤다. 결국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당연히 내 일이 되었고 동시에 뒷말도 들었다. 본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나에게 넘겼음에도 감사할 줄 몰랐지만 이익이 되는 일은 스스로 잘했다.


이번 봄 남편에게 건강문제가 생기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시어머니는 본인에게 닥칠 일에 걱정을 했다. 고령을 감안하더라도 이기심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참았던 말들이 아주 정확한 사실들이 분노와 함께 쏟아졌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가며 장남과 특히 며느리인 내 욕을 살갑지도 않은 친척에게 하다 들켰다. 어떤 인간관계에서는 당근보다 채찍이 훨씬 더 효과가 있다. 나는 내가 주었던 호의와 친절과 연민과 물질을 거두었다. 다만 그간의 정과 인간에 대한 연민은 가지고 어떤 대가나 기대 없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만 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한 것은 없다. 상호적이지 않고 일방적인 인간관계의 끝이 어떠한지 30년이 지나서 내 노력의 물거품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인간은 복잡한 뇌구조와 심리를 가지고 있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노력했던 것은 나의 어리석음이다.


유시민이 말한 거리감이란 말이 확 와닿았다. 삶에는 힘들 때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가져야 할 의리가 있다. 나는 그 의리를 지키고자 정말 노력하지만 그걸 못 지키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들의 손을 놓으면 된다. 다시 끌고 가려는 노력은 몇 번으로 족하다. 타인과 나에게는 거리감을 두어야 함을 쉰이 넘어 다시 배운다. 그리고 여전히 어렵다.


신영복의 책에 클 슬픔 작은 기쁨이란 글이 있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작은 기쁨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작은 기쁨과 우연한 만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4월에 닥쳤던 큰 슬픔을 위로해 주었던 것은 소소한 것이었다. 물론 매일 전화를 걸어 위로해 준 친구들의 전화와 걱정 어린 말들은 사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오지 않고 햇살이 비추던 따뜻한 날씨와 봄을 맞아 행복하게 들떠서 관광지를 돌아다닌 사람들의 얼굴도 분명 나를 위로해 주었다. 슬픈 사람 얼굴을 보면 더 슬퍼졌다.  부디 신이 지금 이 순간 감당하지 못할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베풀시길, 또한 우리가 우연이라도 그들에게 따뜻한 한 순간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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