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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 - 거닐라 노리스

by 천천히바람

역 설


처음 침묵 속에 앉아 있으려 할 때

그토록 많은 마음속 소음과 만나게 되는 것은 역설이다.

고통의 경험이 고통을 초월하게 하는 것은 역설이다.

고요함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충만한 삶과

존재로 이끄는 것은 역설이다.


우리의 마음은 역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들이 분명하기를 원한다.

안전이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분명함은 커다란 자기만족을 안겨 주기에.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는 역설을 사랑하는

존재의 더 깊은 차원이 있다. 겨울 한가운데에 이미

여름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아는.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기 시작한다는 것을 아는.


삶의 모든 것이 밝았다 어두웠다 하면서

무엇인가로 되어 간다는 것을 아는.

어둠과 빛이 늘 함께 있으며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과 맞물려 있음을 아는.


고요함 속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더없이 깨어난다.

마음이 침묵할 때 우리의 귀는 존재의 함성을 듣는다.

본래의 자기 자신과 하나 됨을 통해

우리는 모든 것과 하나가 된다.

거닐라 노리스-


거닐라 노리스 (Gunilla Norris 1939 ~ ) - 40년 넘게 심리치료사로 활동해 온 스웨덴 출신의 미국의 명상시인, 아동작가, 명상서적 저자. 일상생활에서 영성을 추구하는 시집 [집에 있기 Being home], [빵이 되기]가 있다. 최근에 그녀가 작사에 참여하고 지역시민들과 공동으로 작업한 음반 <흐르는 강물 riverflow>를 제작하여 노숙자들과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 Warm Center>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It is a paradox that we encounter so much internal noise when we first try to sit in silence.

It is a paradox that experiencing pain releases pain.

It is a paradox that keeping still can lead us so fully into life and being.


Our minds do not like paradoxes. We want things

to be clear, so we can maintain our illusions of safety.

Certainty breeds tremendous smugness.


We each possess a deeper level of being, however, which loves paradox.

It knows that summer is already growing like a seed in the depth of winter.

It knows that the moment we are born, we begin to die.


It knows that all of life shimmers, in shades of becoming

that shadow and light are always together,

the visible mingled with the invisible.


When we sit in stillness we are profoundly active.

Keeping silent, we hear the roar of existence.

Through our willingness to be the one we are,

We become one with everything.





나 혼자 신나서 점점 열기가 오르면 말이 많아지고 빨라진다. 있는 말 없는 말 다 내뱉고 돌아서면 갑자기 기운이 쑥 빠지며 후회가 몰려온다. 왜 그런 말을 했지? 실수한 건 없나? 아까 걔 표정이 좀. 에잇, 차라리 하지 말 걸.


말을 참는 게 이리 어렵다니. 하고 나면 후회할 걸 뻔히 알면서 아는 게 조금만 나와도, 뭔가 거슬려도 참지 못하고 말을 하고 만다. 그리고 어김없이 후회한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 오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건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으면 깜짝깜짝 놀란다. 너무너무 듣기 싫다. 소리도, 톤도, 강약도, 속도도 다 싫다. 그럼 입을 닫고 침묵 속에 내 목소리를 듣고 나와 대화해야 하는데 들리지 않는다. 연습한 적이 없으니 들리지 않는 것이겠지.


이 연습을 어떻게 해볼까? 갑작스러운 침묵과 교양은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우선 줄여야 한다. 다섯 단어가 넘으면 듣는 사람을 보고, 15초가 지나면 잠시 멈춘다. 타인에게는 두 배의 시간을 허용한다. 귀는 두 개니까. 그리고 남는 시간은 침묵 속에 내 목소리를 들어본다. 나는 나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니? 나한테 나는 어떤 애기를 듣고 싶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