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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천히바람 Jan 11. 2024

독학으로 심리학 공부 20

심리 톡톡 나를 만나는 시간 - 문요한

불안의 가장 흔한 증상은 과잉행동입니다. 상담하러 오신 분들을 보면 수첩을 꺼내서 적거나 티슈로 책상을 닦거나 하며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집에서 하루 종일 쓸고 닦는 분들이 있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열중하는 분들은 십중팔구 불안과 분노에 차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감정들이 자신을 힘들게 하니까 자꾸 주의를 전환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저는 "부지런한 게으름뱅이도 있고, 바쁜 게으름뱅이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말하는 '게으름'은 정의가 좀 다릅니다. 부지런함의 기준은 활동량이 아니라 방향성과 능동성이어야 합니다. 설사 지금 내가 바쁘지 않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능동적으로 휴식을 선택한 결과라면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쉬면 안 돼, 여기서 멈춰 서면 안 돼'라는 생각 때문에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힘든 상황까지 내모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해'하면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다가 돌연사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돌연사'는 거의 없습니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머리 아프고 소화가 안 되는 등 여러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데도 계속 '채찍질'하닥 임계점을 넘어버리는 거죠.


마치 마부가 쓰러진 말을 채찍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이 쓰러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력을 회복하게 돌보아야죠. 그런데 채찍질해서 억지로 일으켜 세우면 얼마 못 가 다시 쓰러지고 맙니다. 내가 나를 대할 때 채찍질하는 마부와 같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바쁜 게으름뱅이 - 능동성 - 채찍질


워낙 정신과 선생님들이 TV에 자주 나오다 보니 유명한 분들은 거의 셀럽 수준이다. TV, 라디오, 광고, 잡지 등 노출빈도가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높다 보니 어떤 선생님은 신뢰성이 훅 떨어진다. 문요한 선생님은 잘 모르다 보니 글을 선입견 없이 읽었다. 간결하고 좋았다. 처음에는 '바쁜 게으름뱅이'라는 말이 나를 지칭하는 것 같아 이 단어에 사로잡혔다. 다시 읽어보니 '능동성'이 더 중요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채찍질'에 가슴이 아팠다.


어린 시절부터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게으름을 죄악이라 여겨 엄마를 도와 집안일도 하고 몸을 움직였다. 학창 시절에는 5시간만 자고 공부하려고 계획표를 세웠다. 잠이 오는 것이 너무 한심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나를 달달 볶았다. 결혼하고 직장에 육아에 집안일에 지치는 것이 당연한데 휴일에 누워있는 내 몸이 한심했다. 그러다 덜컥 두통, 소화불량, 기절할 것 같은 피곤함이 내게도 몰려와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물도 삼키기 어려워 병원을 찾으니 자율신경장애라고 하였다. 즉, 몸은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쉬면 안 돼, 여기서 멈춰 서면 안 돼'라고 정신이 밀어붙이니 몸이 먼저 이상을 일으킨 것이었다. 무엇보다 쉬고 싶었다.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한 달 동안 잠만 잤다. 그렇게 잠이 올 수가 없었다. 한 달을 자고 나니 두통이 없어졌다. 피곤함도 많이 사라졌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은 잤다. 밤에도 자고 아이들이 등교하면 또 자고 하교하면 일어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이 많이 괜찮아졌고 내가 품었던 생각들이 틀렸다는 것을 눈치챘다.


게으름을 죄악이라 여겼던 것은 내 생각이 아니었다. 어릴 적 엄마가 병약한 아버지가 누워계신 것을 한심하게 보며 내뱉던 말을 흡수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가시자 생계를 책임졌던 엄마의 타깃은 우리 남매였다. 특히 여자인 내게 더 심했다. 방청소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오랜 잔소리를 했다. 말릴 아버지가 있거나 엄마가 겁낼 다른 어른은 없었다. 가장의 힘든 무게와 권력을 동시에 가진 엄마는 오래오래 화풀이 겸 잔소리를 했고 나도 바쁜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 생각으로 학창 시절 내내 나를 닦달하니 성적은 잘 나왔다. 성적이 잘 나오니 그걸 유지하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책을 몇 번 봐서는 불안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버스에서도 공부했다. 그때는 그나마 체력이 따랐다. 하지만 직장은 또 달랐다.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곳이 아니었다. 직장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여유롭게 자란 직원들은 빨리빨리 일을 하지 않았다. 야단맞아도 그러려니 했다. 상대적으로 가난하게 자란 직원들을 일처리가 빨랐고 작은 지적도 받지 않으려고 더 노력했다. 빈틈없이 일처리를 하려고 자신과 옆사람을 함께 닦달했다. 나는 후자였다. 내적동기나 좀 근사한 것이 아닌 그냥 무작정, 혹시 모를 지적질당하는 것이 싫어서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어서 그냥 그게 맞는 줄 알고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욕이나 지적은 듣게 마련이다. 욕하는 건 타인의 자유이자 습관인 것도 모르고...


문제는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발생했다. MISSION IMPOSSIBLE을 POSSIBLE 하게 만들려는 거대한 계획으로 나를 내몰았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집안일도 효율적으로 잘하고자 했다. 협력자라고 생각했던 남편과 시어머니는 진정한 내부의 적이었다. 톰크루즈가 빌딩벽을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직장여성이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잘하는 것이 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으니 얼마나 몸이 고달팠을까? 돈도 잘 벌고 학부모 모임에도 꼭 참석하고 집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기를 꿈꿨다. 그것이 모두 안되자 몸이 더 아프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새벽 3시에 일어나 집을 청소하고 회사를 갔다. 그래봤자 저녁에 집은 다시 엉망이고 밥은 매일 먹어야 하고 할 줄 아는 메뉴는 별로 없는 악순환이었다. 그러더니 서서히 소화가 불가능해졌다. 하루이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2주 동안 안되었다. 물 외에는 삼키기가 어려워 물과 약만 먹으니 몸이 더 이상해졌다. 나는 나를 채찍질만 하다 드디어 쓰러졌다.


병가를 내고 쉬니 거짓말처럼 서서히 몸이 회복되었다. 정신을 차리자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쏟았다. 점심을 먹고 온 아이들에게 온갖 간식을 오자마자 만들어주었다. 아이들이 친구를 데리고 오면 거의 분식집 수준으로 해 먹였다. 오죽하면 그때 왔던 친구들이 너네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팔보채 정말 맛있었다고 했다는데 나는 기억도 안 나지만 지금 팔보채를 만들 줄 모른다. 팔보채라니 정신이 나갔던 것이다. 과잉이었다. 저녁에는 애들을 붙잡고 공부를 시켰다. 물론 요일별로 시간표를 짜서 골고루 과목을 배분하고 영어와 수학은 매일 넣었다. 얘기하거나 얘기를 들어주는 자유시간은 없었고 그 모든 공부에 함께 했다. 미쳤다. 학원을 보내고 나면 쉬면서 다음 할 일을 정했다. 쉬는 방법도 몰랐지만 그때까지 쉬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철저히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다 동네 학부모들 모임에 가니 적응이 안 되었다. 밥을 먹고 나면 차를 마시고 했던 말 또 하고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심하다 생각하면서도 저렇게 살아도 다들 잘 산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고 알게 되었다. 꼭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가만히 앉아서 차를 마셔도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아주 천천히 깨달았지만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나쁜 짓 같았다. 나는 방향성과 능동성 없이 정말 내가 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절벽을 향해 남이 뛰니 같이 뛰다 멈출 줄 모르는 동물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바쁜 게으름뱅이였다. 내가 정말로 원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고 끝없이 바쁘기만 하면 잘 사는 것으로 나를 속이고 있었고 채찍을 맞고 나서야 잠시 정신을 차렸다. 만일 내가 열심히 사는 목적의 방향성이 맞고 바람직하고 건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채찍을 맞고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쓸데없이 바빴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쉴 수 있도록 자신을 보살피려고 하지만 솔직히 힘들다. 몇십 년 나를 몰아치던 습관이 그렇게 쉽고 빠르게 바뀌지는 않고 자꾸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니 매일 자각하고 방향을 잡고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나를 살포지 대접해야 한다. 습관은 정말 고치기 힘들지만 알았으니 달라져야 한다. 인생은 여전히 아름다우니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하지만 다가오는 것까지 망칠 필요는 없으니까. 이제는 MISSION POSSIBLE 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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