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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가렛꽃 Aug 19. 2022

대왕 김밥

이 크기 실화입니까?

출근길 스치는 바람에 아침이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옛날에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이 문득 떠올라요.

 "말복만 지나면 선선해진단다, 곡식 익히려 햇살은 따가워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거야, 그게 절기의 원칙이란다."

우리 할머니는 세상의 이치를 마치 자기만 알고 있는 전설 인양 이야기하시곤 했는데, 다른 집 할머니들도 그런지 모르겠네요.

여하튼 우리 할머니는 재미있는 분이셨어요.

분식집 출근길 횡단보도 화살표에 집중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화살표 따라 잘 나아가 보려 합니다.

짧게 끝나는 화살표가 때로는 무척 아쉽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길에 커다랗고 긴 화살표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마도 우리는 그리 쉽게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출근 후에 김밥 만들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제가 먹을 체리도

씻었어요. 우리 집 김밥은 어묵이 많이 들어가는 옛날 방식입니다.

바로 우리 할머니의 레시피인데요, 어묵은 볶아서 한 김 식혀준 뒤에 한 올 한 올 펴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묵 선생의 헤어는 악성 곱슬로 김밥에 넣을 때 매우 불편합니다.

장사 준비를 마치고, 아침밥을 해 먹었습니다.

요즘 중국요리가 너무 당겨서, 콜리플라워 계란 볶음을

해 먹었습니다. 아침에는 주로 채소와 계란을 먹습니다.

단골 정육점으로부터 김밥 세 줄을 주문받았어요, 김밥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구경하시던 한 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왕 김밥은 얼마예요?"

"이거 대왕 김밥 아니에요, 일반 김밥입니다. 우리 집에

대왕 김밥은 없어요."

김밥 크기를 보고 손님도 엄마도 저도 한참을 웃었어요.

맞습니다. 김밥이 담긴 그릇은 커다란 돈가스 접시입니다.

도저히 김밥 접시에 담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제가 분식집에 온 뒤로 쌀이 너무 헤프다고 나무라십니다.

제 생각에는 어차피 김밥은 서비스 품목입니다. 저도 엄마를 닮아서 손이 큰 또한 어쩔 수가 없고요.

손 크면 시집가서 잘 산대요.

우리는 조금 느린 김밥을 팔아요.

밥을 미리 비벼 놓지 않고, 미리 싸 두지도 않아요.

주문을 받으면 갓 지은 하얀 쌀밥을 꺼내

참기름과 깨소금을 후루룩 뿌려 줍니다.


제가 또 기름을 많이 씁니다.

김밥은 참기름의 고소함이 느껴져야 담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참기름을 많이 넣으면 밥알의 색이 약간 변하긴 해요. 하지만 시골서 직접 짜 온 기름이라 전혀 느끼하지 않아요. 고소함이 두 배가 됩니다.

매밀  막국수 판매용 아니에요

점심 장사가 끝난 뒤 메밀국수를 삶아 먹었어요.

엄마표 열무김치를 넣고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말아 주셨어요.

살얼음이 동동 뜬 육수를 먹고 나니 정말 가슴속까지 시원해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참 여기에도 참기름을 꼭 넣어야 해요.

뒷 맛을 확 끌어올려주거든요.

매콤 달달 시원한 '꿀맛 국수'였습니다.

역시 엄마 품에 착 붙어 있으면 잘 얻어먹습니다.

오늘은 남동생도 간식을 사들고 놀러 왔어요.

며칠 전부터 던킨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골고루 사 왔어요. 남동생이 잔정이 많고 세심해요.

오늘도 가족의 사랑과 맛있는 음식이 함께 했어요.

앞으로도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고 싶어요.

여기는 행복분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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