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를 다시 생각하기
1. 1999년 봄, 영호는 ‘가리봉 봉우회’의 야유회 장소에 ‘서’ 있다. 초대 받은 적 없는 영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야유회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아무도 모르는 영호만의 이유가 있긴 하다. 이곳은 영호가 20년 전 첫사랑 순임과 소풍을 왔던 곳이다. 후회만 가득한 세월을 보낸 영호는 야유회의 즐거운 분위기가 못마땅했다. 영호는 힘겹게 기찻길 철로 위에 올라선다. 기차는 무서운 속도로 영호를 향해 돌진한다. 영호는 피하지 않는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절규는 기적 소리를 뚫고 과거로 향한다. 영호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왜 돌아가려는 걸까?
2. 이창동 감독의 2번째 영화, <박하사탕>의 강렬한 첫 장면이다. 영화는 시간이 흐를 수록 영호의 과거로 회귀한다. 사흘 전 봄, 1994년 여름, 1987년 봄, 1984년 가을, 1980년 5월 그리고 1979년 가을. 영호의 과거 여행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그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1979년 가을’은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며 영화의 끝이다. 영호는 ‘순임’과 순수한 사랑을 시작하고 있다. 이 순수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영호는 1980년 5월 광주에 ‘폭도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됐고, 1987년 봄 그는 형사가 되어 ‘빨갱이’를 고문했다.
3. 이 남자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영화는 연속해서 과거로 회귀하며 질문한다. 비극의 시작,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순수함을 회복하고 사랑도 행복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영화 <박하사탕>의 질문은 인생에서 후회와 자기 연민으로 가득한 이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비슷하다. 나 또한 그랬다. 쓰라린 실패와 좌절, 회복이 불가해 보이는 상처에 아파하며 실패하기 이전으로, 상처받기 이전으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했다.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금’ 보다는 나아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장담했다. 그래서 더 발악했다. “나 다시 돌아갈래!”
4. 인생은 바둑판 위에 돌을 놓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타인과 나’라는 선들이 교차해 바둑판을 만들고 화점(花點)을 형성한다. 인생이라는 대국에서 우리는 구단(九段)이 아니라 초단(初段)으로 착수(着手)한다. 한번 착수한 돌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다는 대원칙 아래서. 하나의 대국 안에서 무수한 전투가 일어나듯 인생에서도 수많은 전투가 벌어진다. 정직과 신뢰, 사랑과 우정이라는 인생의 정석(定石)에 따라 돌을 놓기도 하지만 때로는 비겁한 꼼수를 부리기도 하고 무리수(無理手)를 놓기도 한다.
5. 패착(敗着)을 두었다고 해서 대국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건 하나의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대국 전체를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이라는 대국이 끝마칠 때까지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둑판 위에 의미없는 돌은 하나도 없’듯이 인생에서도 의미 없는 시간, 사건, 관계는 없다. 내가 두었던 악수(惡手)를 복기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포석(布石)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과거를 복기하며 초단에서 2단으로, 2단에서 3단으로 성장한다. 과거의 악수를 후회하며 지금 착수해야 할 돌에 신경쓰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이라는 대국의 바둑판은 넓고 아직 돌을 놓을 수 있는 자리는 많다.
6. 인생이 바둑판 위에 돌을 놓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놓은 돌이 곧 나의 인생이다. 지금까지 놓은 돌이 모두 ‘신의 한수’일리는 없다. 이름 자체가 신의 ‘한’수 아닌가. 나의 바둑판 위엔 정수도, 묘수도 있고, 또 신의 한수도 있(으면 좋겠)고, 부끄러운 꼼수도 악수도 있다. 인생의 대국에서 중요한 자세는 회귀가 아닌 복기이다. 회귀는 불가하다(일수불퇴一手不退).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바둑판 위에 있는 모든 돌이 나의 인생이고, 나라는 사실이다. 이건 달라지지 않는다.
7. 달라질 수 있는 건 과거의 전투가 아니라 앞으로의 대국이다. 부끄러운 실패, 지우고 싶은 기억, 돌아가고 싶은 과거 … . 는 인생의 대국을 끝장 낼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지금 나의 바둑판 위에 있는 돌들이 이룬 대마는 쉽사리 죽지 않는다. 패배는 나를 초단에서 구단으로 성장하게 하는 의미있는 돌들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오늘 내가 놓아야 할 돌에 집중할 뿐이다. 이제는 절규하지 않는다. 기분 좋게, 나지막히 되내인다. “나 다시 살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