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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언자 Nov 29. 2023

얼굴 대 얼굴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며 편지를 띄웁니다

애들아 행복하니?

   행복하고 싶지 않다면 이 글을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귀하께서 두 번째 문장을 읽고 계시리라 믿었어요. 수천 년이 넘도록 사람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내리지 못한 지혜자들도 대체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실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다’라고 하더군요.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매주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함께 배우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은 대체적으로 맑습니다. 간혹 어두운 아이들이 있고, 시험 기간이 되면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모두 ‘사랑하며 살기’위해 멋지게 노력하고 있죠.

   아이들을 만나면서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매일 학교를 가야하고, 학원에 가고, 과제를 하고, 수행평가를 준비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바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쁜 아이들의 신세 한탄을 들어주는 겁니다. “애들아 행복하니?” 저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입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반응입니다. “아니요! 행복이 뭔데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데요?” 귀하는 눈치가 빠르고, 영민하시니 제 고민이 무엇인지 짐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학교생활은 만족하지만, 정신건강이 걱정되요

   봄날의 햇살보다 더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니. 아니, 그렇게 맑고 밝은 얼굴로 ‘행복이 뭔데요?’라고 묻는 아이들의 얼굴을 귀하께서도 보셨어야 합니다. 아니, 그 자리에 나라의 높으신 양반들이 있었어야 해요. 대통령, 여성가족부 장관님, 교육부 장관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님, 교육감님 ... 아이들의 일상에 제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들의 영혼이라도 제 몸에 잠깐 들어와서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했어야 합니다. 알아요. 귀하께서 염려하시는 대로 괜한 호들갑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요. ‘남들도 다 똑같이 겪는 일인데 굳이 그렇게 까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2022 청소년 통계>, 여성가족부 보도자료, 2022. 5. 25.

   그런데 저는 가만히 있을 수 없더라구요. 마침 작년 여성가족부에서 보도자료로 발표한 <2022년 청소년 통계로 본 한국>이 있어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자료에서 제 눈에 들어온 것은 “학습•교육” 부분에서 “학교생활 만족도”와 “관계” 부분에서 “청소년 고민 상담유형” 그리고 “COVID-19”에 관련된 자료였어요. 아이들에 대한 저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전반적으로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있더군요. 특히 초•중•고 아이들 모두 “교우관계”와 “교사와의 관계”에서 만족도가 90%를 웃돌고 있었어요. 물론 “전반적인 학교생활”에서 초-중-고로 갈수록 만족도가 낮아지는 추세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고등학생도 70.7%로 만족도가 준수한 편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관계”란에서 “청소년 고민 상담 유형” 통계가 마음을 심란하게 했습니다. 인간관계, 친구관계 등 관계에 유독 관심이 많은 청소년 아이들의 보편적인 특성 상 3, 4 순위 모두 ‘대인관계’와 ‘가족’이라는 것에는 동의가 됐습니다. 2순위가 ‘정보제공’이라는 것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인만큼 이 또한 고개가 끄덕여졌지요. 그런데 1순위가 ‘정신건강’이라는 겁니다. 아이들이 가장 고민되는 유형이 자기들의 ‘정신건강’이라고 응답했다는 것이죠. 네? 이게 왜 문제냐고요? 아이들은 학교생활 만족도가 대체적으로 높은 편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정신건강에 대한 고민이 1순위이다? 저는 이 둘의 관계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제가 만나는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저한테 찾아와서 “저는 학교생활은 만족해요. 그런데 제 정신건강이 걱정되요.”라고 한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요?



   그래서 주목한 자료가 “COVID-19”입니다. 2022년에 발표한 자료인 만큼 2019년부터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라는 변수를 고려해봐야겠다는 전제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원격수업의 효과성’에 대한 질문에 지역과 성별을 막론하여 ‘비효과적’이라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는 것. 더하여 ‘코로나로 인한 일상생활 변화’에서 ‘온라인 학습의 확산’과 ‘친목•사교 모임 감소’가 모두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는 점을 주목했어요. 결국 비대면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는 학습 및 관계는 비효율적이고, 다시 면대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아이들은 응답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갑자기 통계 자료를 언급해서 글이 복잡해진 것 같으니 귀하를 위해 짧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제 고민은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스스로 말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아이들에 관한 통계자료를 살펴보니 ‘학교 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하나 정신건강이 걱정된다’는 해석을 하게 되었고, 이는 ‘지금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에 대한 감각’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신건강과 행복은 아무래도 인과성이 있는 요소들일 테니까요.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상황이 아이들은 비효과적이었고 결국엔 온라인 학습, 친구와의 친목 모임이 코로나 이전으로 곧 면대면으로 돌아갈 것이라 응답했습니다.


애들아 행복하자

   학교 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하는 아이들의 행복에 대한 실마리는 결국 정신건강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테죠. 이를 지난 3년 간 지속된 비대면 상황에서 이유의 조각을 찾아보는 건 무리한 추측일까요? 비대면으로 인한 온라인 학습과 만남이 비효율적이었든, 다시 면대면으로 돌아갈 것이라 응답했든 간에 결국 아이들은 면대면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억측이라 할 수 있을까요? 면대면의 회복이, 관계를 맺고 지속하는 경험이, 나아가 ‘공동체에 대한 감각’이 지금 아이들에게 행복의 단서를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귀하께서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대안’이라고 말씀하시려나요?

   아이들은 교우관계와 교사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며 관계에서 만족도가 높다지만 비대면의 시기를 거치며 ‘공동체의 감각’을 상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대일 관계, ‘영원한 내편’과 같은 관계에는 익숙하지만 ‘나를 지지해주는 공동체’, ‘그를 품어주는 공동체’로 까지 관계가 넓어지는 경험은 낯설어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개인주의의 확산이든,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환경의 지속이든 원인이야 다양하겠지요. 다만 제가 고민 끝에 발견한 것은 ‘행복은 어쩌면 아이들이 상실한 공동체의 감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에요. 얼굴 대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공동체, 같은 마음을 품었지만 서로 다른 방식을 존중해 줄 수 있는 공동체 ... 이러한 공동체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지지받고 지지해주는 경험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않냐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만나는 아이들과 그런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귀하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언젠가 귀하와도 '얼굴 대 얼굴'로 만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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