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나의 인식의 문제일지도
고객센터의 하루하루는 변화무쌍하다.
모든 사람의 하루가 다 똑같진 않는 건 당연하다.
고객센터와 같은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응대한다는 건
생각보다 다채로운 하루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채로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고객센터에서 10년간 일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에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물론 한 직장에서 10년은 아니지만
그동안 느꼈던,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끝으로
고객센터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전역 후 고객센터에서 처음 일할 때의 나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고객센터 일하는 나는
여전히 내 직업을 말하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다.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커다란 스펙이 필요한 것이 아닌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감정 노동자를 뿐인
나는 누구보다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 직업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고객센터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어디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수화기 내려놓고 딴짓하나 봐.
전화 진짜 안 받아.
라는 소리를 해댈 때, 속으로 기가 차기도 했다.
고객센터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딴짓을 할 수 없는 구조다.
수 없이 밀려오는 콜들에 파묻혀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을 뿐이다.
주변에서 또 제일 많이 듣는 소리가
편하게 앉아서 일한다는 소리인데 그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누군가에겐 추위 더위 막아주는 곳에서
앉아서 일하는 것이기에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은 책상과 모니터 헤드셋만이 있는 파티션으로
둘러 싸인 그 공간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콜센터, 고객센터에서 제일 많이 걸리는 질병이 방광염인 것을
감안한다면 그 파티션을 넘어가는 거 자체가 큰 산이고 고비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다가 고객센터에서 일한다는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회사 소속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오해가 생기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예들 들면 카카오 고객센터에서 일해.
라고 하게 되면 카카오라는 회사에 대해 궁금증을
A부터 Z까지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전혀 상관없는 이름의 하청 업체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직원임을 밝히는 게 약간은 수치스러울 때가 있다.
모두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
나를 감정 처리소, 해우소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너 고객센터에서 일하니까 말 잘 들어주지?
이거 듣고 네가 판단해 봐.
라며 나와 상관없는, 내가 관심 없는 것에 대한 고민거리를 털어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경우엔 하루 종일 남의 이야기를 듣고 온 사람에게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는 게 꽤 커다란 시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고민 상담에 거절을 하게 되면 직업이 그거면서 이야기 하나
못 들어주냐는 야박한 사람이 될 때가 있다.
또한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하루에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는 말이다.
일단 불만이 기본인 고객에게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입에 붙다 보면, 내 자존감은 한 없이 낮아지게 된다.
그렇게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나의 직업이 누군가에겐 하찮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꽤 있어서
내 직업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는 그렇게 힘들다면 관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막상 생계가 달린 일을 지금 이 나이에 박차고 나간다는 건
쉽지 않은 모험이 되기에 실현하기란 두려움이 크다.
모든 직장인들이 지금 다니는 회사,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하지만 다음 날 다시 출근길에 오르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생계의 수단이 되는 공간이다.
그저 내가 바라는 건,
고객센터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으면 좋겠다.
감정노동자라는 타이틀이 아닌,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직업이란 인식이 조금은 들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새로운 고객을 만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