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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혼술아저씨 Jun 05. 2020

치우지 않는 방

혹은  짐방, 다용도실, 아니면 쓰레기 섬

 







 꼭 못생긴 물건이나


버리기를 보류한 물건이나


치우기 애매하거나 나중에 치우기로 하거나


급하게 치워야 해서 일단 넣어둔


짐으로 가득한 방이 하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컴퓨터에도 그런 '휴지통'  있거나


그런 폴더가 있고




그리고 마음속에도 그런  방들이


하나 있다




창고 같은 마음의 방




지금은 아직 결정 못하는 생각


버리지 못하는 미련


잘 모르겠는 감정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용서 못하는 쓰레기 같은 마음들


일단 모아두는 마음의 방




예전에 어르신들의 책상엔 결제도 미결도 아닌 보류라는 칸에 놓인 서류들이 있었다




인간의 마음도  그럴 수 있고 충분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그 당시에 그 순간에 그 감정으로만 결정하면 어렵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보자 라는


어쩌면 어른스럽고 아니면 비겁한 생각으로



우린 보류된 마음의 방을  가지고 들 산다



나는 보통보다 심하게 그 방이 큰 편이다



어릴 때 몇 번 급하게 결정해서 큰 낭패를 본 이후로 되도록 심사숙고하는 편이다


그리고 되도록 화도 안 내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그렇다고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화내는  모습이 싫고,  기분이 좋아서 흥이 넘치듯  화도 내다보면 선을 넘을 때가 있었던 


젊은 시절의 기억 때문에 더더욱...




일단은 화가 나거나 분노가 치밀어도  보류의 방에 넣어 두려 노력하는 편이다


감정의 파도가 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결정을 안 하려는 나의 임시방편이다





 10여 년 전 사귀던 여자 친구의 집에 우연히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녀는 자기 방을 절대로 안 보여 주었는데


계속해서 저 방은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통에


나의 모든 관심은 그 방으로 쏠려서 결국은 그녀가 잠깐 주방에 간 사이에


그 방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가


정말 깜짝 놀랐었다




마치 거대한 쓰레기 방 같았다




바닥엔 사람이 발을 디딜 곳이 없고


주먹만 한 머리카락 덩어리 수십 개가


돌아다니고 있는 방이었다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원래는 본인의 방이었는데


너무 지저분해서


이제는 그 방을 나와


 다른 방에서 주로 지낸다고 했다




그 방은 그때의 상태에서 왜 열어보지도 않고


저렇기 방치하는지 물어봐도


그녀는 대답하지 않거나 못했다






그 이후 여차 저차 하다가


나도 혼자 살기 시작하고  원룸, 투룸, 점점 집이 커져가자


짐도 늘었고  뭔가 필요 없는 물건들이 점점 늘었다




그래서 점점 더 큰집이 필요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래서 아예 집을 지어서 살고 있는데


어쩌면 그 짐들을 위한 집을 지은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어쩌면 거대한 보류의 집을 만들어 놓은 거 같다



나도 언제부터인지 실제의 삶에서도 정리 안 하는 방이 있었다


두 번째 얻은 집에서부터 였나 싶다

그 집은 유독 베린다가 큰집이었다
거대한 베란다에 둘러싸여 있는 독특한 집이었다

거대한 배란다실에 옷방을 만들고 당장 안 쓰는 물건들을 놔두기  시작했다
몇 달 후 나는 나중에 베란다를 지날 때 마치  
밀림 숲을 헤쳐나가듯  다녀야 할 때까지 여러 가지 물건들을  계속 무책임하게 던져 넣고 있었다



한번 그렇게 무책임하게 던져둔 게  너무 편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순간의 작은 무책임함이 주는 기쁨이
점점  걷잡을 수 없어진 물건의
밀림 숲이  된 것처럼
마음에도 그런 덩어리가 한 곳에 늘 쌓여있었다


 그 짐들이 너무 싫고 부담스러워서


한 번씩 거의 밤을 새워 방을 정리했었다  그리고는 또 얼마 안 가 마음껏 물건들을 방치했다




그런 행동을 몇 개월마다 반복하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눈에 보이지 않게 두는 걸 심사숙고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사랑하던 사람과 감정이 식어갈 때 잠깐 생각할 시간을 가지자는 말은


그 마음들을 구석방에 처박아두고 다시는 안 꺼내고 싶은 건 아닌지?


방치해둔 마음들은 언젠간 먼지 쌓인 채로 다시 한번 꺼내 정리해야 하는 날이 찾아오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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