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도나우슈타우프로, 초보자도 가능한 자전거 일일여행
변화무쌍한 생을 앞에 두고 사뭇 견고한 마음이 든다. 앞날을 예견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대로 걸어보고 싶은 길을 발견한 순례자처럼. 그 길 위에 정신과 시간, 기회, 그리고 사랑으로 차오른 심장이 차곡차곡 덮인다. 이 침전물에 여름 햇살이 닿으니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 내 속에 본래 지니고 있던 어둡고 못난 성질도 아름다운 것들과 함께 섞여 쌓인다. 자연스러운 불순물이 대리석에 무늬를 만들듯, 기쁘거나 그렇지 않은 모든 순간이 특이한 재료가 된다.
연인을 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가 유난히 별난 줄 알았다. 그는 네 달의 유급 휴가를 받아서 한국에서 두 달, 일본에서 두 달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 자전거로 속초에서 출발해서 어제 부산에 도착했어!
⎯ 자전거?! 얼마나 걸렸는데?
⎯ 일주일 정도!
처음 만난 날, 그에게서 느껴지는 낯설고 건강한 기운이 신기했다. 채식을 기꺼이 사랑하고, 나만큼(아니, 나보다 더 깊게) 음악이 삶에서 중요하며, 자전거로 종횡무진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자신의 직업도 사랑하는 이였다. 샘솟는 에너지가 마음에 들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는 이렇게까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정말 흔치 않다. 한국에서 자전거는 취미나 스포츠에 가까우니까. 환경 문제를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으로 가져와 실천하는 독일인들에게 자전거는 가장 완벽한 교통수단이 된다. 학교에서 자전거 운전과 관련된 교통 법규, 안전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로 환경 보호는 물론 개인의 건강까지 챙길 수 있도록 장려한다. 도시 간 자전거 도로도 잘 발달되어 있어 어린 시절부터 자전거를 타다 보면 성인이 되어 자연스레 장거리 주행을 접하게 된다. 이 사람이 유별난 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그런 문화와 환경 속에 담겨 있던 덕분이었다.
쉬는 날만 생기면 자연으로 우르르 달려가고, 하이킹을 즐기거나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독일에서 내가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자연스러운 건강'이다. 억지로 시간을 내서 수업을 듣거나 어느 지정된 장소에 시간 맞춰 갈 필요 없이 일상의 자연스러운 움직임 안에서 기본적으로 건강한 삶을 획득하는 것.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비건 제품부터 맑은 공기, 숨통 트이는 주거 환경, 자전거로 거의 못 가는 곳이 없게끔 조성된 인프라, 그리고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아름답게 여기는 인식까지, 독일은 나의 성향과 개성을 더욱 짙게 내뿜으면서 거기에 건강을 더 얹을 수 있는 나라였다.
원하는 환경에 머물면서 여름 동안 더욱 건강해지기로 했다. 심각한 스트레스와 책상에 오래 머무르는 생활로 이미 체력이 바닥나고 있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작년 2월에 독일에서 아주 잠깐 자전거 생활을 해보고 난 뒤, 더 잘 타보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 서울에 돌아와서 따릉이 자전거로 나름 30km 정도 되는 장거리 주행을 해보며 그 감각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자전거 보관소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이용할 수는 없었지만, 서울 안에서 이동할 일이 있을 때 일부러 이용하기도 했다. 독일에 도착한 다음날 마르코가 꼭 알아야 할 교통 법규, 매너, 자전거 타는 팁 등을 알려주었다. 내가 탔던 자전거들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도 손잡이를 잡을 수 있었지만, 마르코의 자전거들은 손잡이가 안장과 높이가 같거나 더 낮은 위치에 있었다. 허리를 깊이 숙이는 자세가 익숙지 않아 겁이 났다. 긴장하니 상체가 굳으면서 고개를 앞으로 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온몸이 자전거 위에 떠 있다 보니 자전거를 기울여서 발을 땅에 착지해 멈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페달에 바짓자락이 뜯어지고, 다리도 많이 부딪쳤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잘 타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이틀 정도 시내와 가까운 외곽 동네를 주행하며 시범 주행을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맞이하는 첫 일요일, 드디어 당일치기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첫 번째 목적지는 레겐스부르크 동쪽의 도나우슈타프에 있는 발할라(Walhalla). 뭔가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이름은 고대 게르만 신화에서 용맹하게 싸우다 죽은 전사들이 가는 천국인 발할라(Valhalla)에서 따왔다고 한다. 발할라, 발할라. 이름이 가진 소리가 신비로워서 여러 번 되뇌었다. 마르코 친구 아드리안, 베니, 베언트도 나의 첫 중거리 자전거 여정에 함께했다. 편도로 15km 정도. 90%가 평지 길이고 막판 산길이 난도가 높았다. 친구들이 잠깐 보여준 사진 속에 웅장한 대리석 건물이 산 위에 솟아 있었다. 우리는 오랜 유적지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맑고 아름다운 날씨였다. 일요일이라 자전거 주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주 오는 그룹이 없을 때는 나란히 달리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15km가 아닌 1,500km를 주행 중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어깨 위로 무거운 배낭이 더해진 상상을 해보았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현재 체력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 나도 체력을 길러서 짐 몇 가지 챙겨서 훌렁훌렁 떠날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지.
— 채린, 발바닥 중앙 말고 발가락 부분으로 페달을 밟아 봐. 넘어질 것 같으면 무게 중심을 뒤쪽에 두는 거 잊지 말고! 잘하고 있어.
달리는 중간중간 마르코가 곁으로 다가와 필요한 부분을 상기시켜 주었다. 포장도로와 모래와 자갈이 섞인 길을 골고루 달렸다. 나의 동력만으로 맞이하는 속도감이 좋았다. 페달을 밟는 데 집중하니 머릿속에 들어있던 잡념도 체인에 함께 다 갈리는 것 같았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이들이 이런 쾌감을 느껴서 지속하게 되는 걸까. 하늘과 푸른 나무들이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걸 환영해, 하는 인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반대편으로 아이들이 있는 가족 무리가 지나갔다. 일찍이 장거리 주행을 하며 커 나가는 아이들은 일생동안 더 많이, 더 멀리 나아가는 소망을 품겠지. 어렸을 때는 자전거를 굉장히 많이 탔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전거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중학교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자는 자전거 타면 안 좋아, 위험하기도 하고." 엄마의 과도한 걱정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뭐, 자전거 안 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며 흥미를 접어버렸다. 그렇게 멀어졌던 어린 시절의 신나는 감각이 서른이 넘어서 더 큰 기쁨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가 갈림길에서 테겐하임(Tegernheim)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발견했다. 우리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직진을 해서 도나우슈타우프(Donaustauf)로 들어섰다. 조금 더 지나자 오르막길 초입이 나타났다. 드디어 발할라가 놓인 산에 도착했구나. 심호흡을 크게 한 뒤, 기어를 내리고 꼬물꼬물 올라가기 시작했다. 페달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나의 목표는 아무리 천천히 가더라도 절대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것. 곧 숨이 차고 헬멧 아래 두피가 지글지글 끓는 기분이 들었지만 힘껏 참아보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15분 정도를 올라가니 주차장이 보였다. 이미 도착해 있던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 오, 채린! 심지어 제일 낮은 기어로 내리지도 않았네!
⎯ 나 완전 느림보로 기어올라온 걸.
⎯ 처음 여기 자전거로 올라올 때 난 중간에서 한번 쉬었어. 느려도 멈추지 않고 올라온 거니 정말 잘한 거야.
마르코와 친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벌컥벌컥 목을 축였다. 얼마나 간절하고 신나게 마셨는지, 꼭 낙타가 물 마시는 소리를 낸다고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Walhallastraße 48, 93093 Donaustauf, Germany
산길을 조금 더 걸어올라 가자 생각보다 훨씬 웅장한 대리석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할라 주위에는 무더위를 피해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과 여행객으로 가득했다. 어딘가 그리스 분위기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이 건물은 파르테논 신전을 염두해 지어졌다고 한다.
독일이 여러 소국과 공국으로 잘게 쪼개어져 있었던 19세기 초,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1세(Ludwig I, 1786~1868)는 나폴레옹 전쟁을 겪고 난 뒤 신성 로마 제국 해체 후 독일의 작은 국가들을 통합해서 국력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그 일환으로 우선 민족 정체성과 자긍심을 높이는 방법을 이용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흉상과 명판을 전시해 독일인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단결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지지하던 루드비히 1세는 신고전주의 건축가 레오 폰 클렌체(Leo von Klenze, 1784~1864)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델로 하는 발할라를 설계하도록 했다. 1830년에 짓기 시작해 12년 뒤 완공된 발할라는 도나우강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서 압도적인 웅장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현재에도 계속해서 흉상이 새롭게 추가되고 있다. 2022년에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워 191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의 흉상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주말이라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나는 내부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서 멈추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왔을 때 좀 더 나아진 독일어 실력으로 흉상들을 마주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성과가 있다는 확신이 들 때 괴테의 흉상 앞에 서 보기로 결심했다. 나름의 퀘스트를 발할라에 심어 두고 우리는 또 다른 유적지로 다시 페달을 밟았다.
Burgstraße, 93093 Donaustauf, Germany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가톨릭 기도문을 들으며 자랐고, 어린 시절에 벽돌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성당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 때문인지 고딕 건축물에 깊은 애틋함을 느낀다. 예전부터 늘 중세가 궁금했는데, 드디어 처음으로 중세의 성을 방문하게 됐다. 발할라에서 1.5km, 자전거로 10분 정도 거리에 폐허로 남겨진 도나우슈타우프 성이 있다. 10세기에 지어져 오랜 세월 동안 수십 차례 주인이 바뀐 곳. 17세기 삼십 년 전쟁과 19세기 나폴레옹 전쟁을 겪는 동안 복원이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어 복구되지 못한 채 현재는 성벽과 일부 탑만 남아 있다. 발할라처럼 도나우 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방어에 탁월한 성이었다.
초입에 있는 표지판 근처에 자전거를 두었다. 자물쇠 하나에 자전거 세 대를 모조리 묶어두고서 산길을 천천히 올랐다. 방어가 유리한 성답게 입구로 가는 길이 좁았다. 말 한 마리와 수레 한 대가 올라가면 꽉 찰 것 같은 너비였다. 영원히 열려서 이제는 다리가 되어버린 성문을 조심스레 밟으며 성 안으로 들어갔다. 물 대신 푸른 풀로 덮인 해자가 바람과 햇살을 담고 있었다. 묵직한 돌벽과 이를 자연스레 뒤덮은 식물들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곧 매료되었다. 발로 디딜 수 있는 모든 공간을 확인하고 싶었다. 걷다가 길 같은 게 보이면 망설이지 않고 어디든 따라갔다. 큰 나무 한 그루와 풀로 덮인 공간도, 오래전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원기둥 형태의 공간도 곳곳에 미로처럼 숨어 있었다.
유적지의 중간쯤에 성 아래의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장소가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너른 공간 안쪽으로 벤치가 서너 개 놓여 있다. 만약 혼자였더라면 거기에 오랜 시간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썼을 것이다. 나중에 이곳에 살게 되면 참으로 애정하는 장소가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할머니를 따라 산책을 나선 개 한 마리가 돌연 배를 뒤집고 풀밭에 몸을 비볐다. 둘은 한낮의 햇볕을 얼마간 즐기다가 성곽을 다시 내려갔다. 바람과 햇살, 그리고 폐허 사이로 싱싱하게 피어난 꽃들이 누군가의 정원처럼 놓여 있었다. 오로지 우주처럼 흐른 시간만이 연출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Donaustraße 13A, 93105 Tegernheim, Germany
점심때가 지난 시간이라 슬슬 배가 고파졌다. 자전거로 떠난 여정의 마무리는 바로 여름의 꽃, 비어가르텐(Biergarten). 발할라로 향할 때 지나쳤던 테겐하임 지역에 괴츠프리드라는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도나우슈타우프 성 유적지에서 4.5km, 자전거로 약 15분 정도만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독일 남부 지역에서는 여름에 탄산 레모네이드와 바이스비어(밀 맥주)를 일대일로 섞은 맥주 칵테일을 즐겨 마신다. 갈증 끝에 이 맥주를 마시면 정말 천국을 맛보게 된다. 이 맥주는 오랫동안 루쓰(Russ)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이야기가 섞여 있다. 이 이름은 루쓴 마스(Russ'n-Mass), 직역하자면 '러시아인들의 맥주잔'이라는 이름에서 왔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 의해 '바이에른 소비에트 공화국, Bavarian Sobiet Republic)'가 잠깐 수립된 적이 있었다. 4월부터 5월까지 단 한 달 동안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맥주축제로 유명한 마테저 켈러(Mathäser Keller)에서 회의와 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밀 맥주와 레모네이드가 처음으로 혼합되었고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1919년부터 1923년까지 지속된 인플레이션 기간에는 맥주에 레모네이드를 섞어 양을 늘리는 것이 생산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달달한 맥주는 러시아 노동자들과 농업에 종사하는 일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그때부터 루쓰라는 이름의 맥주가 바이에른 지역에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참조: 바이에리쉬 비어 공식 페이지)
친구 중 한 명은 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공산주의 잔재가 남아있는 이름을 쓰지 않고 '바이스비어 밋 리모(Weißbier mit Limo)'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루쓰라는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 어떤 곳에서는 종업원에게 한번 더 설명을 해줘야 하지만, 여름 동안 수많은 비어가르텐을 방문하며 항상 '바이스비어 밋 리모'라는 이름으로 먼저 주문을 했다.
마르코와 나는 애피타이저 보드와 슈페츨펜네(파스타를 팬에 볶거나 구워만든 독일 남부 전통 요리)를 나누어 먹었다. 베지테리언인 친구들은 간단히 감자튀김(Pommes)을 먹거나 크뇌델(Knödel)을 주문했다. 이곳에서 바이에른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오바츠다 소스를 처음 먹어보았다. 까망베르 치즈를 주재료로 파프리카 가루와 양파, 향신료가 첨가되어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이곳에서 식사를 한 뒤 풍족한 마음으로 레겐스부르크로 돌아갔다.
위의 세 곳은 자전거나 자동차,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하며, 레겐스부르크에서 발할라까지 페리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레겐스부르크에서 자전거를 빌려 이동하고 싶다면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셔도 좋아요. (렌트 어 바이크 레겐스부르크(Rent-a-bike 대여가격표 페이지 링크) 여행자의 일정에 맞는 다양한 수단이 있으니 레겐스부르크나 그 근처를 지날 때 방문해 바이에른의 또 다른 정취를 맛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