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의 삶에 던지는 질문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by WineofMuse

실패를 인정한 나는 평생을 품어온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할 수 있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찰해 본 문제일 것이다.


‘왜 사는가.’

‘나는 누구지?’

‘나는 뭘 하고 살아야 하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할 시간도 해야 할 명분도 느끼질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의 나처럼 돈과 사업과 건강, 가족의 평화를 거의 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3살 때 부모님이 8살 때부터 가출을 거듭하다 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아원에서 10년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버티며 시간만 보내고 살았다.

취업을 할 때가 되니 IMF가 터졌다.

그 후 20여 년간은 단지 돈을 벌기에만 급급했다. 당장에 살 집도 없이 사회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상황이다 보니 생계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이번달 급여였다.

나는 단지 월급을 위해 한 달 한 달 살아오던 사람 그 자체였다.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주어진 대로 닥치는 대로 즉흥적으로 어떻게든 살아왔었다는 게 사실이었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건지 후천적으로 빠르게 끓고 빠르게 식는 사람이 된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끈기가 별로 없는 타입에 속한다.

젊은 날의 나는 소라게 같았다.

어디든 직장이 있는 곳 근처로 자취방을 구하다 보니 거처가 항상 불안정했다.

가방 한두 개를 짊어지고 언제 어디든 빠르게 거처를 옮기곤 했다.


질문에 때가 어디 있겠냐는 반문이 있겠지만 조금만 더 일찍 했어도 나쁘지 않았을 질문들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라도 이러한 질문의 과정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걸음만 더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또다시 관성에 의해 살아갔을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고 단 하나의 답도 얻어내지 못했다.

아마도 질문의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았다.

정말 똑똑한 사람은 '왜 사는지' 질문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나에게 꾸준히도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우울증이 왔다. 무기력이라는 친구의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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