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시 3일 차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식품 박람회에서는 얼음을 필요로 하는 부스가 많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에는 얼음을 파는 곳이 없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그러니 매일 아침 먼 곳에서 그날 하루 전시 중에 쓸 큰 봉지에 든 얼음을 낑낑 데며 들고 와야 한다. 지난주 베트남 전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숙소 옆 편의점에서 얼음을 3 킬로그램 짜리 얼음을 네 봉지 사서 먼 전시장까지 들고 왔다. 더운 날씨에 냉장고에서 꺼내어져 전시장에 도착하는 동안 녹아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감가상각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전시에는 전시 시작 전에 얼음 장수가 커다란 끌차에 얼음을 잔뜩 싣고 돌아다녔다. 전시 첫째 날 새벽 배송으로 얼음을 집으로 배달시켜 전시장까지 전철을 타고 들고 왔던 우리는 얼음장수가 반가웠다. 아마도 전시장 여러 부스의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반겼을 것이다. 나는 무척 기뻤지만 장사꾼답게 기쁜 내색을 하지 않고 얼음의 가격을 물었다. 물건을 받을 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재화의 가격은 공급자의 마음대로 정해진다. 한마디로 엿장수 마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전시장 얼음 장수의 얼음의 가격은 새벽 배송으로 사는 가격보다 쌌다. 전시장이라 하여 그의 얼음값이 지나치게 비쌌다면 누구든 그가 독점적인 지위로 폭리를 취한다며 주최 측에 항의하였을 것이다. 결재는 마지막날 일괄로 하는 외상결재 방식이다. 부스를 가지고 나온 업체들은 회사의 정체가 명확하니 돈을 못 받을 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부스 준비에 정신없을 사용자의 편의를 위한 배려이다. 직원의 번호를 받아 필요한 얼음 수량을 말하면 부스로 가져다주고 매일 그날 판 수량과 가격을 문자로 보내준다. 단순한 판매이지만 장사를 잘 아는 분이다. 전시장의 얼음을 독점하고 누구나 수긍할 가격으로 반복 구매를 유도한다. 수요에 맞추어 유동적으로 공급하고 거래의 기록을 정확히 남기어 수금의 근거로 삼는다.
개별의 소비자들은 시장의 독점에 별다른 불만이 없다. 다만 이로 인하여 가격이 마음대로 휘둘리고 적정 가격에 대한 대안이 없을 때 독점적인 시장지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정부가 예방적인 차원이란 이름으로 좋은 가격의 서비스를 제공 중인 독점 공급자를 제한하여 소비자의 이익을 해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독점적 위치를 누리는 공급자가 어느 순간 큰 폭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도 큰 일이다. 전시장 안의 얼음값이 내일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올라간다면? 당황한 사람들은 그를 욕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얼음을 사야만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관상 쟁이처럼 얼굴을 보면 뒤통수를 칠 상인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다.
전시장은 쓸만한 물건을 찾아 방문한 사람들로 붐볐다. 토요일인 내일도 전시가 있지만 토요일까지 전시장을 돌아다니고 싶은 바이어와 MD들은 없다. 체험학습으로 전시장 방문을 왔는지 아침부터 많은 전시장중 고등생들도 돌아다녔다. 새로 나온 제품의 반응이 좋아 기분이 좋았다. 절, 교도소, 고속도로 휴게소 등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유통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큰 배움이 되었다. 다양한 국가의 바이어들도 부스를 찾았다. 종종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기꾼 같은 사람들도 지나다닌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전시장에서는 배움이 많다. 각종 바이어들, 소비자들과 부딪히며 자기를 단련하는 유격훈련장 같은 곳이다.